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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땅 Jun 27. 2024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어느 저녁에 스친 생각을 정리하며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쏟아 붙는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우연히 눈앞에 놓인 깡통을 걷어찼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맞아 사과하는 일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귀 뀐 사람으로 오해받는 일

냉장고 안에서 조금 남은 음료를 마시고 다 먹은 사람으로 오해받는 일 등등

사소한 억울함은 에피소드가 되고 또 쉽게 잊혀 지나간다.

하지만 억울함에 미쳐 잠조차 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간만에 친구들과의 모임을 토요일 저녁 시간에 잠실에서 가졌다.

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 만나는 친구도 나왔고,

지난주에도 만나 수다 떨던 그놈도 아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변한 것이라고는 수다가 늘었다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 역시 때 묻고 흔해 빠진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내일 아침이 오면 다 까먹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대화가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우리 밖에 없던 선술집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떠들썩했다.

가끔씩 무슨 음악인지도 모를 노래와 리듬이 이 공간의 빈 곳이란 빈 곳을 모두 채우고 있었다.


" 씨발, 그게 말이 되냐? "

" 참, 말도 안 나온다. 아후.. 열받아. "


우리 옆의 테이블엔 욕과 한숨 소리, 술잔을 세게 내려치는 소리로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 아니.. 그게 아니잖아. 그거 세이프였다고. 너도 봤잖아? "

" 그 심판새끼는 일부러 그런 거야? 아니면 눈이 삔 거야? "

" 그래, 나도 다 이해는 간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실수도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실수가 오늘 경기 결과를 바꾼 거잖아. 미치겠다. 정말.."


아마도 이들은 오늘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온 듯했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어떤 석연치 않은 오심으로 인하여

경기가 지게 된 것이다.

나도 야구를 좋아하고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해 보았기에 이들의 대화가

내 친구들의 이야기 보다 더 흥미로웠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정리해 보면 스토리는 이렇다.

9회 말 투아웃에 홈팀이 득점을 하게 되면 경기는 끝나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는 타이밍이었다.

타자가 안타를 치고 2루에 있던 주자가 홈으로 달려드는 순간,

외야에 떨어진 공도 홈으로 송구가 되었다.


공과 선수 중에 먼저 들어오는 팀이 유리해지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먼저 들어오게 된다면 경기는 홈팀이 승리하는 것이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접전이 벌어졌고, 거의 동시에 공격 팀의 선수와 수비팀의 선수의 손이

홈에서 만났다. 경기장은 일순간에 조용해졌고, 선수들과 관중은 주심의 판정만을 기다렸다.


" 아~우~웃!!! "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주심의 판정에 따라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중계 화면과 녹화된 영상이 천천히 나오면서 사람들의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공격팀 선수의 손이 수비수의 터치보다 한 팀포 빠르게 홈을 찍은 것이다.

명백한 오심이었다.

하지만 한번 내려진 판정은 뒤집어지지 않았고,

결국 그날의 경기는 원정팀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게 된 것이다.


'오심'

누군가는 말한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그리 난리 치나? "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참이나 '오심'이란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 그래 그렇다고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오심이었어.'

' 오심을 한 주심은 징계를 받겠지만, 아니 슬로 모션으로 해야 보이는 것을 '


올해부터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스트라이크와 볼의 판정을 사람이 하지 않는다.

정해진 존을 지난 공의 궤적을 추적하여 판정이 내려지는 것이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하니까 공정하다고 한다.

기계는 감정이 없으니 이편저편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사람보다 기계나 AI가 하는 게 좋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 세상은 오심을 돈으로도 살 수 있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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