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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땅 Nov 10. 2023

열두 달, 흙을 먹다

살며 먹고 죽음에 관한 평범함

어려서 먹는 입을 줄이고자 부모로부터 교토의 사찰로 보내진 아이가

동자승의 과정을 거쳐 작가가 되어 시골에 홀로 살고 있다.

스승인 주지 스님에게 사찰 음식과 자연이 주는 이야기를 배운 그에게 자연은

일 년 내내 스승이고 창고이고 사는 이유와 같다.


난 일본 영화나 말투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겐 낯설고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고나 할까나?'

( 이런 표현이 무척이나 싫었다. 마치 혼잣말 하듯이 빠져나갈 여지를 남겨둔 말투가 싫었다.)

영화는 물에 적신 듯이 축축하거나 습했다.  뭔가를 잔뜩 숨기고 등 뒤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 영화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화려하거나 큰 메시지를 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장면 하나하나에 그냥 보고 느끼고 눈에서 코에서 그리고 머리와 가슴에 다가온 것이다.

물론 이런 느낌은 절대적으로 개인적이고  순간적인 타이밍이 맞아서 그럴 수도 있다.


입춘과 경칩... 하지와 상강, 동지

동양의 24 절기는 영화에도 그대로 표현되었다.

다시 영화 속에 주인공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평범한 듯 일상 속에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그대로 녹아 있다. 주변에서 주는 자연의 선물을 순서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조리하고

맛있게 먹으면 되는 일상이 전부다.

가끔은 원고를 핑계로 다가오는 출판사 직원과 함께 하며, 자기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받으며 만족하는 모습은 흡사 나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휴일 아침, 이것저것 준비한 메뉴로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 좋아지던 그 느낌을 내가 아니까.


장모님의 죽음과 그 장례를 준비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과정은 '내가 일본 영화를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색다른 모습이었다. 주검을 대하고 모여 고인을 추모하는 모습은 낯설게 다가왔다.


이후 그에게도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는 일이 생기고, 그 위기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언젠가 그에게 닥칠 죽음에 대한 준비를 시작한다. 아니 매일매일 자면서 하루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또다시 아침이면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깨달으면 감사하고 자연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보인다.


산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

죽음과 죽어간다는 것

모든 시작과 끝은 결국 연결되어 있고 하나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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