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의 어린 딸에게

by 불주먹

연아, 네가 태어난 지 벌써 259일이 되었구나.

엄마는 실은 아직도 엄마라고 불리는 호칭이 좀 낯설고 어색해.

마치 다른 사람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조금은 민망하고 쑥스럽단다.

그럼에도 네가 그 언젠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으로 말한 단어가 '엄마'인 것을 바라보며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어.


사실 엄마는 너를 뱃속에 가지고서 듣는 주변 사람들의 말들이 조금 공감이 되지 않기도 했어.

아이를 낳으면 그 전후의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인다든지 하는 말들 말이야.

그래서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괜히 겸연쩍게 웃어버리곤 했단다.

나에게 그저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일뿐이었거든.

유도분만에 실패하는 바람에 응급 제왕절개 수술로 전신 마취에 있던 때에 태어난 너를 신생아실 유리 너머로 처음 바라보았을 때도 네가 너무 사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치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었지.






엄마에게는 단 하나의 형제인 오빠, 즉 너에게는 외삼촌이 하나 있잖아. 요즘은 엄마의 친척에게 '바깥 외'자를 쓰지 않는 것이 추세라 하니 지금부터는 그냥 삼촌이라고 할게.


아무튼 삼촌은 엄마의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아주 귀한 존재였어. 아들이 귀한 대에 홀로 아들로 태어나기도 했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오동통한 외모에 방글방글 웃는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고 하더라. 엄마는 그런 삼촌과 세 살 차이로 태어났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친척들에게 인기 많은 오빠의 등 뒤에 가려져 있곤 했단다. 심지어 너의 할머니도 그놈의 첫 정은 무시할 수 없다며 대놓고 삼촌을 더 좋아하는 티를 내기도 했어.


엄마는 언제부턴가 가끔 친척들이 엄마의 이름을 헷갈려하며 잘못 불러도 기분 나빠하거나 다시 알려주기보다는, 그냥 웃으면서 대답을 해버렸어. 그냥 나 역시 친척분들에게 그렇게 관심도 없었고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분들에게 내 이름을 똑바로 외워달라고 사정하고 싶지도 않았거든. 물론 엄마를 잘 기억하고 챙겨주시는 엄마의 할머니 같으신 분들도 계셨지만 삼촌이 언제나 모두에게 우선순위인 건 어쩔 수가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단다.






엄마가 임신 막달이 되기까지 너의 할머니는 한 번도 네 태명을 직접 부르지 않으셨단다. 왠지 그런 것들이 쑥스럽다고 생각되는 눈치였어. 엄마도 굳이 그래주길 바라지 않았고. 아니 실은 아예 바라지 않은 건 아닌데 그냥 강요하고 싶지 않았어. 더군다나 너의 삼촌이 결혼한 지 5년이 다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던 상황이라 대놓고 축하해 주거나 임신한 엄마를 드러나게 챙겨주는 분위기가 아니었어.


그런데 그러던 너의 할머니가 네가 태어나고 나서 병원에 있던 일주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널 볼 수 있는 짧다면 짧은 면회 시간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버스를 타고 내리며 달려오셨단다. 엄마는 처음에 의아했었어.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널 봐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할머니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널 보고 싶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하셨단다.






그렇게 태어난 너는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로 자라고 있구나.

엄마도 점점 엄마가 된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어.

엄마는 사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남들은 신혼을 더 즐기라 하는 와중에도 너를 석 달만에 가지게 되었던 이유가 있었어.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서운하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엄마의 어린 시절 친척집에서의 기억들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


엄마는 네가 엄마의 집안이든 아빠의 집안이든 그 어디에서나 가장 사랑받는 아이가 되기를, 네가 생기기 전부터 바라왔던 것 같아. 엄마가 무심히 참아내야 했던 일들을 네가 겪게 하고 싶지 않았어. 너는 누구와 비교될 것 없이 사랑받는 아이가 되기를 바랐고, 지금 그 소망이 조금은 이뤄진 것 같아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조금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어.






그냥 너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란다. 네가 어느 틈바구니 속에 있든, 언제 어떻게 존재하든 엄마는 앞으로 너를 가장 사랑하게 될 것만 같아. 앞으로 네가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너의 삶을 만들어갈지 엄마는 아직 알 수가 없지만, 언제나 너를 응원하려고 해. 혹시라도 네가 타고난 어떤 변할 수 없는 조건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엄마가 늘 버티고 있을 거란 걸 잊지 않고 살아가길 바랄게.


누군가는 바보 같은 짓이라 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나보다 네가 더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어.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엄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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