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싸다
크리스마스 마켓 투어를 컨셉으로 잡고, 여행 도시 리스트를 짜다가 결정해야 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근교인 하이델베르크를 먼저 갈 것이냐,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스부르크를 갈 것이냐.
고민하던 중에 프랑크푸르트-인스부르크행 기차 3만원 표를 발견했다!
진짜 거저인 가격이라 더 따질 것도 말 것도 없이 곧바로 인스부르크 먼저 가기로 결정.
다만 이 기차표의(+여행에서 끊은 모든 기차표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가격이 싼 대신 아침 일찍 출발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꼭두새벽부터 출발하는 건 아니고.. 7시에서 8시 사이?
인스부르크행 열차도 오전 7시 50분 출발에 3만원대로 끊은 것이었다.
게다가 인스부르크까지는 기차 경유를 보통 2번 이상 하는데,
드물게 1번 경유하는 열차라서 가격도 시간대도 너무 이득이었다.
이튿날에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때 방심한 게 문제였으니...!
오후에 인스부르크에 도착하면 바로 일정을 시작하려고
나 혼자 패션쇼를 하면서 옷을 고르다 보니
어느덧 기차 출발까지 40분 정도를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호텔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는 30분이 채 안 걸렸다.
좀 빠듯하게 도착하긴 하겠지만 결코 늦진 않을 것 같았다.
...내 착각이었다.
전날에 다음날 타야 하는 지하철역에서 내린 게 아니었기 때문에 완전 초행길이었는데
구글 지도만 믿고 호기롭게 가다 보니 아무리 찾아도 지하철역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DB라고 써져있는 간판이 어디에도 안 보였다!
정말 죄송한데 혹시 여기 지하철역 입구가 어딘지 아세요?
가뜩이나 아침 일찍이라 다니는 사람도 없는데... 사람이 보이면 냅다 붙잡고 물어 봤다.
무뚝뚝할 거라는 편견과 달리 독일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문제는 그 대답 대로 가도 도무지 지하철역이 안 보인다는 점!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가 중앙역으로 간다니까 버스를 권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중앙역까지 가면, 갈 수는 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 나 이러다 기차 놓치는 거 아니야?
여행지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에 순간 등골에 삐쭉 소름이 돋았다.
어찌저찌 헤매다가 결국 지하철역 발견!
하지만 지하철이라는 게 그렇게 빨리 오는 게 아니고...
여긴 기차 연착으로 유명한(지하철도 예외는 없다) 독일이고...
몇 분 동안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구글 지도로 도착 시각을 검색해 보니
아무리 계산해도 늦을 수밖에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연착이 자주 되면 탈 수 있을지도 몰라!
이런 희망(?)에 부풀긴 했지만 플랜 B는 있어야 하니까.
다급히 독일기차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만약 이 기차를 놓치면?
오 마이 갓. 3만원에 산 기차표가 10만원대로 불어나 있었다!
심지어 다음 열차는 1시간 뒤에나 있었다.
독일은 임박해서 사면 열차표가 비싸진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물론 내가 산 3만원짜리 기차표가 너무 싼 것도 맞지만...!
3만원짜리 기차표를 10만원대에 산다는 게 너무 돈이 아까웠다.
게다가 여행 일정이 1시간이나 늦어진다는 것도 용납이 안 됐다.
(그럼 더 서둘렀어야지...)
심지어 그때 기차가 2분 정도 연착됐다는 안내가 떠서
어쩌면 나도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더욱 커졌다.
아, 진짜 그때라도 샀어야 했는데.
결국 중앙역에 도착했지만 중앙역에서 기차 플랫폼까지 가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결국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고작 2분만 연착되다니... 분명 연착이 잘 된다고 했는데...
기차를 놓친 건 놓친 거고 인스부르크로 가긴 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세운 일정은 거의 매일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스부르크에서는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이동 시간을 고려해 2박을 잡긴 했지만
어쨌든 예약해둔 호텔도 있고... 여기서 계속 죽치고 있어 봐야 뭐해.
결국 인스부르크에 가야 했기 때문에 다시 기차앱을 켰다. 그런데...?
뭐야, 왜 열차표 가격이 25만원이야?
분명 10만원 초반대였던 열차표 가격이 25만원으로 올라가 있었다.
횟집 싯가야 뭐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기차표가 이런 식으로 실시간 가격이 변동이 된다고?
뭔가 오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창구 직원을 통해 직접 표를 구매하기로 했다.
근데 거기서도 똑같은 금액을 불렀다. 25만원!
직원이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사야지...
카드에서 한화 25만원이 빠져나가는 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3만원에 탈 수 있었던 기차를 25만원에 줬다는 사실에 꽤 오래 우울했다.
사실 2달이 지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아마 꽤 오래 생각날 듯...
나중에 만난 혼자여행객 분이 내 얘기를 듣더니 이렇게 얘기하셨다.
그래서 자기는 기차 출발 40분 전에는 무조건 가 있는다고...
위치도 잘 모르고 화장실도 가야 하니까. 백 번 옳으신 말씀이다.
솔직히 그때까지의 나는 다소 늑장을 부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25만원의 지출로 이후 일정에서는 거의 그런 일이 없게 됐다.
20분도 불안하고,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안심이 됐다.
트라우마가 단단히 생겨 버렸다.
그때의 경험으로 시간 엄수하는 습관을 얻었으니 25만원이면 싼 값일까?
한 가지 더. 독일 기차표는 무조건 일찍 예매하자는 교훈도 얻게 됐다.
3만원으로 탈 수 있는 기차를 8배나 더 주고 타면 너무 아까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