비본질을 버리는 용기
24살의 젊은 디자이너가 어느 날 레코드 플레이어를 디자인하는 일을 맡게 됐다.
당시 레코드 플레이어는 꽤나 복잡한 기계였다. 외부는 견고한 나무 뚜껑으로 덮거나, 다른 거실 가구와 합치는 디자인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디자이너는 자기가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든 걸 없애버렸다. 그리고는 턴테이블 위에 투명 플라스틱 뚜껑 하나만 띡 씌웠다.
이 디자인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가전 회사 브라운이 성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 디자이너는 디터 람스다. 디자인계의 전설로 불리는 엄청나게 유명한 디자이너다. 디자인 문외한인 나도 들어봤을 정도니까.
레코드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디터 람스는
'거의 모든 것은 노이즈다.',
'아주 일부분만이 정말 중요한 본질이다.' ,
'본질을 얻기 위해 노이즈를 걸러내는 게 디자인이다.' 라는 철학으로 유명하다.
디터 람스는 자신의 원칙을 딱 3단어로 요약한다.
Less, but better.
'에센셜리즘'이라는 책에서 처음 이 문장을 봤는데, 바로 내 머릿속에 박혔다.
처음엔 그냥 되게 멋있어서 그랬다. Less, but better. 군더더기 없는 이 단순한 문장. 마치 자신이 말하는 철학의 구현체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느냐 이 말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멋있는 말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가 담겨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머릿속에 많이 맴돈다.
나는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열심히 사는 인간’에 속한다. 그런 모습의 기저엔 사실 이런 생각이 항상 깔려있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해'
'더 많은 걸 알아야 해'
'모든 걸 시도해봐야 해'
그런데 요즘엔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간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더 좋은 도구를 사고, 더 좋은 책을 읽고. 무언가 더하려는 방법보다,
덜 중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게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조금씩 깨닫고 있다.
뭐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내 삶에서 Less, but better가 잘 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에센셜리즘을 처음 읽은 게 2년전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잘 포기하지 못하고 살았다.
사실 본질에 집중한다는 말에 누가 아니라고 할까.
어려운 부분은 사실 따로 있다.
본질에 집중하려면 '상당히 매력적이고' '다들 좋다고 하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이건 정말 어렵다. 이것저것 관심많은 나에겐 특히 더 어렵다.
왜 그게 어려웠을까?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확신이 없어서'였던 거 같다.
비본질을 버리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것이고, 다른 덜 중요한 것들을 했을 때보다 더 큰 결과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은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 아니라도 어떻게 되진 않겠지. 하는 믿음이 있어야, 과감하게 무언가를 버릴 용기도 나오는 거니까.
디터 람스도 속으로 '나 개쩌는 디자이너야' 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플라스틱 뚜껑만 씌운 거 아니겠냐고.
비본질을 버리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다행인 건 고민을 거듭한 덕분에 내게도 확신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씩 뚜렷해진다. 덕분에 전보다는 좀 더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거 같다.
그래서 2022년 내 목표는 ‘Less, but better’다.
올해는 덜 중요한 걸 과감하게 내려놓는.
내게 정말 중요한 걸 진득하게 파는.
그런 한 해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