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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송년회

5.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by 맨땅

이른 새벽, 좁은 창문으로 푸르스름한 여명이 반사되고 있었다.

정해진 업무 시간까지는 아직도 1시간 이상 남았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늘 반복되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건물 사이사이로 군데군데 떨어진 개똥을 치워야 한다.

늘 비슷한 경로와 크기로 보아 상습견이다.

상습견의 주인 역시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늦은 저녁에서 밤 사이에 산책을 한다며 개를 끌고 돌아다니는 '개'의 주인은 '그'다.

'개'와 '그'가 남긴 흔적들을 이른 새벽에 지우지 않으면 온갖 민원이 쏟아진다.


" 도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 "

"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청소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 우리 아이가요, 개똥을 밟았어요. 어휴..., 이걸 보세요. "


그리고는 그 신발을 내 앞에 툭 던져 놓는다.

아이의 엄마와 신발을 번갈아 쳐다보던 나에게 아이의 엄마는

" 버리든지 해야 하니, 치워주세요. "

그날 아침은 밥도 먹지 못했다.


나와 맞교대를 하는 정 씨가 좁은 경비실로 들어오며 씩씩 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주름진 얼굴 탓에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 들어 보인 정 씨지만 실은 다섯 살이나 내 아래였다.


" 반장님, 매번 우리한테만 이러는 거 참아야 하나요? "

정 씨는 나를 '반장'이라 불렀다.

" 개똥 치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아니 매일 이렇게 어찌 사나요?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정 씨가 때려치운다고 말한 지 정확하게 3년이 흘렀지만 '개똥'은 여전했다.


난 평상시 옷으로 갈아입고 경비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걸어서 이십 여분을 걸어 집 안으로 들어가 양치질과 세수를 했다.

갑자기 답답한 기분이 들어 옷을 모두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샤워기 밑에서 그 물을 다 받아 적셨다.

온몸에 남아 있던 '개똥'의 흔적과 냄새가 사라진 듯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저녁을 간단하게 먹은 후 큰 결심을 한 나는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집을 나셨다.

입에는 마스크와 모자까지 눌러쓰고는 장갑까지 챙겼다.


원래 내일 아침에 가야 할 아파트를 향해 걸었다.

늘 가던 길이지만, 오늘의 내 걸음은 전쟁처를 향하는 군인의 모습이었다.

멀리 그 아파트의 입구가 보일 즈음 그 정문에서 살짝 떨어진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온장고에서 커피 하나를 꺼내 결제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큰 창문 사이로 보이는 아파트 정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 '개'와 '주인'을 따라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증거를 잡으려 한다.

' 어떻게든 오늘 그 짓거리를 더는 못하게 하고 말 거야. '


익숙한 '그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듯한 모습이었다.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서 우측으로 지하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어 인도를 따라 '개'가 앞서 걸었다.

인도를 따라 작은 풀밭과 담장을 따라 나무 가지가 이어진 그 길은 '개'가 좋아하는 장소였다.


머뭇머뭇거리던 '개'가 주위를 몇 번 둘러보더니 다시금 길을 앞장서 나갔다.

101동과 102동 사이로 뒷 길을 따라 천천히 밤의 여유를 즐기던 '그것'들이 갑자기 멈쳐섰다.


104동과 105동 주민들이 자주 오가는 그 길, 그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뒤처리를 야물차게 하던 '개'는 시원한 듯 걸어 나갔다.


" 시원해?. 어휴 오늘은 아주 굵직하네. 잘했어. "

'개'의 주인인 '그'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개'를 따라 걸어갔다.


" 이봐요. 아니 뭐 하는 겁니까? "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다가서서 내가 '그'에게 말했다. 아니 고함을 치듯 말했다.


" 개가 똥을 싸면 주인이 치워야지요.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


내 목소리가 조금은 떨고 있었다. 하지만 작지 않은 소리였기에 '그'가 돌아보았다.

그때 '그'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나이는 오십 대 정도의 건장한 '아줌마'였다.

키도 덩치도 나보다 컸다. 짙은 눈 화장은 그의 인상을 늘 화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 이걸 왜, 내가 치워요? "

'그 아줌마'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무런 창피나 수치심도 없었다.


그리고는 '그일'이 벌어졌다.

난 맨손으로 '그것'을 들어 '그 아줌마'에게 던졌다.

그리고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식사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수줍게 말하던 60대의 한 사내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 지금껏 참아만 오던 삶이었어요. 누구에게 욕 한번 해보지 않았거든요. 그냥 참자 참자.. 그렇게 살았던 거 같아요. 평생직장 다니고 아이들 키우면서도 화를 낼 수 없었어요. 부족하고 남들처럼 잘 살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거든요.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면 다 내 탓인 줄 알았거든요. "


식탁에 물을 따라 한잔 크게 마시고 말을 이어 나갔다. 뭔가 큰 결심을 한 모습이었다.


" 그런데 말이죠. 이젠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요. 저 이제 욕도 하고 아닌 거는 아니다라고 말 할 거예요. 올해가 저에겐 그렇게 나를 다시 일으킨 한 해였어요. 이젠 저를 위해 살아 볼 거예요. "


그리고는 아주 길게 허리를 숙인 그는 한참이나 그렇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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