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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Jul 28. 2020

'유교는 꼰대?' 유교가 사실 강조한 '이것'

이황의 삶과 공부를 통해 알아보는 진정한 배움의 자세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조선의 국학이었던 유학은 때로 '꼰대 문화'를 만들었다는 오해를 받는다.

 

사실 유학에서 공부란 감정의 발현이 적절하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것을 말한다.

 

여기 비춰보면 '꼰대' '갑질'이란 단어는 유학과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유학의 공부법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DBR 181호에 소개된 퇴계 이황의 삶과 공부법을 통해 진정한 배움과 바람직한 배움의 자세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퇴계 선생의 사진


퇴계 선생의 생애


퇴계는 조용하고 담박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했다.

 

13세에는 <논어>를 배우다가 ‘학이’편의 “배우는 사람은 집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공손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러 “사람의 도리는 마땅히 이래야 할 것이다”라고 스스로 경계했다고 한다.

 

20세 때는 침식(식사와 수면)을 잊고 밤낮으로 <주역>을 탐구하다가 건강을 해칠 정도로 공부에 심취했다.

 

어린 시절부터 관직에 초연했지만, 홀어머니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주변의 권유에 마지못해 과거에 응시, 34세에 대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본래 벼슬에는 뜻이 없었기 때문에 관직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틈만 나면 한적한 지방의 관직을 자원하거나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했다.

 

30대와 40대를 어쩔 수 없이 관직에서 보낸 퇴계는 49세에 단양군수와 풍기군수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완전히 물러나 학문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이와 같이 퇴계는 평생을 학문의 완성을 위해 정진했고,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도 그의 공부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그에게 공부는 경쟁에서의 승리도, 지식인으로서의 명성도, 지식 그 자체도 아니었다. 오로지 순수한 의미에서의 '사람다운 삶'이었다.

 

흔히 "사람 되려면 배워야지!" "배워야 사람 노릇하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퇴계의 말과는 차이가 있다.

 

이 말은 위인지학(爲人之學), 즉 남 때문에 하는 공부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시켜서, 남들도 하니까,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를 통해 타인에게 대접받기 위해 하는 공부다.

 

하지만 유학에선 배움이 본질이 자기 인격을 완성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를 유학자들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했다. 퇴계는 양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인지학이란 마음으로 터득하고 몸소 행하는 것은 힘쓰지 않고,
헛된 것을 꾸미고 외물에 따라가서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
군자의 학문은 위기지학일 뿐이다.
이른바 위기지학이라는 것은 장남헌(張南軒)이 말한
‘의도하는 바 없이 그러한 것[無所爲而然]’이다.
마치 깊은 산 무성한 수풀 속에 한 떨기 난초가 있어,
종일토록 향을 피워내지만
정작 자신은 향기가 되는 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 <퇴계선생 언행록> 권1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의 본질인 '인의예지'가 제대로 발현되도록 마음을 가다듬어야


위기지학은 사람의 본질을 탐구해 그 길대로 살고자 하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유학에서 말하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일까.

 

유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이 우주의 만물은 태극이라고 하는 절대적 존재가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해 드러낸 것이다.

 

사람의 마음엔 성(性)이라는 태극이 내재돼있다. 성은 우리의 마음 작동 방식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성이 상황에 따라 드러난 것, 즉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정(情)이라 한다. 기쁜 상황에서 기쁜 감정이 솟고, 슬픈 상황에서 슬픔 감정이 드는 것이 바로 성이 정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사람에게 부여된 성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다.

 

유학에 따르면 사람이 사회를 이뤄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는 것은 인의예지라고 하는 사람의 본성에 근거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타인과 만물을 사랑할 줄 알고, 옳은 일을 할 줄 알며, 타인을 배려해 양보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의예지의 성이 현실에서 끊임없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가끔 혹은 종종, 인의예지의 발현이 방해받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감정은 부적절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것은 모두 성이 본래 방식대로 작동한 것이 아니다.

 

유학에서의 공부란 바로 감정의 발현이 항상 적절하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것을 말한다.

 

모든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감정을 유지하며, 그 적절한 감정대로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게 유학에서 말하는 공부의 기본적인 목표이며, 그러한 사람이 바로 사람다운 사람, 즉 퇴계가 지향한 군자이고 성인(聖人)이다.

 

 

공부의 양 날개 - 거경과 궁리

 

적절한 감정의 발현과 실천을 위해서는 첫째, 사태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사태 파악이 왜곡돼 있다면 그에 따른 반응도 적절하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둘째, 내 마음을 인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하더라도 내 마음의 반응 양식이 왜곡돼 있다면 적절한 감정이 발현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배움은 바른 마음을 기르고 정확한 인식능력을 계발하는 두 방향으로 이뤄진다. 이를 유학 용어로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라고 한다.

 

궁리는 말 그대로 세상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고, 거경은 언제 어디서나 경(敬)의 상태를 유지함을 말한다.

 

거경과 궁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의 두 날개라 할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거경 공부가 기본이 된다. 거경은 퇴계 공부법의 핵심 중 핵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경을 지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

 

출처 채널A 천일야사32화

 

거경공부의 관건은 욕심으로 인해 생겨난 잡념을 비우고 마음의 본래 상태를 회복하는 데 있다.

 

욕심과 잡념을 비우면 마음은 또렷이 깨어 있고 거울처럼 텅 비게 된다.

 

이러한 마음은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마음이다.

 

경은 하늘(혹은 태극, 리)의 소리를 온전하게 듣고 그에 따르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 경을 바탕으로 해서 궁리( 窮理)에 힘써야 한다.

 

이치를 탐구해 깨치는 길은 책이나 수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사람들로부터 이치를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일상의 모든 때와 장소가 궁리의 자리다.

 

따라서 궁리공부는 정보를 습득해서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암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공부가 되려면 철저하게 이해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중심적 계산이 아니라 만물의 원리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세상의 이치에 통달해야만 비로소 정확하고 올바른 인식이 가능하다.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공부의 다섯 가지 과정


퇴계의 공부 목적은 가장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즉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다.

 

퇴계는 이 점에서 그 누구에게도 한 발의 양보가 없었다. 그렇기에 철저하고 독실히 공부했다.

 

퇴계를 비롯한 유학자들이 실질적으로 공부를 할 때, 구체적으로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자. 다음은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공부의 다섯 가지 과정이다.

 

첫째, 박학(博學), 폭넓게 많은 지식을 습득함을 말한다. 폭넓게 배우지 않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생각이 치우치기 십상이다. 어떠한 지식이든 수용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것이 박학이 필요한 이유다.

 

둘째, 심문(審問), 의문 나는 것을 자세히 살펴서 묻는 일이다. 설렁설렁 대충 많은 것을 아는 것보다 하나라도 정확하고 올바르게 아는 게 중요하다.

 

정확하게 알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했다. 즉 나이·학식·신분에 관계없이 내가 모르는 것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신사(愼思),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공부는 결국 자기가 하는 것이지 남의 생각을 주워 담고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배우고 묻는 것과 같은 남의 도움을 받는 정도를 넘어 공부의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는 길은 바로 자기의 생각이다. 생각을 통해 깨우치고 알아야만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

 

넷째, 명변(明辨), 명료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배움과 물음, 사색의 과정을 거쳐 옳은 판단을 내리는 단계다. 이 판단으로 나의 행동이 결정된다.

 

다섯째, 독행(篤行), 독실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공부의 전 과정을 통해 옳다고 판단된 것은 꿋꿋이 실천한다.

 

실천하지 않는 앎은 앎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위의 네 단계를 거치는 것은 바로 이 실천을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앎과 행동은 완벽할 수 없다. 이러한 과정을 충실히 거쳐서 얻어진 지혜라고 하더라도 어딘가는 단점이나 잘못된 점이 있을 수 있다. 유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는다.

 

나의 지식과 지혜에 잘못이 있을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에 그들의 지식은 절대화·교조화되지 않는다.

 

만일 나의 지식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 실천에 옮긴다. 공부는 이 과정의 무한 순환이다.

 

 

21세기, 퇴계의 공부법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


유학을 구성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일상’과 ‘실천’이다. 유학에서 마음을 닦아 적절한 감정으로 살고자 한 이유는 그 마음으로 세상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를 위한 공부’를 통해 자기 수양을 한 ‘나’는 반드시 세상을 위해서 쓰여야 하며, 쓰이게 된다. 그래야만 세상은 밝아지고 진정한 성공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학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반듯하게 살 것을 요구하는 도덕론이 아니라 매우 실질적인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유학도 기술과 실무지식을 소홀히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실무적 능력의 습득은 인격수양에 비하면 쉬운 일이고, 개인마다 배워야 할 지식이 다르며, 개인 간의 능력 차도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격과 마음이다. 유학에서는 ‘그 마음’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큰일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자기 수양이 돼 있지 않은 사람이 일을 맡으면 자기도 그르치고 세상도 망친다. 여기에 해당되는 예는 굳이 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랬고, 지금 바로 이 시간 정치판에서도 실시간으로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퇴계의 공부론은 한가하거나 팔자 편한 사람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바야흐로 윤리성이 성공의 필수 요건이 되는 시대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을 좋고 편안히 여기고, 거짓된 것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어 있다.

 

기업이 ‘돈이 되는 제품이나 서비스’, 그리고 ‘포장된 마케팅’이 아닌 ‘인간 본연의 마음’을 제공할 때, 그것은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가 될 것이며, 그러한 기업만이 진정한 성공의 자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81호

필자 이치억 성균관대 교학상장


 

인터비즈 김정관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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