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방금까지 꾸었던 꿈은 시간을 쪼개어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내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들이 꿈에서도 나타났나 보다.
그 꿈의 여운도 잠시,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떠 부랴부랴 출근 준비에 집중을 하고 회사에 출근을 하였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오로지 일만 하며 회사에서의 시간이 모두 흘러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빨리 저녁밥을 먹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지..
이런 생각에 급히 밥을 먹었는데 밥을 다 먹고 나니 그런 생각들은 사라지고 포만감에 소파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한 채널에서 정겨운 시골 풍경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아흔일곱의 할머니가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이 보는 호랑이가 나오는 동화책을 읽으며 환히 웃는 장면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할머니는 점심 먹고 배부르면 잠이 와서 낮잠을 자는데 책을 읽으면 잠을 안 자게 돼서 책을 자주 읽는다고 하셨다. 책을 읽고 나서는 또박또박 띄어쓰기도 없이 일기장에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일기를 쓴 지 30년이나 되었는데,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외로운 마음에 시간을 보내려고 일기를 쓰게 되었는데 그게 30년이 되었나보다.
그 할머니 옆에 50이 넘은 외손자는 할머니의 일기를 좋아해서 얼마 전엔 그동안 써온 할머니의 일기를 책으로 내주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책을 만지작 거리며 "꿈만 같다"라고 했다.
그 할머니의 말과 미소에 내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던 것 같다.
난 언제부터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나?
어렸을 적 나는 글을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잠깐이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함께 그때 유행했던 커플 일기라며 한 권으로 친구들끼리 돌아가며 일기를 써서 공유를 했었는데, 커플 일기를 쓰는 친구들이 많아서 하루에 3권 이상을 썼었다. 점심시간에 쓰는 시간으로는 부족해서 선생님 몰래 수업시간에도 쓰고, 야간 자율학습시간에도 틈틈이 일기를 쓰며 공부할 시간에 글을, 아니 일기를 많이 썼었다. 그땐 참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었고, TV에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여 죽은 사람들은 생을 마감할 시간도 없이 남겨진 그들의 일기며 사진이며 추억들을 정리 못한 채 남겨져 있는 장면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혹시나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는 내 일기들을 부모님이나 가까운 누군가가 보면 어떤 느낌일까?
너무 창피할 것 같았다. 별 내용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 후에는 내가 나오는 사진이나 동영상이나 글들을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도 남기기 싫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싸이월드에서만은 나도 어쩔수없이 도토리써가며 방꾸미고 사진도 열심히 올렸지만..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내가 떠난 후에 주인 없이 그것들만 덩그러니 남겨지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은 지금 TV에 나오는 할머니의 일기장을 본 순간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할머니의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관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그 마음들이 적힌 일기장을 보니,
일면식도 없는 그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꾸준히 30년 동안 써온 존경심과 왠지 모를 푸근한 마음까지 3단 콤보로 전해져 왔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다 들키면 창피할 거라는 생각이 했었는데,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겠구나... 란 생각으로 바뀌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단 거창한 생각은 아니고
솔직하게 나와의 대화를 글로 풀어나간다면 나에게 영감을 줄 수 있겠구나.
누군가에게 들키기 싫어서 나와의 대화까지 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어리 석인 일인가?
오늘부터,
다시 일기를 써 보아야겠다.
나에게 쓰는 일기를.
그리고 10년 후 내가 지금 고민하는 그것들은 과연 의미 있는 고민이었을까?
내가 꿈꾸는 것들이 10년 후엔 이루어져 있을까?
오늘 쓴 일기를 10년 후에 확인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