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세잔은 말했다. 그림은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회화, 즉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단순한 시각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감각이고, 과정이며, 선택의 연속이다. 붓 끝에 힘을 얼마나 실을지, 물감을 어떤 농도로 섞을지, 다음 터치를 어디에 얹을지—모든 것이 ‘느낌’에 의해 결정된다. 그림은 그리는 순간순간마다 수정되고, 변화하며, 작가의 내면을 비춰낸다.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말은 회화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감각을 통한 해석임을 보여준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받아들이고, 해석한 세계를 표현하는 것. 그림은 그렇게 ‘내면’에서 시작되는 작업이다.
최근 몇 년 사이, AI가 미술 영역에 발을 들였다. 특히 붓을 직접 드는 AI 로봇 화가의 등장은 놀라움과 의문을 동시에 던진다. 이 로봇은 단순히 디지털 이미지를 생성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제 붓을 들고 유화를 그린다. 엘런 튜링의 초상화를 그려 고가에 낙찰되었고, 최근에는 영국 왕과 여왕의 초상화를 그리며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우리는 AI가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몇 년 전,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모델이 만든 이미지가 미술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AI 아트’는 더 이상 신기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이제는 퀄리티도, 예술성도, 독창성도 점점 인간의 경지에 다가간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디지털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과, 붓을 들고 ‘그리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지극히 역동적인 과정이다. 화가는 손목의 미세한 각도와 붓에 실리는 압력을 조절하고, 물감의 농도를 섬세하게 조율하며, 한 번의 붓질 이후에는 다음 위치와 색을 끊임없이 판단한다. 물감은 단순히 ‘바르는’ 것이 아니라, 붓끝에서 살아 움직이며 화면 위에 감정을 펼쳐낸다. 이러한 직접적인 움직임, 반복되는 선택, 그리고 지속적인 수정의 흐름은 단순히 빛을 받아들이는 사진적인 이미지 생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물론 사진 역시 셔터를 누르기 전, 빛을 포착하기 위한 또 다른 종류의 깊은 선택과 준비 과정을 포함한다.)
로봇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정밀한 로봇 팔 기술은 공장에서 미세한 부품을 조립하는 데 쓰이고 있고, AI가 이를 조작해 그림을 구현하는 것은 기술 발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그림을 그릴 때, AI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AI 모델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최적화’를 목적으로 한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학습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산하며, 그 결과로 우리는 ‘그림을 그리는 AI’를 보게 된다. 하지만 폴 세잔이 말한 ‘센세이션(sensation)’, 즉 보이는 것을 넘어선 느낌, 감각, 내면의 진동은 AI에게도 있는가? 인간은 수많은 연습과 사유의 과정을 통해, 그림을 그리는 법을 익히고, 결국에는 그 행위 안에 자신의 세계관, 감정, 존재의 방식을 녹여낸다. 그림은 단지 기술적 표현이 아니라, 의지와 감정의 표현이다.
하지만 AI는?
AI 로봇은 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정확한 선을 긋고, 안정적인 색감을 구현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도, 감정, 표현 욕구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AI가 표현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정말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보기 좋도록 만든 패턴만이 존재하는가? AI에게도 자기만의 감각, 혹은 표현하고 싶은 내면의 움직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아니다. AI는 단지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정답’에 수렴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로봇이 더 센세이션을 느낄지 모르겠다. AI 로봇 화가는 이제 막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손과 팔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배우는 중일 것이다. 지금은 단지 학습된 기능을 수행하는 단계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보고, 감각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세잔이 말한 ‘느낀 것을 그린다’는 경지에, AI가 도달하게 될 날이 올까?
그날이 오면, AI가 그리는 그림은 단지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경험의 주체적 존재가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한 흔적이 될 것이다. AI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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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 Check: AI-DA: Painter Robot - 예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공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