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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 추억

2025년 봄을 기다리며

by 맨땅

한참이나 오래전 젊은 시절엔 조금 대화를 즐겼었다.

특히나 학교 앞 후미진 골목 안 주점에서 펼쳐지는 침 튀기는 논쟁들은 밤새 이어져 갔다.

학문과 문화, 정치, 경제, 사회 속의 모든 것이 주제가 되었다.

이야기의 정당성과 근거를 위해서는 어느 유명한 과학자나 학술가, 혹은 철학자의 말과 글을 빌려

이야기를 펼친다면 훨씬 설득력이 높아졌다.

"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어.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우리가 지금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말이야..... "

나의 열띤 주장에 관하여 누군가는 이렇게 받아쳤다.

" 하지만 까뮈의 침묵하지 않는 삶이란 책을 보면....."


내 생각과 다른 누군가의 생각,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들은 술자리에서도 가슴 깊이 박혀서

다음 날이면 도서관을 찾아 혼자만의 복기를 하곤 하였다.

내 생각의 오만은 없었는지 또는 오역과 억지는 무엇이었는지...


그러다가 우리는 스스로 경계하는 것이 생겼다.

'궤변 : (명사) 상대편을 이론으로 이기기 위하여 상대편의 사고(思考)를 혼란시키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며 대는 논법


궤변은 놀음판에서 타짜들의 손기술처럼 여겨졌고,

저속한 논리의 짜맞춤으로 우리들의 대화 중에 가장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의지와는 달리 술과 시간이 짙어짐에 따라

툭하고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 그건 내가 전공이기 때문에 더 잘아."

" 이걸 반대하는 놈들은 전부 빨갱이들이지. "

" 넌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옷은 왜 입고 다니냐? "

" 걔들 고향이 전라도지? "




이런 식의 이야기가 나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리저리 서로의 주장은 시궁창이 되어가고 나의 빈자리마저도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왜 이리 찝찝하고 속이 답답한지 모르겠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고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다.


' 정말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닐까?'


오늘의 날들은 그날 밤과 무척이나 많이 닮아 있다.


* 글 속의 이미지는 저작권법을 존중하기 위하여 사용이 허락된 무료이미지를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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