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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전 Jan 10. 2022

당신이라면 10호 점도 냈을 거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요즘 회사가 힘드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매번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회사가 힘들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제 그만 얘기해요. 듣고 싶지 않아요. )

예전의 나는 이랬다. 더 이상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입막음을 하는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이상하게도 친구들의 이야기는 무한 공감이 되는데, 남편의 이야기에는 무한 공감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가장이라는 무게감을 느끼는 남편 앞에 아내의 역할은 어떠했어야 했는가?


 ( 그래요. 힘들죠? 힘들 거예요.
새로운 길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지금까지도 잘해 왔잖아요.)

  

선뜻 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 주었다면 모법답안이었을까? 나는 언제나처럼 입막음이 먼저였다.




아이와 고군분투하며 멈춤을 배운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하던 대로,
남편에게도 하고 있었구나.

믿어주는 것이 우선인데, 그 기본을 하지 못했다. 나는 아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했다. 세상 좋은 사람인 것처럼 입바른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나의 말에는 신뢰가 없었다. 남편과 언쟁을 높이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한번 해봐요.
 근데 하고 싶은 그 일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 보고, 로드맵을 짜보는 게 어때요?


 나는 최대한 남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나의 생각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았다. 어떤 아내가 남편이 회사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데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단 말인가. 나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다내 말을 합리화하는 그 순간 남편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어.


당신이 만두가게 사장이라면
10호 점도 냈을 거야.




남편의 이 한마디에 나는 눈물이 터졌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한마디는 남편을 향한 믿음이었는데 왜 그토록 안절부절못했을까? 정말 그만둘 것 같아서? 15년간 함께 살아온 내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떤 일이라도 해서 우리 네 식구를 책임질 사람임이 분명한데도 난 왜 그토록 안절부절못했던 것일까?


아마도 남편을 너무 잘 알아서 그랬던 것 같다. 정말 올인하며 뛰어들었을 남편을 알기 때문이다. 남편은 해내고야 말 사람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함께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래, 당신이 잘 해낼 것 아는데..
나는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없어.
 난 아직도 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봐.)





작년 한 해, 나만의 틀을 부수고 많이 유연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현실 앞에서 나는 아직도 떨고 있었다. 남편이 듣고 싶었다는 그 말이 나를 하염없이 울게 만들었다. 차마 남편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을 옮겨본다.



 (당신의 성실함과 열정을
 내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우리 가정을 돌보고 싶은 거잖아. 알아. 로드맵을 짜보라는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믿음의 표현이었어. 두려운 내 마음을 다독이며 당신의 도전을 응원하는...)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보지 않고도 마치 본 것 처럼 믿어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날 이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누구나 든든한 버팀목 앞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강한 울림이 남았다. 언제쯤 믿음 가득한 그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제 보다 한 뼘 더 자랐다.


남편이 듣고 싶었던 그 한마디



당신이 만두가게 사장이라면
10호 점도 냈을 거야.


가슴속에 담는다.


난 당신을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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