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다이어리에 쓴 문장이 있다.
'평범하게 살지 말자.'
그때는 평범하게 사는 게 당연하고 쉬운 일이라 여기며 그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장래희망은 경찰이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기는 싫어서 나름 고심하며 정한 진로였고 영화 '범죄도시'의 마석도 같은 정의를 당연히 여기며 소위 싸움도 잘하는 멋쟁이 형사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이 어찌저찌하다 무산되고 엄마의 간절했던 바람을 따라 원하지 않던 학과에 진학하면서부터 지금 내 모든 평범함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의 내가 더 이상의 특별함은 원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쐐기를 박아버렸다.
어린 시절의 꿈과는 다르게 흘러간 시간 속에서 나를 단정 짓는 많은 역할들이 이제는 명함을 내밀기는 밋밋한 이력처럼 쌓이게 되어 쉽게 놓을 수도, 피할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90년생이라 하면 어리게 바라보던 시선들이 시간을 디뎌가며 스멀스멀 지나가더니 서른 넷이라는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에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홀로 되신 어머니의 소문난 착한 딸이자,
평범하고 성실한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직 어리고 귀엽기만 한 아이의 엄마이자,
외모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서른 넷 워킹맘.
깨달은 것들도 있다.
많은 시간과 계절들을 견뎌오면서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심지어는 운까지 따라주어야 한다는 사실들.
매일 가족들과 소소한 하루를 이야기하며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아기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도
엄마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씩씩하게 지내주시는 것도
가끔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어느 것 하나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늘 그렇게 열심히, 아주 가끔은 밀려오는 행복감을 느끼며 살다가도
사실은 늘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에서 해방되고 싶다.
그래서 아주 가끔이라도 글을 쓰려 한다.
박완서 작가는 마흔이 넘은 사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달리 나이에 집착하는 나도 희망을 가져본다.
지금 당장 아이를 맡겨두고, 가족을 뒤로한 채 내가 원하는 미지의 공간으로 날아갈 수는 없으니
지금은 혼자만의 생각을 기록하고 펼쳐나갈 수 있는 이 하얀 화면 위로 가서 해방되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