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를 물었다.
덕분에 엄마, 아빠, 동생, 나.....
네 가족이 아주 오랜만에 병원 1층 라운지에 모여 앉았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엄마를 문 개는 꽤나 컸던 모양이다.
개는 아무도 없는 자기집에 들어온 수도검침원을 공격했고,
길긴 해도 목줄에 묶여있었다고 한다.
엄마의 ‘살려달라’는 비명을 들은, 이웃집 이장님은 옥상에 올라 이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엄마는 처음 개의 공격을 받고 넘어지면서, 이후 여러차례 더 물렸다.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병원을 나왔다.
각각 은평구와 경기 광주에서 출발한 나와 동생은 병원 근처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웨이팅이 있어 맛집인 줄 기대했는데, 맛은 그저그랬다.
보호자의 수술동의가 필요한데, 병원에 와있다던 아빠가 연락되지 않으니 빨리 들어오라는 엄마의 문자를 받고 화가 버럭났다.
병원은 상주 보호자 1인 이외에 추가로 1인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동생은 추가 1인으로, 나는 별도의 외진환자인 척 하고 입장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병원 출입통제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지만... 들어갈 수 있었다.
수도검침을 하다가 개에 물리다니, 그것도 하필이면 자기 집 개줄에 묶여있던 크고 검은 개한테 말이다. 참으로 개같은 일이다.
엄마는 2004년 겨울 아빠가 사업을 아주 크게 말아드시고 부터 지금까지 신용이 불량한 상태로 스스로의 삶을 일구기 위해 계속 일을 하고 계신다.
그동안,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도 하고 사업도 해봤다.
한번은 망했고, 또 한번은... ‘잘 되가냐는?’ 형식적인 질문들을 다큐로 받아치며 진행 중.
지난 15년의 70%는 엄마와 내가 처한 이 환경을 원망하며 보냈고-
나머지 30%는 오히려 이 시련들을 감사하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며 아빠와 다른 결론을 만들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
수술실에 들어갈 엄마를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무창포로 빠졌다.
바람은 끈적하고 해는 너무나 느리게 지고 있다.
돈 받고 빌려주는 파라솔과 방갈로는 모두 비어있다.
낚시배에서 내리는 도시어부들의 손손마다 팔뚝만한 대광어가 목이 따인채 피를 흘리고 있다.
이제 발씻고 집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