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고장 난 시계
청년의 시 발표가 끝나고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감탄이고 응원이었다.
머쓱한 표정의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맛깔난 음식들도 거의 비워지고 따스한 차와 한과가 후식으로 나왔다.
몸도 마음도 가득 차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방송에서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밥은 배고플 때 먹으면 좋고, 약은 아플 때 먹지요. 하지만 마음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가 중요해요. "
오늘의 음식은 지금의 마음처럼 행복했다.
" 저도 한 말씀드려도 될까요? "
구석진 자리, 그 한켠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식사를 마친 50대의 여자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소리는 작은 듯 가냘프고 조금은 높은 톤의 음성이었다.
곱게 단정된 짧은 단발머리와 옅은 화장, 원피스 차림의 그녀는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을 것처럼 보였다.
" 스무 살이 좀 지난 나이에 결혼을 했어요. 제 주변 친구들보다는 빠른 나이였어요.
그만큼 제 남편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다정하고, 따스한 남자였어요. "
그때를 회상하듯 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 결혼을 앞두고 저의 아버지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여자는 세 가지를 따라야 한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나중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삼종지도를 제게 몇 번이고 명심하라고 하셨어요. 그 당시에만 해도 과한 말은 아니었어요.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할 필요도 없고, 학교에서도 가정/가사라는 과목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신혼의 시간은 녹녹하지 않았어요.
먹고사는 문제와 출산과 육아, 시부모님의 봉양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지요.
하지만 크게 불만은 없었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살던 시대니 까요.
그런 저에게 '암'이라는 병이 생기고 나서 하나씩 하나씩 변화가 생기게 되었어요.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약해진 저에게 '암'보다도 더 큰 상처들이 다가왔어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렸어요.
물론 원래부터 다 있던 것들이었지만요...
처음으로 제가 병원에 입원하여 누워 있을 때, 시어머니가 그려셨어요.
이제 니 남편과 애들 밥은 어떡하니...
통원치료를 위해 병원 복도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덩그러니 나만 혼자 앉아있는 거예요.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참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누가 원망스럽다거나, 미워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서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는 이제 고장 난 시계가 된 기분이었어요. 아무도 날 쳐다보지도 필요하지도 않게 된 거예요.
그날 이후부터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이곳 봉사단체도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2025년의 시계가 지나가고 있었어요.
제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오늘 이 자리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이 망설였거든요.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