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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이 Apr 23. 2020

#01 우리 팀 신입사원이 퇴사하는 이유

우리 팀원 왜 저러죠?

‘미생’의 장백기는 스펙도 학력도 면접 결과도 우수한 신입 인재였다. 그런 그는 왜 그토록 어렵게 들어온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것일까?

드라마 '미생'의 신입사원 장백기

TV에서 이런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대졸 신입사원 취업 경쟁률이 35:1인데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 비율이 27.7%라는 내용이었다. 너무 놀랐다. 아무리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고 이직률이 높다고는 하나 치열하게 입시 준비하고 대학 다닐 동안 버티고 수없이 많은 지원과 반복되는 좌절을 경험하며 끝내 어렵게 들어간 회사일 텐데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아깝지도 않은 건가 하는 생각 들었다.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의지가 약하다는 둥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둥 개인주의라 주변을 불편하게 한다는 둥 소위 꼰대들의 편견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나도 그런 느낌을 받지 않는 것도 아니니 90년대생과 함께 즐겁게 공생하고 싶은 김 팀장, 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땠지? 보송보송 앳되다 못해 물색없이 순수해서 생각만으로도 낯이 뜨거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게 되는 내 생의 첫 처우 협의.
학자금 대출 이후로 계약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 그 날 덥수룩한 턱수염을 가진 팀장물었다.

"연봉은 어느 정도 생각하세요?"


연봉이라. 당최 그 녀석이 뭔지를 알아야 생각이란 것을 해볼 텐데 이건 뭐 동네 초딩도 다 아는 장면 값 얘기도 아니고. 그냥 내 선에서 가장 큰 금액이라고 생각하는 숫자에서 역시나 딴에는 가장 합리적인 것 같은 숫자를 말했다.

"월급 백만 원만 주시면 뭐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물론 그땐 정말 그럴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시간 흐르 사람과 일에 치 어느샌가부터 가슴속에 주머니에 책상 맨 윗 서랍에 고이고이 간직해두곤 하는 사직서를 호기롭게 집어 던저버리고 그 닭장 같은 깝깝한 건물을 통쾌하게 빠져나오는 장면을 상상하다 보면 불현듯 뒤통수를 치는 불길하고도 명료한 단어.

대출

퇴사하는 행복 회로를 돌리다 말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엉덩이 붙이고 다시 "책상 앞으로 가!"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90년대생은 나와는 확연하게 다름을 느낀다.  방송에서 전문가의 분석에 의하면 90년 대생들이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1위가 워라밸, 2위가 개인의 성장이라고 한다. 주변에만 물어봐도 알 수 있다. 연봉과 업무 텐션 둘 다 높은 대기업과 연봉은 낮지만 자유로운 스타트업 중 어느 곳에 지원하겠느냐 물으면 김 팀장님 세대들은 다들 전자를 고민하는 눈치지만 90년대생은 상당수 후자를 택한다. 가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 장백기가 퇴사하려고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구나.


여기서 잠깐! 김라떼 씨를 위한 체크리스트!

'워라밸'이란 Work-Life Balance의 줄임말로 나는 일도 일상도 오롯이 나 스스로 결정하고 즐길 거니까 우리 서로 각자의 삶을 존중하자는 개인적 의미와 우리 회사는 개인의 행복이 회사의 생산성에도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 믿는 민주적이며 깨어있는 곳이라는 공적인 의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현대 직장인들에겐 상식이 된 단어라는 것, 기억하고 계시죠? 당신의 워라밸은 안녕한가요?


어렵게 들어온 회사지만 신입사원과 경쟁하며 업무를 분배하지 않는 선배 때문에 장백기 '개인의 성장'이 가로막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드라마에선 다른 설정이 포함되어 원만히 잘 해결된다. 어쨌든 당시 드라마를 볼 땐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았는데 '직장생활 가치'를 떠올려보니 장백기의 심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 역시 공평하게 기회를 주지 않는 어느 팀장에게 저항한 적이 있었다. 불평등 역시 한 인간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임은 물론 팀의 가능성마저 과소평가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나는 비교적 큰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시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 중 퇴사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가?


그만둘 가능성이 높은 90년대생 신입사원들이 마냥 의지가 없고 책임감이 부족하며 개인적인 성향이라 이유없이 퇴사하는것은 아니라는 걸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내가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에 저항했던 것처럼, 그들도 그러함을.


어쩌면 90년대생 그들은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감이 나보다 월등히 강한 사람들은 아닐까. 허덕거리며 갚지도 못할 대출금을 위해 회사에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회사를 즐기고 싶다는 것, 그 차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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