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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poom Mar 11. 2020

불친절하고 긍정적인 실존적 관통

영화 미스터 노바디

영화 속에서 9개나 되는 니모의 삶은 친절하게 구분되거나 정렬되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다소 불친절하게 뒤얽혀서 배치되는데, 이 방식은 솔직히 말해 처음 시청하는 관람객으로서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끝날 때 쯔음 알겠더라. 왜 각기 "다른 삶"의 부분 부분이 산재된 방식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지를.


영화 주제 상으로 말하자면, 그건 서로가 다른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우리가 다 파악하지 못한 범우주의 차원에서 여러 니모들의 행동들은 니모 삶 속의 가능성들, 기회들, 선택들을 암시한다. 곧 그것은 9개의 삶이 각기 다른 인생이 아니라 니모라는 사람이 겪는 삶의 총체임을 의미한다. 단지 영화는 한 사람의 삶을 마치 독립적인 9개의 스크립트로써 보여주었지만, 오해해서는 안된다. 영화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한 평생 무수한 선택을 하므로 우리 삶엔 무한대의 시나리오가 존재하며, 그 모두는 우리의 가능성이고 우리의 삶인 것이다.

사람들은 간혹 어떠한 일은 그 일에 선행한 사건, 자신의 특정 행동에 기인한다고 단순하게 결론짓고는, 그 인과관계를 맹목적으로 맹신한다. 또 그리하기에 간혹 선택에 과도한 책임성을 부여하고는 그 무게감에 짓눌리거나, 행동에 따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 과거의 선택에 후회하며 시간을 보낸다. 영화의 서두에서 보여주듯이 그것은 "비둘기 미신"과 같이 그릇된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사람들은 이를 망각하고, 아니면 알지 못하여 그들 자신의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고 또 현재를 만끽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우리에게 영화는 실존주의적 주제의식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수한 기회와 선택지 속에서 우리 각자가 선택한 것들의 결과인 지금, 여기, 현재는 어찌 되었건 아름다운 기적이라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 현재 내가 가고 있는 길보다 "진짜로" 더 나았다고 한들 뭐 어떤가? 그렇다고 겁먹어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의 생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우리는 아무 것(Mr. Nobody)도 아니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보니 나의 그 모든 가능성들은 내가 가진 총체적 자원이며, 내가 겪고 있는 현재가 최상은 아니었어도 최선이었을 것이라 믿고 싶어졌다. 이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하다. 허나 나는 "불친절하지만 긍정적인"이라 표현하고 싶지 않다. 스토리 전개 방식의 불친절함은 철저히 주제의식에 따른 것이며, 게다가 그 주제는 긍정성을 내포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전개 방식과 주제가 상통하는, 즉 영화의 구조와 내용이 조합하여 가져다주는 감동이 새롭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친절하고 긍정적인"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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