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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이 Apr 27. 2020

#02 재택근무, 속터지는 팀장들

오늘 팀장 왜 저래?

"팀장님, 집에서는 서버 접속이 안 되는데요. 어떡할까요?"
"아 맞다 ,,, 그럼 문서작업밖에 못할 텐데 ,,, 휴(한숨) ,,,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김사원, 퀄리티가 지난 마일스톤에 비해 떨어진 것 같은데요."
"네. 집에서 태블릿으로 하느라 디테일 리터칭을 못했습니다."



팀원들은 쑥덕댄다.


재택 하라며? 나도 답답한데 팀장이 왜 이렇게 우왕좌왕이야?
집에는 작업환경도 갖춰져있지 않은데 어떻게 집 퀄리티랑 회사 퀄리티를 비교하는 거냐고!


머뭇거리고 제대로 말을 못 하거나 한숨을 쉬는 무기력한 팀장들. 환경이 다른데 여전히 같은 퀄리티를 요구하는 잔인한 팀장들. 그리고 그들은 막상 재택은 고사하고 출근을 한다.

이건 뭐 팀원들 보고 재택을 하라는 것인지, 하지 말라는 것인지.

하지만 이때, 당신의 팀장은 속으로 이러고 있을지 모른다.


"허허. 허허허. 허허허허허허..... ㅜㅜ"

우는 전광렬


나는 한 대기업의 팀장이다. 나 역시 평소 할많하않. 어디라도 가서 속에 품고 있는 답답함을 시원하게 끄집어내고 싶은 나는, 리더다.

여기서 잠깐. 김라떼 씨를 위한 눈높이 백과!

'할많하않'이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신조어로 보통 귀찮은 감정으로 사용되지만 말해봤자 쓰잘 떼기 없어지면 내 조동아리만 아프니 그냥 못하거나 또는 안 하겠다는 결연하고도 깝깝한 심정을 담아 10대부터 20, 30, 40대 두루두루 사용하는 오피스 용어이니 메모하세요!


전 세계적 긴급 상황 '코로나 19' 역병의 창궐. 회사는 이전과 달리 재난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됨에 따라 긴급 유급 재택근무를 결정, 전사원들의 휴대폰으로 관련 안내사항을 공지했고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들에겐 긴급 지시 사항과 가이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트라넷에서는 많은 사우들이 회사의 결단에 "좋아요" 클릭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 확진자 수도 불안감도 잦아들었지만 전 세계로 급격하게 퍼지는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늘어나면서 재택근무는 더 연장되었다.


근데 재택근무, 진짜 가능한 걸까?

내가 근무하는 곳은 보안이 철저한 IT 기업이다 보니 대외비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개발 자료 반출 불가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고사양 컴"이라는 것 자체가 일단 내 집구석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이시고 천재지변이라 출근하지 않아도 급여를 챙겨 준다는 이 꿈같은 상황에서도 "일"이라는 녀석을 육아와 병행하며 당최 재택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문자와 깨톡이 계속 온다.

"팀장님 저 그냥 출근하면 안 될까요?"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문서작업밖에 없는데요."



TV 뉴스를 본다. 전 세계의 셧다운 상황, 미국의 2020년 4월 3주 실업수당 신청 인원은 443만 명, 4월 23일 목요일 현대기아차의 공장이 5월부터 릴레이 셧다운에 들어간다는 기사가 도배되고 있다. 우리 회사는 어떨지 생각해본다. 유급 재택이니 급여는 급여대로 나갈것이고 20일 중에 10일만 출근한다고 가정하면 생산성은 절반이되고 직원들의 퍼포먼스는 페이스를 잃고 회의나 협업도 진행하기 어려우니 효율도 바닥일 것이다. 당연히 회사 (= 경영진) 입장에서도 좋을 것이 없다.


복합적인 상황에서 정말 재택, 계속할 수 있을까?


서비스 파트 팀장들은 절반의 인원으로 서비스 업무를 해야할텐데 두배로 대기해야 하는 뿔난 고객들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개발 파트 팀장들은 코로나가 오기 전에 2020년도 목표를 호기롭게 공표했는데 개발 자료 반출을 못해 효과 없는 재택을 병행하는 지금의 퍼포먼스로는 제대로 된 결과물을 기대할 수가 없다.

어린이집 개원 , 온라인 개학 등으로 인해 팀원들의 상황도 말이 아닐 터. 팀장은 어떻게든 업무 환경 개선과 팀 퍼포먼스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평범한 김 팀장들은 Working-Day 포함지 않고 결과물의 퀄리티만으로 업무를 평가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지금 대부분의 회사는 재택근무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시스템의 한계 오롯이 팀장들이 감당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바라보는 관점은 조직마다 확연히 다름을 느낀다. '추락하고 있는 회사 매출과 서비스 퀄리티를 그냥 바라만 보는 리더는 없겠지요?'라는 무언의 압박과 듬성듬성 책상의 밀도가 낮은 팀은 그 리더의 자질이 의심된다는 오묘한 분위기도 있다는 것을 다른 부서 팀장들을 통해 전해 듣는다. 어이가 없다. 시스템의 한계, 그 본질이 아니라 리더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들.


아 ,,,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자니 임원들로부터 "퀄 이게 뭐야!" "겨우 이 정도밖에 못?" 등과 같은 시베리아산 조카 십팔 색 크레파스처럼 다채로운  섭취하게 될 테고, 현실을 인정하고 목표를 낮추자니 내일이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내 책상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래. 난 일단 내 선에서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꾹 참고 전진한다. 난 리더니까.


회사에선 재택근무를 하는데 확실한 가이드도 없고 계속 우왕좌왕하는 팀장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팀장, 름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처럼.





- 하지만 현상황에서 강제 출근이나 연차 사용을 강요하거나 재택근무 신청에 불편한 눈총을 주는 팀장이라면

스트레스성 두통 복통 감기 식도염 위염 장염 면역력 결핍 어지럼증 울화병 기관지 천식 갑상선 기능 항진증 만성통증 불안장애 수면장애 자율신경 실조증 뇌졸중 암 고혈압 심근경색 등을 유발할 수 있으니

타노스

이건 뭐 타노스의 핑거스냅도 아니고,

아까운 내 수명 마법같이 반띵 되기 전에 팀 탈출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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