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송년회

6. 시인의 하루

by 맨땅

따스한 실내공기가 우리들 사이에 가득 차 있다.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내 코와 입을 거쳐 위와 폐를 채웠다.

소박한 듯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들은

그 위치와 색이 더 진하고 제 위치에서 뽐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은 말들이

내 귀에 다가와 말한다.

' 우리 꽤나 잘 살았다고. '


딱히 정해진 순서 없이 몇 사람의 한해 소감이 이어지고

음식들이 테이블을 채웠다가 비워지기를 수 차례 하는 동안

한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그가 살며시 일어났다.


" 저는 올해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에 복귀하였습니다. "

20대 후반의 청년은 얼굴을 가리는 긴 머리를 하고 있어 그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180 정도는 되어 보이는 키에 마른 몸의 청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 제가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 을 몰라서요. 사실.. 이곳에 나오게... 된 것만으로도.."

말끝을 흐리는 중에도 살며시 떨리는 호흡이 느껴졌다.


" 군대도 공익요원을 다녔습니다. 동사.. 무소에.. 서요. "

" 거.. 기서도 많이 힘들었.. 거든요.."


그는 공익으로 마치고 집에 틀어박혀 살고 있었다고 한다.

며칠이건 집 밖을 나오지도 않고,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던 중에 동사무소에서 만난 우리의 센터장님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동사무소 근무 중에 떠밀리듯 나간 몇몇의 봉사활동과 동네 정화 활동 중에 센터장님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조금 편하게 이야기할 유일한 상대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방에서 한 걸음씩 나오게 된 것이다.


" 전.. 세상에.. 별..로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

" 그런데.. 우연하.. 게 제가 쓴.. 글을.. 센터장님이 보시고.. 너무 좋다고 하셨.. 어요."

고개를 들어 우리의 반응을 살피는 그의 표정에 웃음이 있었다.


" 시.. 시라고 하는데요. 오늘은 제 '시' 하나를 읽어 드리려 합니다. 부끄.. 럽고 별거 없.. 지만.."

" 제목은 ' 어느 하루 '입니다...아주 오래전에 쓴 건데요. 제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어요. 지금은 ...이제 내년엔 바꿔보려 해요. 지켜봐..주세요. "



내 우주는 너의 우주가 아닌다.

너의 우주는 내 우주가 아니다.

내가 사는 이곳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사는 이곳은 너의 것이 아니다.

나는 나에게 불친절하다.

너는 나에게 불친전하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또 이어진 새벽까지 안에서 쿵쾅 카레는 진동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1초를 열개로 나누고 다시 또 열개로 나눈 것처럼

길고 긴 새벽에 깨어있다.

그나마 이 새벽이 좋다.

아닌 걸 알지만 나만 있는 것 같으니.


일어선다.

걷는다.

사람들과 마주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다 보면 난 다시 내 방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기다린다.


나의 새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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