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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이 May 11. 2020

#06 솔직함과 배려에 대하여

오늘 팀장 왜 저래?

제가 이러려고 이 회사 들어온 게 아닌데요.


머리가 띵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라고요. 김사원 님?"

무리 웃으며 하는 말이라고 해도, 아무리 대표님 지시사항이라 긴급하게 무리하는 게 팩트라고 해도. 그 말에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임원이 두 눈 부릅뜨고 뒤에서 쌍 레이저를 발사하고 있는 살얼음 현장에서 우리 팀원이 꺼낸 말이었다. 긴급 업무가 모두 끝나 김사원이 집으로 돌아간 후,  따로 불러 의 발언에 당황하셨다는 임원의 말을 듣고 나는 긁적긁적 "이. 웃자고 한 소리예요. 악의가 있는 친구도 아니고 일 잘하니까 봐주세요!"하고 말했지만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니징 업무로 너무 힘에 부쳐서 다른 경력직 김사원에게 선배로써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업무 방식으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것을 요했다. 그 대화를 한 계기가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은  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고 팀원 대답의 요점도 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게는, 당시 대화 중에 특별하게 중요하지도 않았던 어느 사족만 깊게 박혀버렸다.

저는 제가 팀장이 아니라서 팀장 고충 그런 건 잘 모르겠고요. 그 자리는 뭐 그런 고충 견디라고 있는 자리니까, 저는 암튼 팀장이 아니잖아요.


내가 어떤 말로 리액션을 했는지도 기억나질 않는다. 저 말만 계속 머릿속에 맴돌 뿐이다. 그 자리는 그런 고충 견디라고 있는 자리니까 자리니까 자리니까 으까으가으가으~


팀장의 마음은 강철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모두 다 똑같은 세포와 혈관과 근육과 감정으로 되어있다. 순식간에 깜빡이도 없이 "훅"하고 들어오는 팀원의 칼치기생채기가 난단 말이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콕 박힌 것처럼, 자그마한 나무 가시가 톡 꽂힌 것처럼 아프단말이다. 아물었다고 생각했는데 욱신욱신 쑤고 불쑥불쑥 화끈거리는  만성 근육통이 되어버린단 말이다.


팀장도 팀원 말에 상처 받는다.


믿고 보는 코미디 장르 장인,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단연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바로 이 부분!

메인 작가의 신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연출에서 빠지겠다고 거절하는 PD에게 방송국 선배이자 대 작가로서 "충고" 한 마디 한다고 메인 작가가 말하자 PD는 양쪽 귀를 틀어막으며 방송국 로비에서 쩌렁쩌렁 떠나갈 듯이 "충고 안 들어~~"를 외친다. 이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보조작가의 표정을 마주한 메인 작가의 자존감은 처절하게 무너져버리고 만다.


충고를 듣기 싫다며 귀를 막고 똘끼를 부리는 PD와 그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보조작가
그리고 이 모든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운 메인 작가 (그러게 심뽀좀 곱게 쓰시지 왜 꼰대짓을 해가지고는)


명장면 맞고 통쾌한 것 맞다. 하지만 저 씬이 현실에서 실제로 그것도 내게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한데 나는 아마도 그 길로 몸져누웠을 것이다. 주변에 있는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웃음거리가 되었을뿐더러 전문 업무 분야에서조차 경쟁력 없는 사람이 되었고 한마디의 반론조차 하지 못한 무능력한 상사, 그 모습을 목격한 팀원과 앞으로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리더로서 늘 생각하는 게 있다. 어떤 상사가 좋은 상사일까. 앞서 썼던 글처럼 "사람"에 대한 가치를 알고 "존중"의 문화를 만드는 리더, 적어도 그렇게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팀원이 좋은 팀원일까.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 역시 누군가의 팀원이니. 너무 솔직해서 배려를 잊고 있지는 않은지. 몸빵으로 욕 바라지가 되어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 팀장의 가슴에 내가 던진 별 뜻 없던 어떤 말들이 혹시 수를 꽂지는 않았을지.

그 팀장이 평소 나쁘지 않은 팀장이라면 말이다.


혹시라도 팀장이 마음에 상처를 받아 기운 없이 주춤한다면, 김사원 당신의 팀 평가도 함께 주춤하게 된다는 얘기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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