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ØГ픈만큼성숙하l진ㄷГ´
나는 전 세계 날고 기는 사람들이 초밀집해 과포화된 뉴욕에 사는 평범한 30대 중반 직장인이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타지에 비빌 언덕이 없는 내 결핍, 혹은 그놈의 의리 때문에 꼭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몇 해 동안 그런 시절 인연들은 바람에 흩날린 겨처럼 다 걸러졌고, (나 또한 속이 비었을 땐, 알곡이 꽉 찬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이 걸려졌으리라..ㅋㅋ) 지금 내 주변에는 블러핑 없이도 걸어온 길 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증명이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고, 연락을 하고, 교류를 계속 하다보면, 돈은 벌면 벌수록 허기가 지고,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갈수록 쭈구리 같이 느껴지고, 주변을 거울 삼으면 삼을 수록 도태된 것 처럼 느껴진다.
이런 만성 가면증후군 (Imposter Syndrome) 에 시달리는 나도 내가 가진 120%를 모두 쏟아부어 학생의 도리를 다했다 자부할 수 있는 때가 있는데 그 때가 바로 중학교 1학년 때 이다.
초등학교 때 반장 부반장을 줄 곧 내리했지만 객관적으로 그건 군중을 아우르는 탁월한 리더십보다는 초딩들 좋아하는 스타일로 선거유세를 재밌게 잘해서 뽑힌 걸로 기억한다. 쇼맨십이 아닌 사회성 측면에 있어서는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다가도 별 것 아닌 일로 지지고 볶기도 했고, 그러다가 6학년 때는 임원이긴 해도, 여자아이들 무리에서는 아예 아싸로 전락하기도 했었다. 사실 그 때 나의 제일 큰 관심사는 "시험 점수 잘 받아서 과외쌤께 칭찬받기"였기 때문에 친구가 10명이든 0명이든 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의 과잉행동이나 사회성 부족으로 영향을 받은 친구들이 있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일테다. 여담이지만, 일진이었던 친구가 결혼 준비하면서 "그 때 못 되게 굴어서 미안" 이라고 연락이 왔을 때, "사과해줘서 고마워, 옛날일인데 뭐." 하면서도 속으로는 옹졸하게 '20년이나 늦은 사죄로 캐캐묵은 니 과거가 세탁이 되는 것도 아닌데 수고가 많네.' 라는 양가감정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 또한 지금은 ADHD네 뭐네 이름표 갖다 붙이며 정당화시키는 행동들도 그걸 직접 겪은 주변 피해자(?)들과 가족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상처인 걸 인지하기 때문에, 소싯적 민폐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지금이라도 지식화해서 사회에 갚아 나가고자 하는 심정인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반 배치고사에서 수석으로 들어온 근영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모든 선생님들의 예쁨과 관심이 그녀에게 쏠렸고, 자연스레 학우들의 지지도 받아 반장까지 그녀의 몫이 되었다. 심지어 근영이는 얼굴도 이쁘고 인성도 나무랄 때가 없어 미워할 순 없었는데 질투는 났었다. 그리고 중간고사에서 그녀는 다시 반 1등을 했고, 나는 전교 22등을 했는데, 그 때 현실직시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아이들을 웃기긴 하지만 반장은 아니고, 반골기질 치고 성적은 잘 받는데 수석은 아닌 현실.
그 이후로 나는 아침부터 등교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단어장에 얼굴을 박고, 밤에는 졸리는 나를 꼬집고 때려가면서 가학적으로 공부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말고사에는 근영이를 제쳤다. 근영이 뿐 아니라 전교생을 제쳤다. 한 번 기준을 그렇게 잡으니 궤도에 올라 그렇게 전교 N등을 왔다갔다하며 남은 해를 마무리 했고, 연말에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반 분위기메이커 1위“ 와 함께 ”무인도에서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 1위" 로 뽑혔다. 이것이 바로 뭔가에 한 번 꽂히면 달성할 때까지 물불안가린다는 ADHD 기질의 순기능이 아닐까 싶다.
기쁨도 잠시, 그에 따른 ADHD의 역기능 또한 사춘기의 등에 업혀 나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2차 성징의 호르몬이 요동을 친다는 중2, 나는 처음보는 얼굴들 앞에서 이회창 성대모사를 시전하여 감히 선도부 학주가 담임인 반의 반장이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평소에도 카리스마 있지만 처벌 또한 무자비한 걸로 악명이 높았고, 반장선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개인 면담에 소환하셨다.
“니가 작년 느네 반에서 1등이었어?”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는데요.“
“근데 올해는 와, 서영이, 지원이, 여진이랑 계속 붙어다닐거야?”
“아빈이, 건영이, 수진이, 민주도 있는데요?”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노. 니 반장아이가?“
“…”
“잘해라이. 니가 한 해동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꼴통반으로 만들거나 모범반이 될 수도 있어이.“
“네.”
선생님의 경고와 당부가 반반씩 녹아있는 조언이 무색 할 정도로, 나는 중2병을 씨게 앓았다. 벚꽃이 필 무렵, 이미 나는 아파트단지 공부방을 나와 친구들이 다니는 신도시에 위치한 종합학원으로 편입을 해버렸고, 학원 수업 자체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는 게 너무나 재밌었다. 등산인지 등교인지 3년간 반복하면 졸업할 때 얻는 건 든든한 알타리 무다리 밖에 없다는 가파른 산골짜기(?)에 위치한 여자중학교에서, 묵은지처럼 묵혀서 총각선생님들 혹은 숏컷 테토녀 선배들 팬걸링을 하는게 낙이었던 사춘기 소녀들에게, 방과후 남녀 혼합 학원은 정말 신세계 였다. 여중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는 친구들을 웃기고 다니던 광대였지만, 남녀혼합판에서는 슬프게도 안경쓴 찐따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 흔한 학원 로맨스 하나 나에겐 찾아온 적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던 범생이들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던 봄, 내 15살 세계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끼게 해준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수련회 장기자랑, 체육대회 준비, 수학여행 패션 깔맞춤, PC방 하두리 캠, 싸이월드 도토리와 최신 BGM등이 국영수 공부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중2 기말고사를 화려하게 199등으로 마무리했고 다시 한 번 담임선생님께 불려갔다. "그 친구들이랑 왜 어울리냐" 의 임팩트에 비해 간에 기별도 안 갔는지 "니 반장 맞나?" 라는 말을 들었던 것 이외에는 별 다른 기억이 없다. 그리고 교무실을 나오면서 '그래도 200등 안에는 들었으면 백분율 반타작은 쳤구만. 이 정도면 양호하지,' 라는 세상 관대한 합리화를 하며 성적표는 곱게 접어 하늘 위로 날려버리고 친구들과 신나게 떡볶이를 먹으러 갔었다. 여름이었다....
그렇게 가을이 왔고, 사춘기 여중생들의 호르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무리가 너무 크면 갈라지는게 당연한 일이었을까, 우리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균열이 일어났었다. 특히 내가 제일 믿고 의지하던 친구와 별 시덥잖은 이유로 개인 우정 전선에 금이 갔는데... 그렇다면 나는 다시 "전교1등"으로 돌아갔을까? 그건 또 아니었다. 인기 많던 반장, 재밌는 반장, 공부 잘했던 반장에서 여름 방학이 지나고 나니 권위없는 반장, 말이 씨알도 안 먹히는 반장, 제일 믿었던 친구를 필두로 은근히 조리돌림 당하는 반장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때 과외선생님에게 강력한 애착유형을 형성했던 것 만큼 친구들도 너무나도 사랑했던 것 같다. 내 발로 공부방을 나와서 학원으로 편입했을 때와 다르게, 하루 아침에 "중2병의 내전부"였던 친구들을 잃은 상실감에, 아침에 눈을 뜨면 학교가 가기 싫을 정도로 우울증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
그 해 겨울, 나는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이마에 오돌토돌 올라오기 시작하기 여드름만큼이나 숨길 수 없이 따가웠던 이 시절은 나의 신앙관 (= 사람은 의지 할 수 없는 존재, 하나님은 나를 수렁에서 구하는 존재, 나는 가진게 쥐뿔도 없는 하나님께 꼭 붙어있어야만 하는 연약한 존재) 이 생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신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감사하긴 하지만, 여전히 중2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이 조금 아프다.
ADHD인들은 어떤 프로젝트에 있어서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성공률이 보장되지 않아도, 본인이 하겠다는 의지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내고 만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가 감행되는 동안 차안대를 씌운 경주마처럼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하는게 단점이기도 하다.
ADHD인들의 아킬레스건 또한 그만큼 극단적인데, 어떤 일을 자발적으로 해야겠단 마음이 들지 않으면 아무리 채찍질을 당해도 (예시: 무서운 학생주임의 혼쭐) 일이 안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보상이 사라지면 (예시: '친구들과의 우정 유지') 모든 저의가 상실이 되고 우울증, 불안, 자존감 저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보상을 찾아, 결국 해외 유학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