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A2 레벨을 합격했으니 프랑스어로 대화하는데 몇 마디 해볼 만도 한데, 여전히 Bonjour, Merci, Ça va 정도의 간단한 몇 마디 빼고는 대화가 불가능했다. 일단은 듣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순 듣기로만은 판단하기 어려운 발음에 연음이 잔뜩 들어갔으니 대체 뭔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대화가 이어질 수가 없다.
어차피 알고 있는 어휘 수준도 약하고 아직 회화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알아듣기라도 하면 몇 마디 더 하겠는데 일단 말을 시작하면 알아듣기가 어려우니 답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시험은 분명 통과했는데, 그닥 실력이 향상된 기분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시험 점수와 실제 실력 사이의 괴리감만 더 크게 느껴졌다. 종이 시험은 어떻게든 통과했지만, 실전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현실이 참 답답했다.
좀 더 듣기 및 회화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매니저가 일대일 면담을 프랑스어로 하자고 했을 때 당황하긴 했지만, 늦지 않게 회사에서의 실전 연습을 조금씩은 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잘됐다고 생각하고 연습 기회로 삼기로 했다. 2주마다 반복되는 면담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동시에 강제로라도 프랑스어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어쨌든 다음 목표는 자명했다. B2 레벨을 합격하는 것. 그래서 영주권 신청 조건을 만드는 것이었다. B2의 듣기와 말하기 수준은 정말 만만치 않을 테고,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더 귀도 트이고 말문도 터야 나중에 B2 시험에서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B2는 단순히 문법이나 어휘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유창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래도 목표는 세워야 했다.
B2 레벨 합격이 올해 최종 목표지만 당연히 A2에서 바로 갈 수 없으니 B1 레벨을 먼저 공부하기로 했다. B1은 시험을 딱히 볼 게 아니니 강의는 안 듣고 교재를 독학하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교재는 A2 대비를 위해 들었던 인강 사이트에서 진행하는 B1 교재로 하기로 했다. 책은 저번과 동일하게 부모님이 보내주신 소포로 받았다.
레벨이 올라가니 역시 또 어휘가 급격히 어려워졌다. 이제 기초 단어책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중고급 어휘책이 필요했다. 중고급으로 오니 역시나 국내에서 발간된 책은 한두 개뿐이어서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문법책도 동일하게 하나 샀다.
역시나 중급은 수준이 달랐다. 하… 드럽게 어렵네 진짜… 어휘도 문법도 그냥 좌절감 한가득이었다. A2까지는 그래도 '이 정도면 할 만하네?' 싶었는데, B1부터는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배우다가 포기하는 게 이해가 갔다. 특히 문법의 경우 접속법이니 조건법이니 하는 복잡한 시제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B1도 이렇게 어려운데 올해 안에 B2 합격을? 하하하… 목표를 너무 과하게 세운 것 같았다. B2는 생각하지 말고 일단 B1이나 잘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이었다.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포기하자니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고, 그렇다고 쉬운 길도 보이지 않았다. 실제 시험을 볼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담감은 훨씬 덜했다. 하지만 그래도 B1 수준의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고 넘어가야 B2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꼼꼼히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프랑스어를 계속 공부해 나가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