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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송년회

4. 식구가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by 맨땅

잔잔한 음악이 사람들 사이사이로 낮게 깔려 있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는 마치 서로를 감싸듯 화음을 이루다가 느낌표처럼

자신만의 음색을 짙게 소리 내었다.

하지만 요란하거나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은 완벽한 수채화처럼 느껴졌다.



테이블에는 각자 개인에게 맞춰진 수저와 젓가락, 그리고 물컵이 놓여 있었다.

이내 작은 접시에 놓인 찻잔보다는 조금 큰 그릇에 수프가 담겨 나왔다.

김이 교차하듯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그 사이로 노랗고 약간은 홍조 띤 호박죽이 담겨있었다.

그 위로 잣이 서너 알씩 올려져 있었는데, 보는 순간 몸이 따스해 짐을 알 수 있었다.


수저 반쯤, 호박죽을 떠서 입안에 조심스레 넣었다.

생각보다 뜨겁지 않음이 먹는 사람이 편하게 먹는 최적의 온도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급하지 않게 한 숟갈, 한 숟갈 목을 타고 삼키는 내내 입의 꼬리는 올라가고 있었다.



너무 달지도 너무 묽거나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어떤 음식이 나올지 기대하게 만드는 시작이었다.


" 음식이 입에 맞으신지 모르겠습니다. "


모두가 자신의 음식에 집중하느라 머리를 테이블에 처박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얼굴엔 대답을 한가득하고 있는 표정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는 조금 더 신경을 써 보았습니다. 귀한 분들이 오셨으니까요.

그리고 음식의 양은 조금, 아주 조금은 줄여 보았습니다. 그러니 남기지 마시고 맛있게 드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음식 준비하러 들어가 보겠습니다. "


오늘 모임 장소인 이곳 식당의 주인이 말을 마치고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 안녕하세요?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들이 주인공입니다. "


우리 모임의 리더이자 센터장이 일어나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는 한 명, 한 명을 아주 잠시 스치듯 바라보며 눈인사를 걷겠다.


" 미리 안내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규칙들은 다 알고 계시지요? "


모두가 고개를 끄떡이며 수긍하고 있었다.


" 편하게 이야기 나누시면서 나오는 음식을 드시고 부족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사실 식구라 하면서 밥 한 끼 같이 못한 게 죄송했어요. 하지만 저에게도 올 한 해는 참으로 힘든 한 해였어요. 중간에 그만두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니까요. "


말 중간에 그의 시선은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아주 잠시의 찰나지만 그의 고민이 생각보다 깊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 처음엔 내가 가진 거,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 어두운 곳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은 없다'라고 말하는 게 그 시작이었는데요. 내가 많이 부족하다 보니 '진실'은 사라지고 때로는 '변질'된 시선들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조금씩 손에 힘이 빠지고, 속도가 느려질 즈음에 한분씩 한분씩 내 곁에서 함께 수레를 끌어 주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


" 처음에는 그저 감사하고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저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날 하루 종일 얼마나 울었는지.."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에 몇몇은 눈물을 훔치듯 눈가에 손을 대고 있었다.

시끌벅적하지 않아도 소리 없는 대화가 그 식당 안에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추신 : 이 글은 시리즈는 아니고 참석하신 분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하니씩 사연으로 전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 중에 일반적인 봉사와 기부 활동을 깎아내리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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