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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범근 May 27. 2019

지도가 아닌 나침반

인기 유튜브 채널 Veritasium 호스트 데렉의 인생 이야기

우연히 Veritasium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되었다. 채널 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인트로 칸에 'Life Story'이라는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이 채널을 즐겨보는 팔로워는 아니지만, 채널 메인에 걸린 이 10분 남짓의 영상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채널 호스트인 데렉 뮐러는 자신의 인생에 관해서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데렉은 남아공에서 태어났고, 퀸즈 대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그런데 사실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영화제작자(filmmaker)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의 경우는 이렇게 해야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는 '길'이 명확했던 반면에 영화제작자는 명확한 커리어 패스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매우 낮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데렉은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에 대한 꿈을 접어두고, 공학을 전공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타고 우등생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석사 학위까지 마친 그는 마침내 영화 학교(film school)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취미로 찍은 이상한 영상들(그 당시 UCC라고 불렸던)만 가지고 있는 공대생을 영화 학교에서 받아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일단 관련된 경험을 쌓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물리학 강사로 일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물리학을 가르치는 데 흥미가 생긴 데렉은 물리학 박사 과정에 다시 등록했다. 물리학과 공학을 자신이 좋아한다는 걸 새삼 깨달은 데렉은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과 영상 제작을 연결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과학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브 채널로 성공한 지금은, '과학과 영상 결합'이라는 게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막상 데렉이 그런 막연한 꿈을 가졌을 때는 유튜브라는 것도 없을 때였다. 그는 자신이 고뇌하면서 독백  영상을 클립으로 집어넣었다. 클립 속의 데렉은 "과학과 영상을 결합하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이해해주는 사람도, 시도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게 정말로 가치가 있는 일일까?"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물리학 박사를 마치고 그는 다시 영화 학교에 지원했다. 그리고 똑 떨어졌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학과 영상의 결합'을 위해서 물리학 박사와 영화 학교라는 잘 정의된, 깔끔한 커리어 패스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 몇 년 뒤인 2010년, 데렉은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멀쩡한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상한 영상 같은 걸 만드냐고 했다. 하지만 데렉은 그때가 일종의 삶의 중요한 전환점(Breaking point)라고 생각했다. 여태까지 그는 안전한 백업 플랜과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길들 만 추구해왔었다. 이제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전심전력으로(wholeheartedly) 추구해보고 싶었다.


사실 처음에 데렉의 영상은 매우 허접했다. 그도 스스로 인정한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그 사실을 잘 몰랐고, 그래서 계속 영상을 찍으면서 개선을 거듭했다. 그리고 Veritasium 채널은 550만 명이 구독하는 채널이 되었다.


그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다. 


"나도 그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너희들도 열정을 따르면 성공할 거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성공한 사람들의 생존자 편향이기 때문이다. 열정을 따라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어쨌든 성공하고 원하는 삶을 이룬 사람들의 시작은 모두 ‘도전'이었다. 논리적이거나 통계적으로는 절대 추천하거나 권장하지 않을 그런 도전들 말이다. 원하는 삶을 성취한 사람들은 논리와 통계를 무시하고 어쨌든 그 일에 도전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일이 있다면, 눈 딱 감고 한번 시도해보라.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할 수도 있는 리스크에 도전하는 게 백 퍼센트 실패한 인생보단 낫지 않을까?

영상과 과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유튜브 채널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예 유튜브 같은 게 있지도 않았다.

당신이 원하는 직업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이 새롭게 만들어낼 수도 있고. 어쨌든 시도해보자."


데렉의 인생 스토리와 마지막 멘트는 굉장히 좋은 교훈을 알려준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미리 예측하고 계획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 내가 이런 길을 통해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내 미래의 인생을 내다볼 때 지도나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이렇게 가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최적 길안내' 말이다. 이런 걸 하려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항상 걱정한다. 내가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은데, 그러면 뭘 준비해야 할까? 어떤 직장을 가야 유리할까? 등등... 


그 이유는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본능이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불확실성이 덜한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고, 사람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다. 성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헤치고 자신도 몰랐던 길들을 통해 (데렉이 유튜브라는 게 있는 줄 몰랐지만 과학과 영상의 결합한 무언가를 추구했던 것처럼) 목표를 이뤄냈다.


비유하자면 내비게이션의 최적 경로 안내는 없었지만, 대신 데렉은 나침반이 있었다. 그게 열정이든 사명이든 적성이든, 막연하게 내가 가야 할 '진북(True north)'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들고 있었다. 그리고 길 없는 세상에서 나침반을 믿고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데렉의 말처럼, 특정한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일반화를 하지 않더라도 이 스토리를 들으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기는 걸 느꼈다. 조급한 마음이 약간은 사라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 앞으로 어떤 직장에 가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내 꿈을 이뤄야 할지, 내 꿈이 어떻게 바뀔지, 지금 가는 이 길이 거기로 가는 그 길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들은 지극히 당연하다. 앞서간 사람들도 다 그런 고민을 했으니까. 원래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진다. 어떻게든 인생은 길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나는 그 길을 걷는 여행 자체를 즐기면 된다고. 지도가 없음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 대신 나침반을 들고 일단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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