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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굽기 Aug 27. 2019

똑바로 걷는 걸 까먹었는데 어쩌죠

필요 없는 문장 빼는 게 너무 어려운 이야기

중학생들을 상대로 국어 수업을 하다 보면, 학년을 불문하고 ‘글 쓰는 법’에 대한 과정을 한 번씩은 가르치게 된다. 학생들 앞에서 그 바이블 비슷한 뭔가를 읊고 있으면 가슴속에 뭔가 켕기는 게 올라오는데, 국어를 가르친답시고, 평소에 글을 쓴답시고 그렇게 주절거리는 나도 지키고 있지 못한 사항들이 목록에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글 고쳐쓰는 법’ 항목에서 양심의 가책이 극에 다다르는데, 이는 내가 글을 고쳐 쓰지 않아서가 아니라(물론 고쳐쓰기를 섬세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항목들 한가운데에 꼭 ‘필요 없는 문장 빼기’가 있어서다.


쓸데없는 문장 쳐내기는 늘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 영어를 못하는 편은 아니라고 자부하는데, 그럼에도 학창시절 영어 모의고사에서 가끔씩 2점짜리 한두 문제를 틀려온 것은, 내가 영어를 못 읽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흐름과 맞지 않는 문장 찾기’ 문제에서 자주 난관에 봉착하곤 했다. 밑줄 친 문장 중 맥락상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을 고르시오. 그 지시문을 보고 나는 늘 한참 고민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다 알겠는데, 필요 없어 보이는 문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답을 고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머릿속 뒤편에다가는 이런 생각을 남겨 두고 있었다. 아 이거 꽤 매력적인 샛길 같은데. 막말로, 사람이 어떻게 항상 맥락에 백 퍼센트 맞는 말만 하냐는 말이야.


나는 정갈한 글을 쓰지 못한다. 애초에 글감을 찾아내는 방식에서부터 정갈함과는 거리가 멀다. 뭔가 생각나면 거기서 삐뚤빼뚤한 연장선을 그어 어디까지 닿나 주절거리는 방식으로 소재를 착안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내 글은 근본적으로 주절거림과 맞닿아 있다.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좋아해 주어 다행이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부담스러워한다. 아마 끝도 없이 자기 이야기를 떠벌거리는 누군가를 코앞에 두고 있는 느낌일 테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바꾸려고 한다고 바꿀 수는 없다. 조용조용한 글을 써보고 싶어 몇 개월간 노력해 봤지만 손은 다시 이런 방향으로 되돌아왔다.


이런 말 하는 거 되게 우습긴 한데 사진 찍을 때는 또 직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건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이었다. 쓸 데 없는 문장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초등학생의 글이란, 원고지 세 장 분량도 채우기 어려워 비비 꼬다가 이도 저도 아닌 동심 덩어리를 빈약하게 내놓는 것이라고 머릿속에서 나름대로 정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때부터, 쳐내기를 연습해야 했다. 나는 말 많은 어린이는 아니었지만 한 번 시작하면 끝도 없이 주절거리는 어린이였다. 입을 열 용기는 없었고 주로 텍스트상에서 그랬다. 사족이 사족을 달고 그걸로는 모자라 추신까지 덧붙였다. 너 뭐하는 새끼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렇게나 할 말이 많았더랬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그래서 결국 대체 왜 그러냐, 이것도 재미있어 보이고 저것도 재미있어 보여서 그렇다. 딴 길로 새는 것만큼 즐거운 게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삼천포로 빠지면서 시작되는 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샛길들을 차마 쳐낼 수가 없다. 저기서 무슨 재밌는 떡밥이 나올 줄 알고 글을 쳐냅니까 쳐내기를. 이 말 저 말 다 소중하게 주워 섬기다가 보니 지금 같은 스타일이 되고 말았다. 애초에 나는 걸음걸이도 똑바로 못 걷는 사람이라 매번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같이 걷던 사람을 차도로 쳐내서 욕을 먹는 판이다. 물론 초등학생 때의 글을 다시 보니 쟤는 어디 문제 있는 애 아닌가 싶을 만큼 핵심에서 벗어난 소리들을 주절거리고 있었고, 요즘은 그 정도까지 난리를 치진 않는다. 예전에는 부산에서 서울을 가려다가 대구에서 갑자기 군부대로 뛰어들어가 이 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오는 식이었다면 요즘은 대전쯤에서 칼국수를 먹고 다시 고속도로로 되돌아온다. 대전 최고의 음식은 칼국수이기 때문이다. 대전 최고의 맛집 공주칼국수.


그럼에도 나는 학생들의 시험 점수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므로 바이블과 일치하는 이야기를 양심도 없이 주워섬긴다. 글을 쓰다 보면 필요 없는 문장들이 들어가게 될 때가 있는데, 고쳐 쓰는 과정에서 이것들은 흐름에 맞는지 검토를 하신 후 빼 주시는 게 좋습니다. 대부분은 무리 없이 걷어내겠지만 가끔 공들여 쓴 문장이 흐름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좀 아깝다고 해야 할까 그럴 때가 있는데, 당장은 아깝더라도 단호하게 지워 주는 것이 좋아요. 나중에 글을 보시면 그 때 빼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비슷한 소리를 논술 첨삭해줄 때도 했던 것 같은데. 아마 글쓰기의 클래식 같은 이야기니 여기저기서 많이 써먹긴 했을 거다.


그치만 공들여 쓴 문장을 빼긴 왜 뺍니까. 빼기 아까울 만큼 공들여 쓴 문장이 있다면 차라리 글 전체를 그 문장을 위해 바꿔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작심하고 대천 해수욕장 쯤으로 간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가치 있는 여행일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대천 해수욕장을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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