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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Aug 04. 2017

누구나 이해하는 로보 어드바이저 (1)

로보 어드바이저 Robo-advisor

작년에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승리하면서, 국내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그 바람을 따라 유행하게 된 단어 중의 하나가 로보 어드바이저다. 

정의에 따르면 로보 어드바이저는 로봇(robot)과 자문가(advisor)의 합성어로 알고리즘에 의한 투자 관리 서비스를 말한다.


수많은 업체가 '금융투자계의 알파고'를 표방하고 나섰다. 언론이 이를 집중 조명했다. 금융 분야는 워낙 트렌드에 민감해서인지 그 당시 '로보 어드바이저'에 관해서는 한동안 기사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로보 어드바이저는 오해도 많고 광고도 많고 거품도 많은 분야다. '빅데이터'와 비슷하다. 빅데이터가 유행이 되자 데이터를 활용하는 모든 회사와 제품들은 너도나도 빅데이터를 붙여 광고했다. 사실 빅데이터가 처음 등장한 맥락과는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로보 어드바이저 관련 기사도 제목을 보면 멋있는 말은 다 들어있다. '머신러닝과 빅데이터로 주식시장을 예측한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투자한다' 등등이다.


게다가 일단 ‘금융’ 분야는 말만 들어도 어렵다. 어려운 금융 용어, 기술 용어들이 나오면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나도 처음 로보 어드바이저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투자 관련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나서야 로보 어드바이저의 기반 기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까지 땄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로보 어드바이저를 알기 위해서 ‘금잘알’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블록체인 글’에서도 썼듯이 인터넷 프로토콜의 원리를 알아야 인터넷을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의 원리와 역사는 몰라도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그 기술을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로보 어드바이저에 관심은 있었지만, 여전히 감은 오지 않는 분들을 위해 로보 어드바이저를 쉽게 설명해보았다. 어려운 금융 용어는 최대한 넣지 않았다. 이 글을 읽고 ‘로보 어드바이저가 대체 뭘 하는 것’이며 ‘나에게는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좋겠다.



초보 아빠 철수 씨의 장보기 앱

여기 초보 아빠가 한 명 있다. 자취만 10년 해온 철수 씨는 시장에 가서 한 달 치 먹을 장을 봐오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런데 마트에 가보니 정말 수많은 식재료가 있다. 나는 어떤 게 건강하고 어떤 게 맛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 식재료도 직접 조합을 해서 요리를 할 수도 있고, 가공식품을 살 수도 있다.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 철수 씨는 패닉에 빠진다. 이럴 때 식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조언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철수 씨가 장 보러 갈 때 개인 영양사를 데리고 다닐 만큼 부자는 아니다.


그런데 이때, 요즘 유행한다는 장보기 앱이 떠올랐다. 앱을 열어보자 영양가와 맛이 조화된 맞춤 장보기 리스트를 제시해준다. 맛과 건강에 가중치를 줄 수도 있는데 철수 씨는 아무래도 가족이 먹을 거니까 건강 쪽에 가중치를 올린다. 자동으로 장보기 리스트에서 건강한 음식의 비중이 올라간다. “삼겹살 얼마 상추 얼마, 마늘 얼마 사시고요. 아 유제품이 부족하니 이것도 5% 정도 사세요!”라고 되어있다. ‘와 이거 편리한데?’라고 철수 씨는 생각한다.


물론 당신이 경력 20년 차 주부라면 이런 앱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20년을 장을 보셨다면 우리 가족의 입맛, 요즘 제철, 이 슈퍼는 이게 싸고 저 슈퍼는 이게 싸고 이런 고급 정보를 모두 꿰뚫기 때문이다. 그런 정보를 가진 고수라면 굳이 필요 없는 서비스다. 하지만 오늘 처음 장을 보러 온 철수 씨에게는 적어도 ‘평타’는 칠 수 있는 이 장보기 앱이 아주 유용하다.


눈치챘겠지만 이 이야기의 장보기 앱이 바로 로보 어드바이저다. 마트가 금융시장이고 투자 대상이 식품들이라고 하자. 금융 시장의 소비자들은 자신이 가진 돈을 좋은 자산들에 투자하고 싶다. 그렇지만 금융 시장에는 마트에 있는 모든 식품 종류만큼이나 많은 금융 상품들이 있다. 정보나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쉽게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로보 어드바이저는 투자 위험과 수익을 고려해서 어디에 얼마큼 투자하세요라고 하는 '금융 상품 장보기 리스트'를 알려준다. 


바로 이게 로보 어드바이저의 단순한 본질이다.



자산배분

그런데 금융 상품은 왜 ‘조합’이 필요할까? 그리고 그 조합은 어떻게 ‘영양가’와 ‘맛’을 둘 다 보장할 수 있는 걸까? 흔히 투자를 할 때는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금융시장은 변화무쌍하다. 쨍쨍한 봄 같았다가도 잠깐 뒤에 보면 꽁꽁 얼어붙어 있다. 언제 내가 투자한 자산의 가격이 오르고 내릴지 모르니 다양한 종류의 자산을 사서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도시에 여행을 가면, 일단 돈부터 나누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갑에 들어있는 돈을 나눠 여행용 가방에 조금, 가방에 조금씩 넣어둔다. 운이 안 좋아 소매치기가 지갑을 털어가도 3분의 2는 남아있다.


자산 배분은 분산투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분산투자는 단순히 전체를 n분의 1로 나눠 투자한다면, 자산 배분은 자산별로 적절한 비율을 구해서 투자한다. 여태까지 나타난 데이터를 가지고 이러저러한 복잡한 계산을 해서 이 자산에는 몇 퍼센트, 이 자산에는 몇 퍼센트 같은 식으로 적정 비율을 구한다.


패시브 투자

자산을 배분하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럼 어떤 자산을 골라야 하는가?


투자를 나누는 기준 중에 ‘액티브 투자’와 ‘패시브 투자’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프랜차이즈 카페에 투자한다고 해보자. 액티브 투자란 열심히 노력해서 특정 자산의 가격을 예측한 뒤에 그 자산을 사고팔아서 수익을 내는 투자다. 즉 쉽게 말하면 ‘내 생각에 앞으로 스타벅스가 뜰 것 같으니까’ 가진 돈을 스타벅스에 다 거는 방법이다. 고수익 고위험이다.


패시브 투자는 반대로 모든 자산에 다 조금씩 조금씩 거는 방법이다. 뭐가 오를지 내릴지 잘 모르겠고 그런 거 예측하려면 시간, 돈 많이 들고 해도 뭐가 오를지 내릴지 잘 모르겠다. 그러니 스타벅스도 조금 사고, 카페베네도 조금 사고, 투썸플레이스도 사고 주요 업체들을 다 조금씩 산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딱 전체 카페 시장의 평균 성장만큼 수익을 올린다. 예측할 자신은 없지만, 카페 산업이 길게 봐서 잘 될 것 같다면 평균 수익률만 얻어도 노력 대비 수익이 크다. 액티브 투자 대비 수익과 위험이 둘 다 낮다.(참고로 금융계에서 ‘패시브 투자 대 액티브 투자’는 ‘짜장이냐 짬뽕이냐’ 만큼 해묵은 논쟁이다.)



자산 배분과 패시브 투자의 조합

이 두 가지 전략, 자산 배분과 패시브 투자를 조합하면 일반 투자 대비 훨씬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저위험 저수익인 예금과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 사이에 존재하는 ‘중위험 중수익’ 투자가 가능하다. 

그런데 자산 배분을 제대로 하려면 무슨 자산을 선택할지, 어떤 비율로 투자할지 정해야 한다. 이를 포트폴리오(portfolio)라고 한다. 

포트폴리오의 예시


사실 굉장히 손이 많이 드는 일이다. 혹시 내 포트폴리오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지, 금융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항상 점검해야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부담스럽고 귀찮다. 투자의 전문가가 아니거나 투자금액이 소액이라면 더욱 그렇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바로 이 자산 배분을 통한 패시브 투자를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자동화해준다. 초기 포트폴리오들의 비율을 계산하고, 유지 관리해주는 것이 로보 어드바이저의 핵심적인 기능이다. 


포트폴리오의 유지 관리란 시장 변동에 따라서 지속해서 비율을 맞춰주는 것을 말한다. 만약 50대 50으로 자산을 배분하기로 했다고 하자. 그런데 어느 날 주식 시장이 20% 오르고 채권이 20% 감소했다. 그러면 이제 나의 총자산에서 주식의 가격은 60이 되고 채권의 가격은 40이 된다. 60%로 비중이 바뀐 것이다. 패시브 투자는 이 가격 변동에 베팅하지 않고 가던 대로 가야 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다시 이 포트폴리오 비중을 원래대로 돌려줘야 한다. 이 과정을 리밸런싱(Rebalancing)이라고 한다. 이 단계까지 로보 어드바이저는 자동으로 대신해준다.


즉, 로보 어드바이저의 투자 자문은 올라갈 것 같은 주식을 예측해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주식을 샀으면 채권도 몇 프로 사고, 부동산도 몇 프로 사야 한다는 식의 ‘조합’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투자 방식은 단기간 고수익을 올릴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예금만큼 안 전하면서도 중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에 금융 전문가들이 하던 일을 알고리즘이 대신해주기 때문에, 인건비가 줄어들고 그만큼 서비스 제공 수수료가 낮다. 똑같이 5% 수익률을 올려도 수수료가 2%인 펀드는 5-2 = 3%가 최종 수익률이지만 로보 어드바이저가 0.5% 수수료를 뗀다면 4.5%가 최종 수익률이 된다. 수수료가 적으니 소액도 관리할 수 있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모델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바로 이러한 장점들을 내세워서 꽤 인기를 끌었다. 주로 IT기술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많이 어필했다고 한다. 젊은 층들은 배달 주문을 시켜도 직접 전화하는 것보다 앱으로 하는 걸 선호한다. 대면 상담이 필요 없이 앱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투자 욕구가 있는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미국 로보 어드바이저는 Tax loss harvesting이라고 하는 절세 알고리즘도 큰 역할을 했으나 너무 길어지므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펀드랑 뭐가 다른 거야?

펀드는 개인투자자들에게 돈을 받아서 전문가가 대신 투자를 해주는 금융 상품이다. 언뜻 보기에 사람 대신 컴퓨터가 한다는 것 빼고는 로보 어드바이저도 펀드랑 똑같아 보인다. 실제로 금융권에서 ‘로보 어드바이저 펀드’라고 광고하는 상품들을 내놓고 있으므로 헷갈리기 쉽다.


펀드와 로보 어드바이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개인화’다. 펀드는 내가 돈을 내서 참여할 뿐 그 펀드가 어디에 투자하는지에 대해서 결정 권한이 없다. 펀드별로 일정한 투자 유형이 정해져 있어서 그에 맞춰서 투자한다. 투자자 개인의 성향을 고려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로보 어드바이저는 펀드와 같이 여러 명이 똑같은 자산에 투자하는 상품이 아니다. 따라서 개인별로 기대하는 수익률 수준과 목표 투자 기간 등에 따라서 투자 비율을 조정해준다.


비유하자면 펀드는 기성복이고 로보 어드바이저는 주문 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로보 어드바이저가 내놓는 포트폴리오도 그렇게 다양한 건 아니다. 현재로서는 기대수익률 상, 중, 하 정도로 나누어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여러 가지 펀드를 조합해주는 로보 어드바이저는 가능하다. 펀드도 하나의 투자 대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펀드에 어떤 비율로 투자하세요라고 조언해주는 로보 어드바이저도 있다. 


참고로 로보 어드바이저가 기존의 금융 상품들과는 다른 유형임에도 불구하고, (엄밀히 말하면 투자 자문/관리 서비스이다) 로보 어드바이저가 다른 금융 상품인 랩, 펀드, ISA 등과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직 법적으로 로보 어드바이저와 관련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화에 보수적인 금융권에서는 법적인 리스크가 존재하는 새로운 방법보다는 기존의 틀 안에서 로보 어드바이저의 장점을 녹여내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업체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도 하는 등 로보 어드바이저 제도 마련을 하고 있지만 로보 어드바이저가 금융시장에 제도적으로 안착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거 알고리즘 트레이딩 아니야?

사실 알고리즘을 사용한 투자는 그렇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금융시장에서는 예전부터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투자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현재 거의 절반이 넘는 주식 거래가 알고리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사람이 직접 주식을 살고 파는 게 아니라, 미리 프로그래밍해둔 컴퓨터가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다. 이 알고리즘들은 금융시장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판단을 내린다. 알고리즘의 종류는 엄청나게 다양하며 수익을 낼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기 위해 금융가는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수학적인 알고리즘을 만드는 사람들을 금융공학자, 혹은 퀀트라고 부른다.


데이터에 기반을 둬서 투자 결정을 한다는 점, 알고리즘이 투자를 대신해준다는 점에서 로보 어드바이저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사촌뻘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로보 어드바이저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서 대중화시킨 서비스다.



투자를 요리라고 한다면, 알고리즘 트레이딩은 과학적 요소를 사용에서 맛의 극한을 추구하는 셰프들의 스킬이다. 반면 로보 어드바이저는 셰프의 음식을 모든 사람이 무난하게 먹을 수 있게 표준화해서 냉동식품으로 판다고 보면 되겠다. 기존에 미식을 즐기던 분들에게는 냉동식품이 입맛에 맞지 않겠지만, 여태까지 비싸고 그런 음식을 먹어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냉동식품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여기까지 로보 어드바이저의 기본 개념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로보 어드바이저는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용어라 이 외에도 로보 어드바이저로 불리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유형들을 소개하고, 로보 어드바이저가 정말로 금융시장을 뒤집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짚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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