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다
사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했다.
주제가 너무 하찮기에,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유난떤다 싶기에.
하지만 브런치 공간은 내 생각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기에 고민 끝에 노트북을 펴고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최근 나는 '운전면허'를 땄다.
보통 면허를 20대 초반에 따는데, 나는 그보다 늦게 땄으니 조급한 마음으로 임했고 더욱더 간절했고 운전에 대한 욕심도 많았다.
하루종일 앉아있어 둔해져버린 지금과는 다르게, 어렸을 때 '탈 것'에 대한 경험이 많았던 나는 초등학교 때도 스케이트, 스키, 달리기 선수로 나갈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다. 사실 지금도 몸이 좀 무거워져서 그렇지 운동신경이나 순발력은 좋아서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였기에 운전에도 항상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어딜가나 길을 잘 외우고 찾아가는 습성이 있던지라 운전에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랬던 나이기에, 운전을 하게 되면 '당연히 1종을 따야지. 대형도 나중에 따야지.' 이런 생각을 은연 중에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을 가진 것에 반해 당장 운전이 필요하게 느껴지지 않아 면허 따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은 회사 외부 미팅 중에 상대방으로부터 운전면허 소지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되어 없다고 말했는데, 돌아온 반응이 '운전면허가 아직도 없어? 완전 장.애.인.이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장애인 비하 발언에도 충격을 먹었고, 운전면허가 없는 것이 그렇게 치부인건가 싶기도 하여 놀랍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여러가지를 떠나서 부모님께서 연세가 있으시고 이제 아버지 혼자 운전하시기가 힘드실 것 같아 필요에 의해서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 크다.
취업하게 되면 운전면허 딸 여유가 없을테니, 지금이 적기다 싶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창동 자동차 전문학원에 등록을 하러갔다. 카운터 직원 분께 1종 보통면허를 하고 싶다고 말하니 재차 물어보시는게 아닌가. "1종은 많이 어려워요. 괜찮으시겠어요?" 그럴 수록 나는 더 자신감 있게 1종을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1종을 박박 우겨 등록을 하고 학과시험 모의고사 용지를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학과시험(필기시험)을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외울 것들이 있어서 좀 당황했었다. 상식적으로만 풀면 된다고 했는데 범칙금 같은 것은 외워야 하니 말이다. 나는 우습게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내 성격상 뭔가 시작하면 굉장히 몰입을 하는데, 이번에도 그게 발동이 된 것이다. 3~4일을 정말 몰입해서 공부 했는데, 정말 신기한 것은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고 프로토콜을 알고, 도로 상황을 시뮬레이션 돌려보며 답을 체크해보는데 너무나 흥미로웠다. 남들은 문제-답 이렇게 외운다 했을 때 나는 정말 상황을 다 고려해가며 이해하고 재미있게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자신있게 바로 시험을 보러 갔는데, 어째 내가 못본 문제들이 꽤나 나와서 당황했다. 과태료나 법 같은 부분은 모르면 그냥 틀리는 것인데, 그런 문제들이 몇 문제가 보였다. 최종 결과는 90점. 공부한 것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아 아쉬웠지만 합격 했으니 기분은 좋았다.
가뿐하게 학과시험을 보고 이제 장내기능 연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1종 포터 트럭을 몰아보는 것이다. 좋은 강사님을 만났으면 해서 음료수를 사들고 대기실에서 강사님을 기다렸다. 그렇게 처음 만난 강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클러치의 원리와 기어변환 등등에 대해 이론이 아닌 실전으로 차 안에서 배우고 만져보았다. 이미 이론은 공학적으로 빠삭하게 알고 갔던 나이기에 어려울게 없었지만 실제 기계가 구동하는 걸 느끼면서 하니까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클러치 작동시키는게 왜이렇게 힘든지, 왼쪽 발이 너무 무리가 오는 것이 아닌가. 특히 정지상태에서 움직일 때 반클러치로 시작하는데 그 섬세한 발바닥 컨트롤이 꽤나 힘들었다. 그날 연수 끝나고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의자 앞 뒤 간격 조절을 제대로 못하고 끝에 매달려서 페달을 밟았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 연수에는 의자 간격을 조절하고 하니 좀 나았는데 그래도 어렵기는 하였다. 그렇게 두번의 연수가 끝나니 바로 시험을 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연습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4시간 연습에 가장 어렵게 느꼈던 '가속구간' 은 2번정도 밖에 안해봤는데, 잘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결국 시험을 봤는데 역시나 가속구간에서 기어변속 실패하고 시동꺼짐으로 실격을 당했다. 더 이상의 실패를 용납할 수 없어 가속구간만 집중해서 연습해보기로 하고 집 근처에 있는 '고수의 운전면허'라는 시뮬레이션 자동차 연습장소에 갔다. 그곳에서는 원하는 코스를 계속해서 연습할 수 있었기에 1시간동안 가속구간 기어변속만 계속해서 연습했다. 그렇게 가속구간을 마스터하고 다음날 시험을 보았는데, 생각지 못한 첫번째 '경사로' 구간에서 시동이 두번 꺼지면서 실격을 당했다. 연습 때는 잘되는 구간들이 시험에서 계속 광탈하니 너무 어이없고 황당 그 자체였다. 문득 생각하길 이렇게까지 1종을 딸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한 번보는데 4만4천원. 연수 1시간에 4만4천원. 지금까지 들인 비용만 30만원 가까이지만 앞으로도 붙을지 떨어질지 자신이 없었다. 연습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들인 비용보다 미래의 비용을 생각해서 리스크를 줄여 2종으로 갈아타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2종으로 바꿔서 연수 2시간 받고 바로 시험보자마자 합격했다. 세상에 이렇게 쉬울수가. 엑셀과 브레이크만 조절하면 되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시동 꺼질 염려도 없었다. 1종을 하다가 2종을 하니 그렇게 안심이 되고 자신감이 붙을 수가 없었다. 이 기세를 몰아 주행 연수 6시간을 진행 했고, 이번에도 좋은 강사님을 만나 충실하게 주행 연습을 했다. 강사님이 정말 좋았는데 말씀이 매우 많으셔서 운전과 동시에 대화를 열심히 했어야 했다. 마치 양궁선수가 꽹과리 소리 들으며 연습하는 기분이랄까. 덕분에 고난이도의 운전연습을 할 수 있었다. 주행시험 전날 부모님과 코스 4가지를 다 돌아보기도 하고, 동영상으로도 길을 열심히 외웠다. 오랜만에 시험이란 걸 계속해서 보니 은근 긴장도 되었다.
그렇게 주행시험 당일날, 3시 30분에 시험을 보러 갔고 순서 2번이 걸려서 참관인 포지션으로 뒷좌석에 타고 1번 수험생이 운전하는 것을 구경하며 시험 순서를 기다렸다. 이 때 생각지 못한 위기가 왔었는데, 1번 수험생의 운전으로 뒷좌석에 앉아있던 나는 약간의 멀미를 해서 컨디션에 난조를 겪었다. (강사님도 항상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 상태에서 이제 1번 수험생의 순서가 끝나고 내 순서가 되어 무작위로 4개의 코스 중 하나 선택되는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제발 B코스만은 걸리지 말아라' 마음을 먹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B코스 입니다' 라는 글자가 화면에 보였다.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코스가 걸린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얼른 이성을 차리고 이왕 이리된거 끝내주는 드라이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회전 신호 전방 적색신호일 때, 일시정지 했다가 잘 꺾어서 지나가고. 차선 변경 두번 연속 통과. 우회전 한번 더 성공. 어린이 보호구역 통과. 지하터널 통과. 좌회전 통과. 모든 코스를 지날 때마다 너무나 갓벽한 주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급제동이나 급엑셀이 가끔 있던 것도 매우 스무스하게 조절해서 승차감, 주행감도 좋았고 차선변경에도 이상이 없었다. 다만 좌회전 시, 방향 지시등을 조금 늦게 켰다는 이유로 감점되고 어떤 이유로 감점이 되어 93점으로 골인하였다. 왜 이렇게 운전이 잘 됐는지 돌이켜보니, 연수시에는 옆에 강사님이 항상 말을 걸어서 대화하느라 운전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했는데 시험볼 때 완전히 운전에 집중한 것이 처음이라 더 잘 됐던 것 같다. (강사님의 전략이 통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2종으로는 기능,주행 모두 한번에 합격했다고 본다 (그만큼 난이도가 쉬웠기에) 과연 1종으로 했으면 얼마나 더 시험에서 쓴 맛을 보고 합격을 했을지 모르겠다. 비록 1종 자존심은 날아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1종 포터를 운전해본 경험은 나에게 기계장치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 즐거운 기억이 되었다.
운전면허를 손에 쥔 지금부터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고속도로, 대관령/미시령/한계령도 가봐야 비로소 운전을 좀 하는 축에 끼게 될 것이다. 이제는 도로를 지나쳐도 차들이 어떻게 운전하는지 그 흐름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면허가 단순히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프로토콜'을 배우고 새로운 세계관의 확장의 개념이었다. 도로 위의 세계는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이었고 또 하나의 규칙과 사람들이 어울려 있는 공간인 것이다. 생명에 직결된 만큼 안전이 우선시되는 도로 라는 공간은 그만큼 무게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과 가장 인접한 곳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게 되어 조금은 긴장되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은 정말 짜릿한 일이다. 아직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