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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간 석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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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굽기 Feb 22. 2019

좀 모자라게 좋아합니다

매거진 홀릭이라기엔 좀 모자란 잡지 이야기

잡지를 좋아한다고 말이야 했다마는, 사실 그렇게 ‘매거진 홀릭’은 아니다. 유명하거나 덜 유명하거나 한 잡지 에디터들의 인터뷰 같은 걸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디 가서 잡지의 ㅈ도 꺼내면 안 될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보그 같은 걸 보고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자라면서 코스모폴리탄을 보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쩌고저쩌고 하던데. 난 성장기의 잡지라고는 어렸을 때 어린이 독서평설을 몇 달 읽은 게 전부다. 아, 엄마가 사줘서 과학쟁이랑 생각쟁이도 몇 달 읽었지 참. 엄마한테 엽서 보내는 것 응모해달라고 떼를 쓴 기억이 있다. 아마 안 보내줬겠지만.


저렇게 말하니 투표할 나이가 되어서부턴 닥치는 대로 잡지를 탐독했을 것 같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잡지 어쩌고 이야기하는 주제에 이런 말 하기는 부끄럽지만, 내가 처음으로 정기적으로 잡지를 사본 건 군대에서였다. 물론 입대 전에도 힐끔힐끔 그쪽의 세계를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잡지는 정기구독을 해야 좀 본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잘은 모르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아무튼(내가 정말 많이 쓰는 말인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잡지 이름이다) 군대에서는 어라운드라는 잡지를 사 읽었다. 맥심이니 아레나니 하는 것들은 사실 내 정서에 별로 안 맞았고. 어라운드의 그 느낌이 좋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 주위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흐릅니다. 카피를 보는 순간 저건 내 책이다 싶었다. 정말로 내 책이었다.


그 뒤로 쥐꼬리만 한 군대 월급 중에서 만 오천 원은 매달 어라운드 편집부를 향해 납부되었다. 한 번에 십만 얼마를 낼 깜냥이 없어 매달 교보문고로 쫄래쫄래 가서 그 달의 어라운드를 사왔다. 나중에 대전에 돌아와 대전 교보문고를 가보니 거기엔 마땅한 잡지 코너가 없던데(잡지코너는 있었지만 어라운드는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군대에서 보기 시작한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 군생활을 앞으로 어라운드 몇 호 이런 느낌으로 버텼다. 다른 사람들이 뮤직뱅크로 디 데이를 카운트 하는 것이랑 비슷한 셈이다. 다만 좀 더 감성 넘치고 성긴 버전. 

약간 감성을 월세로 납부하는 느낌 같기도 하고.

매달 나오는 읽을거리들을 기대하며 일상을 살았다. 어라운드는 (내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에세이 잡지이다. 그 호수마다의 주제가 있고 필진들은 그 주제를 본인의 색깔대로 해석해 본인의 색깔에 맞는 에세이들을 써낸다. 물론 에세이만 담긴 건 아니고, 인디 아티스트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기기도 하고. 아무튼 기피하던 장르인 에세이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어라운드를 읽게 된 그 즈음인 듯하다. 에세이 비스무리한 걸 쓰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였고. 전역 후에도 똑같다. 지금 역시 가장 많이 읽고 쓰는 장르는 에세이다.


다시, 나는 여전히 매거진 홀릭은 아니다. 물론 (내 기준에서) 잘 빠진 모양새의 잡지를 보면 하나 사 들고 갈까 혹하긴 하지만, 그리고 잡지 만드는 데 끼어 보고 싶다거나 글 한 편 싣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뭐 나는 언제나 예쁜 책을 보면 눈이 뒤집히는 사람이었고, 남들 눈 뒤집을 만큼 예쁜 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다른 책들만큼이나 많이 좋아한다는 거다. 어쩌면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고.


말은 이렇게 해도 꾸준히 읽는 잡지는 여전히 어라운드 한 권이 전부다. 매거진 B를 꾸준히 들춰 보기는 하지만, 이건 정기구독은 아니니까. 컨셉진을 보고서 헉 이거 사고 싶다 늘 생각은 하지만, 아무튼 정기구독은 아니니까. 글을 쓰다가 어라운드의 인스타그램을 봤는데 창간 8주년 기념으로 뭔가 대차게 바뀐다고 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니 알아서 잘 하겠지 싶다. 저 사람들도 바뀌는데 나도 다른 잡지를 하나 더 구독해 볼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확실한 건, 나중에 잡지에 글 한 편 실어 보고 싶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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