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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Oct 22. 2017

10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달라진 6가지

100일 동안 100개의 글을 쓰고 느낀 점

100일 동안 매일 글쓰기에 도전하다

7월 10일부터 10월 18일까지 100일 동안 매일매일 한 개의 글을 올렸다. 글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끄적거림부터, 책 내용을 발췌하고 느낌을 달아놓은 것도 있었고, 내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한 글도 있었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쓴 글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글이든 간에, 매일매일 한 개의 글을 썼다.


100일 글쓰기에 도전하기 전에도 글을 항상 쓰고 싶었다. 그전까지 내가 쓰는 글들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단편적인 생각을 끄적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글쓰기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점점 느끼게 되면서, 메모에서 벗어나 제대로 짜임새를 갖춘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만 한 채로 시간이 갔다.


교환학생을 갔던 해의 12월이었다. 가을학기가 끝나고 대부분의 친구가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집에 돌아갔다. 기숙사는 텅 비어있었다. 심심했다. 시간도 많으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공개된 곳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 살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화란 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적었다. 그것이 내 브런치의 시작이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재미있었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양이나 시간은 불규칙적이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많은 사람이 글을 잘 쓰려면 꾸준히 매일매일 써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나도 글을 습관처럼 꾸준히 쓰고 싶었다.


그때 어머니가 나에게 숭례문 학당의 100일 글쓰기 프로그램을 알려주었다. 온라인으로 매일 한 개의 글을 제출하는 모임이다. 약 30명 정도의 멤버들이 자신의 글을 올린다. 서로에게 댓글을 달아주기도 하고, 코치는 마감 독촉을 한다. 일종의 글쓰기 PT라고 해야 할까? 글쓰기를 혼자서 꾸준히 하기 어려우니까 다 같이 하자는 취지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잘 맞아서 흔쾌히 시작했다. 7월 10일에 시작해서 100일 차인 10월 17일까지 매일매일 글을 올렸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결국 완주를 했고 이 100일간의 경험은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


100일 동안 글을 쓰면서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1. 글쓰기 습관이 생겼다.

흔히 ‘글쓰기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써야지’라고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서는 글을 쓸 수 없다. 일단 자리를 잡고 뭐라도 앉아서 쓰기 시작해야 한다. 처음에는 괴롭다. 안 하던 짓을 하니까 몸이 거부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글쓰기는 어느샌가 습관이 된다. 글 쓰는 근육이 생긴다. 내 뇌가 적응한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매일 일정하게 글을 쓰면서 ‘글 쓰는 습관’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처음 100일 글쓰기를 시작할 때, 내 목표 또한 ‘글쓰기 습관 만들기’였다. 성공한 것 같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달라졌다. 매일 글쓰기가 처음 시작할 때만큼 어렵지 않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덜하다. 딴 일을 하다가도 ‘오늘은 뭐 쓰지?’하고 생각한다. 수업을 듣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친구들하고 얘기를 나눌 때 그것들을 활용해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마감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00일 동안 글쓰기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물론 그렇다고 글이 막힘없이 좔좔 써진다는 말은 아니다. 의자에 앉아서 쓰기 시작하는 것까지는 잘 된다는 뜻이다.



2. 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으로 유명한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의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항상 3가지 주문을 욉니다. 첫 번째는 ‘남들은 내 글에 관심이 없다 ’입니다. 여러분들 결혼식장가서 주례사 열심히 듣습니까? (웃음) 주례서시는 분은요, 밤새도록 그거 써서 벌벌 떨면서 주례사를 해요. 아무도 안 듣는데. 실제로 여러분들 남의 글을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그렇게 보는 사람 없어요. 그러면서 자기 글은 남들이 열심히 볼 거라고 착각해요. 그리고 혼자 막 벌벌 떨어요. 다른 사람은 그다지 관심 없습니다.”


‘사람들은 내 글에 관심 없다’. 100일 동안 글을 쓰면서 느꼈는데, 이게 바로 글을 꾸준히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글을 쓸 때 누군가 읽고 평가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글은 막힌다. 내 안의 편집자가 “지금 이것도 글이라고 쓴 거야?”라고 소리치면서 빨간펜을 휘두른다. 그때부터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나도 100일 글쓰기를 할 때 항상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이거 어차피 남들 관심도 없는 글이야.’ 물론 실제로는 많은 분이 (감사하게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의식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글 쓰는 게 한결 쉬워졌다. 엉터리 글이라도 일단 써놓고 나중에 고치는 게 낫다. 끙끙거리면서 써봤자 처음부터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


다음은 100일 글쓰기 코치님이 올려준 글이다.

"나는(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생각하는데, '써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지점에서부터 출발할 경우, 시동이 걸리기까지는 상당히 힘이 들지만 일단 바이크가 기동력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오히려 편해집니다. 왜냐하면 '써야 할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말을 바꾸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얀 화면 앞에서는 누구나 망설이게 됩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정하지 못한 분들은 깜박이는 커서를 보며 더욱 하얀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요. 주제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심하게 됩니다.

그럴 때는 떠오르는 문장을 일단 적어보세요. 단어도 좋습니다. 과감함이 필요합니다. 적었다가 아니다 싶으면 지우면 되잖아요. 첫 문장부터 너무 잘 쓰려고 하면 글쓰기가 어려워집니다. 부담을 내려놓으세요. 뭐라도 몇 줄 적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무라카미의 말처럼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단 시동부터 걸어봅시다.


백번 맞는 말이다. 써보면 안다. 이제 글이 막힐 때는 내가 뭘 쓰는지 의식 안 하고 일단 쓴다. 무라카미가 말한 것처럼, 어디로 갈지 몰라도 일단 바이크에 시동부터 건다. 그러면 어디든 가게 된다. 막상 쓰기 시작하면 머릿속에서는 쓰레기였던 글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러다 한두 번쯤 제대로 된 글을 써내면 그때의 희열이란!


“쓰고 싶지 않을 때도 글을 써라. 쓰고 있는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별로인 글만 쓰게 될 때도"
- 애거서 크리스티


4. 개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반복해서 쓰다 보니 글을 쓰는 약간의 요령이 생겼다. 글을 생산적으로 쓰려면 개요가 정말 중요하다. 개요만 잘 써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글을 쓸 때 항상 개요부터 짜는 데 익숙해졌다. 글의 각 파트는 말하고 싶은 바를 전달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 흐름을 미리 머릿속에 구상하고 써야 훨씬 좋은 글이 된다.


막상 개요를 써놓고 보면 영 짜임새가 부족해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뒤집기’(내가 붙인 이름)를 하면 좋다. 나는 컴퓨터 화면을 두 개로 갈라서 왼쪽에는 개요 초안을 두고, 오른쪽에 그 개요 초안을 ‘다시 받아 쓴다.’


그렇다. 진짜 별거 아니다. 하지만 개요를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어떻게 고칠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다시 한번 받아쓴다고 생각하면서 고칠 부분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쓰면서 자연스럽게 부자연스러운 부분과 부족한 부분이 나타난다. 그래서 오른쪽 화면에 개요를 한번 ‘뒤집어 보면’ 어느샌가 새롭게 구성된 개요가 된다. 그래도 부족하면 다시 왼쪽에 뒤집는다. 그 정도 하면 꽤 만족스러운 개요가 나온다.


아예 쓸 내용이 막힌다면 브레인스토밍처럼 관련된 생각을 마구 써보는 경우도 있다. 그 뒤에 내가 쓴 내용을 다시 보면서 개요를 짠다. 70% 정도는 버려지지만, 30% 정도는 기존 뼈대를 알맞게 고쳐줄 좋은 재료가 된다.


개요를 짤 때 내가 애용하는 Workflowy


5. 마감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글을 잘 쓰기 위한 3요소는 마감, 독자, 원고료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마감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100일 글쓰기의 마감이 없었으면 매일 글 쓰는 건 생각도 못 했을 거다. 사실 마감이라고 해봤자 코치님이 톡방에 올리는 독촉과 글 올렸는지 점검하는 표밖에 없다. 


그런데도 50일 정도 지나니 ‘여태까지 한 번도 안 빠졌는데 오늘 빠지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술 먹다가도 화장실 가서 써서 올린 적도 있다. 그게 허영심이든, 페널티에 대한 두려움이든 간에 어느 정도라도 강제성을 갖는 순간 내 몸은 거기에 대비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해내고 만다.


나중에는 ‘마감 효과’를 활용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감 근처에 글을 쓰면 혹시라도 놓칠까 봐 항상 그 전에 썼다. 그런데 몇 번 마감 직전에 글을 써보니, 그 전에는 몇 시간씩 걸리던 글이 1시간에 뚝딱 나왔다.


역시 인간의 뇌는 간사하다. 급한 걸 알면 금방 써준다. 그래서 글 쓸 마음이 나지 않거나 글쓰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마감 효과를 활용한다. 언제까지 쓴다고 딱 정해놓고 쓰는 것이다. 지금도 시계를 옆에다 놓고 확인하다 보니 글이 잘 써지고 있다.


6.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발행했다.

100일 글쓰기를 하다 보니, 100일 동안 쓴 글 중에서 일부를 골라서 다듬은 뒤에 브런치에 올렸다. 100일 글쓰기 시작하기 전에는 업데이트가 지지부진했었는데 덕분에 글을 꾸준히 올렸다. 지금까지 약 36개의 글을 올렸고 구독자는 218명이다. 처음 시작할 때 조회 수가 평균 10회이랬는데 지금은 2~300회(이것도 많은 건 아니지만)가 평균이니 나름 많이 컸다.


솔직히 모든 글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떤 것은 지금 봐도 정말 못 썼고, 다시 쓰면 이렇게 안 쓸 텐데 하는 글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때의 생각들을 기록했다는 게 가치가 있고, 마치 내 자식들처럼 애정이 간다. 앞으로도 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글을 꾸준히 쓰고 여기에 쌓아 올려야겠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 보니 예상치 못한 기회도 생겼다. 내가 쓴 글을 본 IT 잡지 기자님에게서 기고 요청을 받았다. 전공자도 아닌 대학생의 글을 왜 전문 잡지에서 원하느냐고 물어보니 IT와 경제/정치를 결합한 관점이 신선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기존에 썼던 글을 수정해서 원고를 보냈고, 며칠 전에 내 글이 실린 잡지가 발간되었다.


외부 매체에 글을 기고한다고 생각하니까 글을 더 열심히 쓰게 된다. 솔직히 혼자 보려고 쓰는 글이나 브런치에 올리는 글(독자가 별로 없는) 귀찮아서 출처를 자세히 표시한다든지, 관련 논문을 찾아본다든지 이렇게까지 잘 안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공식적으로 배포(?)되는 글이라고 생각하니 치밀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좋은 공부 했다. 앞으로 만약 기회가 되면, 적극적으로 기고를 해보고 싶다.



앞으로의 목표

100일 글쓰기 도전은 아주 만족스러웠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조금 더 친절한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신변잡기에 대한 글보다는 딱딱한 정보성 글을 주로 쓴다. 게다가 내 글쓰기 모토가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쓰자’ 이다 보니 글이 좀 건조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같은 말을 하더라도 더 친절하고 재미있게 쓰는 사람이 있다. 내용이 충실해도 표현의 기술이 부족하면 읽기가 싫어진다. 글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서 가독성이 크게 달라진다.


조금 더 친절하고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묘사, 예시, 그림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생각 중이다. 사실 몇 번 시도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시간이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이어서 뒤로 미루고 말았다. 왜 출판사에 전문 편집자들이 있는지 이해가 된다. 쉽고 재미있게 쓰려면 어렵고 딱딱하게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앞으로도 꾸준히 쓰는 것이다. 어차피 100 일만 쓰려고 100일 글쓰기를 한 건 아니었다. 앞으로 100일, 1000일, 아니 평생 글은 쓰면서 살 거다.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글쓰기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꼭 도전해보기를 추천한다!


글쓰기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있을 때는 매사에 굉장히 예민해져요. 그래서 풀잎이나 나무 색깔 같은 것도 모두 몸에 입력해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무심하게 넘기던 풍경들이 글을 쓸 땐 의미 있게 다가오죠.
그러니 글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전에 끊임없이 책을 쓸 땐 이걸 몰랐어요. 7년의 공백을 겪으면서 깨달았죠. 요즘에는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해요. 정말 난 좋은 직업을 택했구나. 설사 생계에 도움이 안 되더라도 글을 꼭 써야지.
- 공지영 작가 인터뷰 중



* 혹시나 100일 글쓰기 프로그램에 관심 있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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