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종이 위에 눌러쓰듯이 한두 글자 써 놓고 보면
쓰인 글자가 맘에 들지 않는다.
ㅎ 은 점을 찍듯이 위가 올라가 있고
ㅁ 은 동그라미인지 네모인지 모를 만큼 튄다.
꾹 참고 다시 써 내려가다 보면 정말 오른쪽으로 휘어져 간다.
줄을 바꿔 어느 정도 맞춰보려 하다 보면 다 망한다.
'나 아직 괜찮은 거지? 이렇게 사춘기 소년처럼 살아도 되는 거지?
제목도 정하지 못하고 생각나는 그대로 따로따로 놀고 있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고 이러다가 끝도 내지 못하고
중간중간 낙서도 하게 된다.
생뚱맞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 짜장면 '
' 소크라테스 '
' 제주, 비행기 '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를 받아 통화도 하고
물도 한 컵 마시다가 스마트폰 화면을 열고 뉴스도 읽는다.
그 사이사이에 내 글자들은 그 종이 안에서 나를 부른다.
" 저기요. 우리 아직 여기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