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열심히 일하는 것뿐일지 모르지만

부디 오래도록 멋져 주기를!

by 불주먹

하루 한 번 마트를 안 가면 숙제를 안 한 듯 어색해하시는 모친 덕분에

이제는 동네 근처 큰 마트에서 일하시는 얼굴만 익은 이름 모를 이모님들이 아기가 많이 컸다며 말을 걸어주신다. 내가 좋아하는 꽃무늬 패턴을 즐겨 입힌 아이에게 '꽃무늬 왔다!'라고 부르시는 분도 계시는데 왠지 모르게 쑥스럽다.(요즘 같이 모던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시대에 꽃무늬를 즐겨 입히는 나 자신, 바로 패션테러리스트.)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마트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모님들을 볼 때면 왠지 멋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예외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결혼하고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하는 전업주부였다가 아이들이 조금 큰 후 취업전선으로 나오신 분들일 것이다. 그분들의 제스처와 몸짓은 아주 프로페셔널하고 열정적이다.


일단 내가 본 대다수의 그들은 자신의 직장에서 소극적으로 업무에 임하거나 심리적으로 업무에 몰입하지 않으며 주어진 급여를 받아가는 것에 중점을 두는 일명 '조용한 사직'의 노동 방식을 보이지 않는다. 고객들이 질문을 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진심으로 해결책을 찾아주고자 노력한다. 물건의 위치를 물어보면 옆자리 '언니'에게까지 협조를 구해가며 적극적으로 알려주시거나, 혹은 본인이 상관없는 품목임에도 그것이 있는 곳까지 직접 안내를 해주시기도 한다. 내가 자주 가는 마트의 유제품 코너에 계신 직원분은 제품 하나라도 더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 각을 맞춰 진열에 힘쓰시며, 1+1 행사를 안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어필하신다. 내 생각에 최상의 엘리트 요원들은 서비스 안내 데스크 쪽에 포진되어 있는 듯한데, 그들은 마트 내에서 일어나는 온갖 민원을 노련히 응대하거나, 은행원 못지않은 손가락 타자 실력을 뽐내면서 고객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게 해 준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왠지 모를 우울감에 시달렸었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 일상 속에서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지곤 했는데, 그날에는 희한하게도 이 세상은 과연 (나 없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분유를 타고 젖병을 씻으며 한참 생각했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딱 만 10년이 채워진 직장 생활동안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평일 한낮이면 정신없는 일들이 반복되는 일터가 아닌 바깥세상에서 지내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외출이 어렵지 않게 되면서 매일 남편이 출근한 낮에 바깥세상에 나가보며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나와는 다른 일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1500원짜리 대용량 저렴이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하러 들른 카페에서는 항상 친절하게 손님들을 응대하시는 젊은 여사장님을 만난다. 그다음에는 그 동네 초등학생들이 컵떡볶이와 쫀드기를 즐겨 사 먹는 분식집에 가서 당근이 많이 든 엄마가 요즘 좋아하는 김밥을 두 줄 포장하는데, 그곳에는 70대는 족히 되어 보이시는 노부부가 오랜 팀워크를 뽐내며 직접 음식을 하고 계신다. 그중 여사장님께서는 김밥을 한 줄만 살 때는 검정봉지를 사양하는 나를 기억하시며 웃음을 지어 주신다. 그렇게 커피와 김밥을 먹어가며 운전을 하다가 창문 너머에서 어느새 어깨 위로 뜨겁게 내려앉는 햇빛의 열기를 꾸역꾸역 참아가며 일하는 공사장의 근로자들을 본다. 그 언젠가 출근하기 힘들어도 억지로 참아가며 대문을 나서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내가 매일 만나는 세상은 이렇게 한정적이고 좁지만 이 세상 곳곳에서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기까지 자신의 의지로 열심히 하루를 달리는 그들이 모두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육아를 하며 지내다 보면 마치 이 세상이 나란 존재가 필요 없이 잘만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에 대해 무의미하게 느끼는 순간 우울감이 찾아온다.

지금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거치셨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된다.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울 것인가 싶다. 그 누군가와도 어떤 기준을 재어가며 비교하고 싶진 않다. 그저 그들의 성실함과 자신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가 멋지다.

오늘 만난 마트 이모님도, 카페 사장님도, 식당 사장님도, 뜨거운 햇살을 버텨내는 누군가의 아버지들도 모두모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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