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육아휴직 2달째, 어느날의 기억
화성인으로 살아남기
아기를 낳고, 밤중 수유를 위해 유축기를 가열차게 가동하고 나면
늘 그렇듯 잠은 사라지고 쓰나미 같은 허기가 찾아온다.
푹 자본적이 언제였던가.
앉아서 밥을 먹었던 적이 몇 번인가?
이곳이 회사라면
도대체 야근을 몇박 몇일을 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이런 고통은 없었다.
마누라는 죽어가는데 꿀잠자는 저 사람은
남편인가 남의 편인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짐승인지 좀비인지 알 수 없는 몰골이지만,
아아, 역시 아직은 사람인지라
그 못자고 못 먹는 중에도 문화적인 욕구를 못 참아
한 밤에 케이블 TV 영화채널을 튼다.
그 날 밤 본 영화는 맷 데이먼 주연의 ‘마션’
화성에서 홀로 낙오된 한 남자.
쓸쓸히 감자농사를 지으며 지구로부터
구조대가 올 때까지 악착같이 버티는 처절한 데스티니.
그리고 비몽간인지 사몽간인지
나도 별안간 ‘화성’에 불시착한 걸 깨달아버렸다.
아기를 낳고 보니 이상한 별에 혼자 떨어져 있는거다.
결혼하고 애 낳으니
남편은 말은 하지만 말 안 통하는 외계인,
아기는 아직 말도 모르는 외계인
이제까지 살아온 곳과 중력도 다르고 풍토도 다른,
육아라는 행성에 떨어진 나는
적응할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가 실전이다.
나도 살아남고 아기도 살리기 위해 버티고 있다.
너무 힘들어서 아기가 귀여운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내가 가진 얇은 지식과 체력과 오기
그리고 얼마되지 않은 돈을 동원하여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거다.
구조대는 쿠팡과 배민찬..
그리고 얼굴은 알 수 없지만
무수한 댓글로 응원하는 맘카페 회원들.
이제 육아휴직한지 2개월. 복직까진 10개월이 남았다.
복직하면 더운 밥이라도 앉아서 먹고,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그렇게 육아휴직을 끝내고
아기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동료 곁으로 무사귀환했다.
“나 (살아)돌아왔어요 동료여러분!”
그러자 이미 화성에 살다가 지구로 생환한 엄마동료 몇이 시커먼 얼굴을 들며 입을 모아 말한다.
“자 어서와, 지금부터 진짜 게임을 시작하지(feat. 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