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범근 Aug 06. 2017

누구나 이해하는 로보 어드바이저 (2)

로보 어드바이저 Robo-advisor

로보 어드바이저의 또 다른 유형들

로보 어드바이저는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로보 어드바이저를 알렸던 것이 바로 베터먼트(Betterment)와 웰스프론트(Wealthfront)라는 회사다. 여태까지 설명했던 로보 어드바이저의 개념은 바로 이 두 회사가 만들어냈다. 국내 기업들도 대부분 이 두 기업을 벤치마킹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로보 어드바이저 시장은 아직 ‘표준’이라는 것이 자리 잡을 만큼 성숙한 산업이 아니다. 베터먼트와 웰스프론트 외에도, 나름의 차별화 포인트를 내세운 로보 어드바이저 회사들이 많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면서 변화를 준 유형들인데, 간단하게 3가지로 나누어서 소개해보겠다. 순전히 개인적인 분류임을 밝혀둔다.


1) 혼합형

혼합형은 로보 어드바이저와 사람이 제공하는 재무 설계 서비스를 혼합한 서비스다. 대표적으로 퍼스널 캐피탈(Personal Capital), 베터먼트 인스티튜셔널(Betterment institutional)이 있다. 하이브리드형 서비스에 가입하게 되면 다른 로보 어드바이저와 마찬가지로 포트폴리오 관리를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전담 재무설계사가 배정된다. 고객은 담당 재무설계사와 웹사이트 혹은 앱에서 직접 상담을 할 수 있다. 재무설계사들이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포트폴리오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거나 알고리즘이 제공하지 못하는 자산 관리 서비스까지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Personal capital의 대시보드


물론 사람이 개입하는 만큼 로보 어드바이저의 강력한 장점인 저렴한 수수료는 다소 포기해야 하지만, 온전히 디지털 채널로만 소통하는 것이 불편한 소비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차별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2) 맞춤형

맞춤형은 조금 더 전문적인 투자자들을 공략한다. 단순화한 포트폴리오 대신에 직접 자신만의 알고리즘이나 직관을 포트폴리오에 반영할 수 있게 해준다. 투자 자동화의 장점과 저렴한 수수료는 살리면서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개입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만족하게 하는 전략이다.


Motif investing이라는 회사는 테마주 포트폴리오에 초점을 맞춘 로보 어드바이저 업체다. 자신이 직접 포트폴리오의 테마를 선택할 수 있다. 사이버 보안, 3D 프린팅, 셰일가스, 금리 변동 등등 테마가 매우 다양하다. 고객이 개인적으로 사이버 보안에 대해 잘 알아서 관련된 주식에 투자하고 싶다고 해보자. Motif investing에 가면 이미 구성되어있는 사이버 보안 포트폴리오를 클릭 한 번으로 구매할 수 있다. 또 참여자들이 직접 자신이 만든 포트폴리오를 올리고 다른 사람이 그 포트폴리오가 좋은지 나쁜지 투표할 수도 있다.

motif investing이 제공하는 포트폴리오들

비유하자면 멜론이나 벅스에서 제공하는 플레이리스트와 비슷하다. 플레이리스트가 특정 노래를 고르기 어려운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테마로 묶인 노래 리스트를 제공하듯이, Motif investing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주식을 큐레이션하는 서비스다. Motif investing 말고도 ‘투자 전략’을 공유, 평가,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 등도 생겨나고 있다.


3) 소액투자형

에이콘이라는 재미있는 서비스가 있다. 이 서비스를 쓰면 내가 카드 결제를 할 때 나가는 돈 일부를 자동으로 투자한다. 예를 들어, 내가 편의점에서 13,500원을 썼다면 카드로 결제할 때 자동으로 반올림해서 14,000원이 결제되고, 나머지 500원이 에이콘을 통해 나의 포트폴리오에 자동으로 투자된다. 우리가 잔돈이 애매하게 남으면 돼지저금통에 저축하는 것과 같다. 돼지저금통 대신 주식/채권에 투자한다는 점만 다르다.


이 서비스의 목표는 투자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에게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해서 부담감을 줄이는 것이다. 수백만 원을 투자하는 것은 어려워도 결제할 때 매번 몇백 원을 저축한다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에이콘에 따르면 한 달 평균 30달러에서 180달러 정도를 투자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소액 저축 서비스를 마이크로세이빙(microsaving)이라고 부른다.

Acorn 앱 화면


에이콘과 같은 마이크로세이빙 서비스의 단점은 운용 금액이 적어서 수수료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는 점인데, 이점을 무지막지한 스케일로 극복해낸 서비스가 있으니 바로 중국의 위어바오다.


중국 전자상거래의 최강자 알리바바는 전자결제 시스템 알리페이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전자결제가 가장 발달한 나라다. 전체 결제의 절반 이상이 전자 결제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중 알리페이는 점유율 1위의 전자결제 서비스다.


알리바바는 2013년 6월에 알리페이 계정의 여유자금을 금융상품에 바로 투자할 수 있는 ‘위어바오’를 출시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네이버 페이로 결제하고 아직 계정에 남아있는 돈을 클릭 한 번으로 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다만 자산 배분을 하는 로보 어드바이저와 달리 위어바오는 초단기 펀드(MMF)에 투자한다.

위어바오 앱


단순한 서비스지만 대륙의 스케일은 역시 남달랐다. 출시 이후 위어바오는 무시무시한 돌풍을 일으켰고, 시중 은행들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규모가 성장했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텐센트와 샤오미도 비슷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그러나 위어바오는 계속 승승장구하며 2017년 4월에는 자산 운용 규모 187조 원으로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J.P Morgan을 제쳤다!)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자회사의 이름은 소액 투자를 뜻하는 ‘앤트 파이낸셜’인데, 그야말로 개미들의 돈이 모여 금융시장을 뒤흔든 셈이다. 물론 위어바오의 성공은 중국의 특수한 상황(금융 인프라의 미비, 특이한 금리 체계)이 만들어낸 것으로 모방 가능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한계점

그래서 로보 어드바이저는 한국의 금융 시장을 완전히 뒤집을 것인가? 나는 ‘아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원조인 미국에서도 아직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로보 어드바이저가 대중화되기 위해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IT 기술이 금융시장에 침투하는 전체적인 핀테크(fintech) 트렌드는 바뀌지 않겠지만, 로보 어드바이저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국내 로보 어드바이저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한국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다. 저금리 시대가 된 것은 하루 이틀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인들의 금융자산은 대부분이 예금이나 보험 등 원금 손실의 위험이 거의 없는 자산들에 쏠려있다. 일본 이외에는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이른바 ‘부동산 불패신화’는 정말 강력해서 돈 있는 사람들은 금융자산보다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주식 투자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인식이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금융 투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적다.  투자하려면 먼저 투자에 적용되는 알고리즘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손실을 보고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앞서 설명한 자산 배분의 원리, 투자 자산에 대한 이해는 해야 한다. 사실 어려운 개념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투자 지식도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무조건 대량 판매 시장(mass market)을 노려야 하는 상황에서, 로보 어드바이저는 일단 ‘잘 모르겠다’라는 큰 벽을 넘어야 한다.



두 번째, 비대면 채널의 한계다. 우리나라에서 투자할만한 여력이 있는 세대는 주로 50대 이상이다. 이 세대는 비대면 채널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온라인에서 투자 조언을 받는다는 데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게다가 로보 어드바이저는 대면 채널보다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적다. 투자를 어디에 얼마큼 하세요라는 말만 해주는 로보 어드바이저와 달리, 대면 채널에서는 개인 재무설계, 부동산, 세무, 상속 등 다양한 영역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들은 이왕이면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을 것이다. 게다가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대면 자산관리 서비스는 고객 확장을 위해 점점 더 문턱을 낮추고 있다.


물론 로보 어드바이저는 대면 채널의 직접적인 경쟁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아마 현재 있는 부유층 대상 대면 자산관리 서비스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 쇼핑이 뜬다고 해서 백화점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기존 서비스를 받지 못하던 고객층을 공략해서 전체 시장을 크게 만들 것이다. 다만 새로운 고객층인 젊은 층이 가진 투자 자산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연령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비대면 채널이 더 친숙해져야만 넓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수익성이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수수료가 훨씬 낮다. 그 말은 투자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고객이 필요하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면 훨씬 더 많은 운용자산에 도달해야 한다. 박리다매해서 돈 버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장의 크기가 아직 그 정도에 못 미친다. 투자 시장이 훨씬 큰 미국에서 선도 업체인 betterment는 3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지만, 매출은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게다가 문제는 기존의 금융 대기업들이 이미 확보한 고객층을 활용하여 로보 어드바이저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형 자산운용사인 Vanguard는 2015년에 5년이나 늦게 로보 어드바이저를 출시했는데, 출시하자마자 운용 규모 1위로 올라섰다. (Betterment는 2009년에 시작했다.)

2017년 1월 기준 미국 로보 어드바이저 운용금액 순위 / 출처: AcceleratingBiz


이렇듯 로보 어드바이저 기술의 진입 장벽이 높지 않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결국, 가격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텐데, 대기업이 자본력을 동원하여 저가 정책을 펴면 다른 로보 어드바이저 업체는 수익을 내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시나리오가 되지 않으려면 가격 이외에 다른 부분에서 서비스를 차별화해야 한다. 다른 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무언가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 상황을 알고 있는 미국의 로보 어드바이저 기업들은 여러 가지 차별화된 기능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금융권에서 로보 어드바이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수많은 상품을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차별화만이 살 길이다. 다만 스타트업들에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대기업은 속도가 확연히 느리다는 점이다. 웹이나 모바일 서비스의 고객 경험(UX)도 아직은 스타트업 서비스에 못 미친다. 결국은 대기업이 따라오기 전에 얼마나 시장에서 차별화된 영역을 선점하느냐가 수익성 확보의 관건이 될 것이다.


네 번째는 좀 더 장기적인 문제점이다.

정말로 인공지능이 투자를 할 수 있는가?


물론 현재 로보 어드바이저 업체들은 모두 AI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걸 잘 살펴보면 AI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분석 스킬을 사용한다는 말이지(사용이라도 하면 다행)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진짜 투자를 하는 게 아니다. 


아직 금융시장에서 성공한 인공지능은 없다. 진정한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해서 알고리즘을 업그레이드한다. 알파고를 만든 엔지니어들은 알파고에 기보를 주고 학습시킬 뿐 실제로 알파고가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모른다. 이게 바로 현재 인공지능의 핵심 기술인 ‘딥러닝(Deep learning)’의 특징이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투자 알고리즘은 사람이 만들어준 규칙에 의해서 자동화된 투자를 진행할 뿐, 자신 스스로 금융시장의 패턴을 학습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인공지능들이 바둑이나 체스를 먼저 시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바둑이나 체스는 정해진 룰이 있고 그 안에서 패턴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턴의 경우의 수가 많을수록 학습하기가 어렵다. 바둑은 체스보다 훨씬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으므로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이 체스를 두는 인공지능이 더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둑조차도 금융 시장의 복잡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금융 시장은 전 세계와 연결되어있으며 셀 수없이 많은 변수가 영향을 미치고, 아주 작은 충격 하나로도 금융 위기가 닥치기도 하는, 현존하는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 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란 말은 붙이니까 멋있어서 쓰는 것일 뿐, 실제로 인공지능이 투자하는 로보 어드바이저는 없다고 보면 된다. 로보 어드바이저 관계자분들이 보고 기분 나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미국의 선도 업체인 웰스프론트(Wealthfront)나 베터먼트(Betterment)의 핵심 알고리즘도 퀀트들이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짜 넣는 것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쓴다고 광고도 안 한다.


위험한 점은 대중에게 인식된 로보 어드바이저가 ‘투자하는 알파고’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물론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투자하게 될 것이지만, 아마 그때가 되면 인공지능이 벌써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활동을 대체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투자하는 시대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가치는 인공지능에 의한 시장 예측이 아니다. 단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투자 관리/자문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고 대중화하는 것이다. 투자를 편리하게 도와주는 도구이지 금융시장에서 백 수 앞을 내다보는 알파고 9단이 아니다. 만약 이런 기대로 로보 어드바이저의 발전을 지켜본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이런 소비자들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고 진짜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지가 최대의 과제가 될 것이다.


내 생각에 로보 어드바이저가 바라는 궁극적인 결말은 모든 금융 활동의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구글이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를 자신의 플랫폼 위에 올리고, 페이스북이 인간관계를 자신의 플랫폼 위에 올렸듯이, 인간의 저축/투자/소비와 같은 금융 활동이 하나로 통합되는 플랫폼이 로보 어드바이저의 최종 목표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금융계의 구글, 페이스북이 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애물은 많이 있지만, 기술은 항상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로보 어드바이저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이해하는 로보 어드바이저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