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자신만의 스토리 텔링이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궁금해한다. 무엇을 하고 먹고 살아야 하는가?
과목선택을 해야하는 초중고 학생시절부터 직업선택을 해야하는 60대까지,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 고민에 앞서 20대 초기, 대학 전공을 어떤 방식으로 선택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나는 20대가 되던 때, 고민을 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가, 제너럴 리스트가 되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변을 속시원하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혹자는 AI의 발전에 따라 전문가가 AI로 대체될 것이라 하고 누군가는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전문적인 지식 기반으로 AI를 더 잘 활용할 줄 아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AI가 발전된 시대에는 더 많은 논의가 오가는 중이다. 나는 AI와 같은 하이테크 기술을 잘 알고 활용하는 제너럴리스트가 되기로 결론을 내렸다. 직종으로 굳이 말하자면 하이테크 사업의 Project/Product Manager 랄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지금까지도 핫한 AI 라는 키워드는 내 인생의 변곡점 중 하나에 놓여져 있는 단어다. 즉, 내가 추구하는 전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줄곧 사람에 대해 알아가길 원했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구조는 어떠한지, 인생을 살아가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지,내가 숨이 붙어서 살아가는 한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파헤치고 살아보길 희망했다. 어떻게서든 인생의 진리에 대해 꼭 알아내고 싶었다.(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이 진리에 대한 잠정적인 결론을 내게 되었다. 추후 브런치 글로 연재할 예정) 이러한 모습은 초중고 학교 다닐 때에도 나타났다. 즐겁게 공부하고 선택했던 과목이 역사 3사 (세계사, 근현대사, 국사), 사회문화, 정치, 생물과 같은 과목들이다. 사람의 삶에 대한 내용이라면 문이과 어떤 것이든 상관 없이 흥미로웠다.
고등학교는 문과를 선택했지만, 대학을 이공계로 오면서 생명공학 전공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다. 바이오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에서 더 나아가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단위와 그 기관들의 메카니즘을 알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에서의 3년을 다양한 실험실 생활과 학업을 진행하며 생명과학 진로에 대해 굳건히 하고 있을 때 였다. 그러던 나에게 찾아온 '아이폰 혁신' 소식. 대학교 3학년쯤, 아이폰3가 출시되었고 이는 엄청난 이슈였다. 휴대용 mp3 기기정도로 생각했던 핸드폰이 컴팩트한 컴퓨터 기능을 갖춘 상태로 런칭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반드시 할 줄 알아야겠군"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서 생명공학 공부를 해왔지만 지식을 알고 이를 실험하는 것을 넘어서, 나는 내 손으로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한마디로 자연과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발견'하는 것보다 '발명'하는 것을 추구했다. 그렇다보니 예정되어 있었던 컴퓨터공학부 설명회를 듣고 그 길로 복수전공을 하기 위해 교수님과 학생교과사무실을 찾아갔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학년, 시기와 상관없이 전과, 복수전공을 어느때나 할 수 있었기에 나는 뒤늦은 3학년 2학기 때부터 생명과학 1전공, 컴퓨터공학 2전공으로 복수전공을 시작하게 되었다. 심지어 2학기때부터 시작하다보니 1학기때 들어야하는 수업을 듣짖 못한 상태에서 level 2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C를 모르는 상태에서 C++부터 들었고 개론을 수강하지 못한상태에서 심화 수업을 들었다. 지옥같이 힘든 시간이었지만 컴퓨터 공부는 정말 재미있었다. 내 손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이 창조될 때마다 조물주의 마음이 잏가 갔다. 동시에 프로그래밍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만들면서 마음 속에 피어오른 한 가지 키워드가 있었으니, 바로 '창업' 이었다. 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마켓에서 선보이고 이를 고객들이 구매해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기쁠까? 어렸을 때 TV에서 봤던 '성공시대' 프로그램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그래서 중간에 한 학기는 제 3전공으로 '창업전공'을 신청해서 모의 창업까지 진행하고 밤새며 학교를 다녔다. 예전에는 창업이라는 단어가 정말 멋있게만 느껴졌다. 창업행사가 있으면 아무리 멀어도 참석하고 대표들을 동경하고 찾아다녔던 열정이 가득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실제 창업을 위해서는 알아야할 것들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관련한 회계, 법, 시장분석 등을 가르쳤는데 생명공학,컴퓨터공학을 공부하며 동시에 하려니 시간도 부족하고 모의 창업까지 한 사이클을 돌려봤던 시기에는 학교를 자퇴할까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때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은 창업이 결코 멋있게만 볼 것이 아니란 것과, 실제로 해보면 어려움이 많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창업도 사람과 사람과의 일이라는 것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힘든 대학생활이지만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사람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 바이오를 공부한 것은 자연 자체의 신비함을 알게 해 준 놀라운 경험 그 자체 였고 컴퓨터 공학을 공부한 것은 자연의 법칙에만 굴복할게 아니라 내 스스로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마음껏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게된 것이다. 또한 이를 창업 시뮬레이션에 적용해보고 스타트업 씬에도 발을 담궈보았으니 만족스러운 학부생활이 되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사람에 대해 더 깊게 연구할 수 있는 대학원을 알아보던 중, 뇌공학과가 눈에 띄었다. 사람에 대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뇌'와 연결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렇게 뇌공학과에 들어갔고 랩과 개인사정으로 입학했던 뇌공학과를 자퇴한 이후로는 다시 다른 학교의 뇌공학을 연구하는 랩의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및 로보틱스'라는 전공으로 재입학을 하였다.
우리 랩은 뇌파(腦波, Electroencephalogram, EEG)측정 도구를 활용하여 사람의 감정, 행동을 연구하는 메디컬 랩이었다. 나는 뇌파자체를 연구하기보다 사람의 행동연구에 집중하는 HCI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하였다. 주로 진행한 연구는 '뇌졸중 환자의 편마비 치료에 있어 인지재활 시스템의 실효성'에 대한 것이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재활의학과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며 실제 뇌졸중 환자를 대상으로 인지재활 시스템을 적용하고 효과에 대해 logitudinal study를 하였다. qualitative, quantitative study 내에 각종 인터뷰, 시스템 평가 등을 통해 인지재활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지 전과 후를 계속해서 추적해보았다. 그외에 게임중독에 대한 연구, 햅틱 관련 연구등을 연구실 선배들과 함께 하나씩 배워가며 진행하였다.
이처럼 석사과정동안 HCI라는 전공을 통해 사람에 대한 깊은 탐구활동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내가 집중했던 행동연구 뿐만 아니라 뇌파에 대해서도 랩에서 사이드로 연구할 수 있었다보니 사람의 인지과학적인 측면에서의 생각과 행동, 뇌과학적 측면에서의 뉴런의 기작에 대해서도 깊게 알아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 때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메카니즘으로 사람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마음'의 힘이 작용하여 몸을 움직이게 하고 행동을 바뀌게 하는 것인지에 깊이있게 사색하곤 했다. 물론 답은 둘다 영향을 준다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 부분을 잘 연구하면 사람의 삶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에 항상 생각이 머물곤 했다. 그렇게 해서 Mind-body 프로젝트 기반 창업 스토리가 시작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재할 계획이다.
나는 '사람'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탐구하기 위해 제너럴리스트가 되기로 선택했고 이를 위한 대학교, 대학원 전공을 선택했다. 물론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학문적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렇듯 어떤 일을 할 지.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고민의 기로에 서있을 때,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깊게 생각해보고 스토리텔링에 맞게 공부하며 일상조차도 목표로 하는 것을 탐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조각들로 채워보면 좋을 것 같다.
이렇듯 '사람 중심 탐구'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한 과정은 이 이후에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