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때론 힘이 된다
위안이 되는 그 묘한 아이러니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나 보다.
저 사람은 도대체 뭐가 힘들까 하는 사람도 깊이 들여다보면 하염없는 나름의 고민과 걱정들을 끌어안고 사는 것만 같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세상에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모든 이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특유의 분위기가 예뻐서 길에서 모르는 남자가 번호도 물어볼 정도이고, 나와 달리 부모님도 두 분 다 여태 건강하시고, 남편도 애처가인 데다가, 어쩌다 보니 집 값도 두 배 이상 뛰었고,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해외여행도 나보다 두 배는 더 많이 가본 친구가 어느 날엔가 힘든 일을 하기 싫다는 나의 투정을 듣고서 '세상에 안 힘든 게 어딨니?' 한 적이 있다. 그 애마저도 그렇게 생각하다니, 조금 충격이었다. 주어지는 삶의 무게는 다를지 모르지만,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각개전투 하고 있단 사실을 어릴 때는 미처 몰랐다.
세상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유명인들도 우울증을 호소하며 힘들어하는 걸 보며 돈이나 명예 같은 것들이 꼭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당장 몸무게 몇 킬로만 빠지고 비상금 몇 백만 원만 있어도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닌 걸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대체 행복은 무엇이고 그 조건은 무엇이란 말인가.
뭔가 너무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은 언제였던가를 생각해 본다.
대학 시절 2년 반 정도 자취했을 때를 제외하면 혼자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내가 모처럼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게 될 때면 퇴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닭다리 치킨 두 개를 사 와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었을 때.
육아를 하면서 오늘 하루도 큰 의미 없이 흘러가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별 기대 없이 무기력했던 날에 가족들과 교외의 수제비 맛집에 가서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오면서 눈앞의 푸르른 풍경을 바라보았을 때.
출산을 한 주 앞두고 겨우 출산휴가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남편이 출근한 새벽에 혼자 잠이 오지 않아 동이 터오는 창 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을 때.
몇 년 전 갔던 시드니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난 후 갑작스레 터진 불꽃놀이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눈물을 흘렸을 때도 행복했다.
하지만 진정 행복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이렇게 드문드문 기억에 남는 정도라면, 반면에 매일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다가오는 고됨과 스트레스는 일상의 연속이고 어떤 날에는 자는 시간조차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그것이 꿈으로 나타나면 깨어나고 싶은 악몽이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홍진경 님에게 누군가 '행복이 무엇인 것 같냐'라고 물었더니, 그분은 '자기 전에 걱정 없이 자면 그게 행복이다.'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능동적인 행복을 찾아갈 기회와 여유가 많이 없기에 너무나 맞는 말로 느껴진다. 이 세상에 매일 자기 전에 아무 걱정 없이 자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당장 내일의 생계가 걱정일 것이고, 누군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행복했던 기억을 말하라고 하면 손에 꼽힐 정도이고, 이게 맞나 망설여지는데 힘들거나 불행했던 기억을 말하라고 하면 애써 막아놓았던 댐을 방류하듯 흘러넘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는 당장 내일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도 있었다.
그럴 때 내게 위로가 되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내게 남은 날들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세상 모든 것이 가벼워진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 드라마로 여겨지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선균 분)은 삶을 버티기 힘든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하면 작은 불행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마법 같은 순간이 생긴다.
또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 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죽음으로 가는 길을 점점 더 짧아져 오니 지금 이 시간을 더 행복하게 살아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행복하기가 쉽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오늘 밤도 걱정만은 하지 않고 잠들 수 있다면 좋겠다. 혹자의 말처럼 그게 바로 행복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