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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Jul 28. 2020

봉준호, 천재성과 '겸손한' 리더십의 하이브리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아카데미상 시상식 말미에 봉준호 감독을 칭찬하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 그의 머리 스타일 얘기를 했고, 유머 감각 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부회장을 말 중에 내 귀에 가장 꽂혔던 말은 “He never takes himself seriously” 였다. 의역을 하자면 “그는 잘난 척 하지 않는다”,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말이 봉 감독을 가장 적확하게 묘사한 말이 아닐까 싶다.

 

봉 감독은 천재가 맞다. 아무도 그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리라 믿는다.

 

그는 “내 자신이 관객이 돼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영화를 만들 때의 기준은 오로지 나 자신”이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자신의 기준을 관철시켜서 ‘마더’와 ‘괴물’, ‘기생충’ 같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 천재는 많다. 다만 겸손함을 갖춘 천재는 많지 않다. 봉 감독이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겸손하기 때문일 거다.

 

그런 종류의 인간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말해 사람 좋은 천재인 셈이다. 그래서 충무로에 적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이번에 성공해서 질투하는 사람도 없다고 하는가 보다 싶다.

 

하지만 봉 감독의 천재성도 묻힐 뻔 했었다. 1990년대 중후반엔 생계를 위해 비디오 대여점을 열어보려고 문의를 해본 적이 있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 기획 단계에서는 영화사 대표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차가운 반응을 견뎌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흥행도 참패를 했었다.

 

지금은 그의 천재성의 대표적인 요소로 인정받는 ‘봉테일(봉준호+디테일)’도 과거엔 천재성을 나타내기보다는 그의 노력과 집착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이 됐다고 한다.

 

또 ‘살인의 추억’의 투자자 중에는 최종 편집본을 보고 투자한 돈을 회수해 간 투자자도 있었다.

 

금액이 많지는 않았지만 영화 개봉을 앞두고 투자자의 이름을 지워나가는 작업을 하면서 암울한 기분이 밀려 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투자자의 생각과는 달리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괴물’로 흥행에 대성공을 하면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괴물’ 성공 후에도 “언제 퇴출될지 몰라 돈이 있을 때 촬영 장비를 하나씩 장만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의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서 일까. 봉 감독과 함께 일해본 배우들은 그의 겸손함과 따뜻함에 놀란다고 한다.

 

그의 전작 ‘마더’를 여기 미국의 도서관에서 DVD로 빌려 본 뒤 너무 충격을 받아서 ‘메이킹 필름’을 꼼꼼하게 챙겨본 적이 있다.

 

주인공 배우 김혜자가 매우 격한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을 찍는 부분이었다. 그 장면을 약 30번 찍은 뒤 봉 감독이 힘들어 하는 김혜자의 어깨를 꼭 안아주며 격려하는 모습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촬영장에서 저렇게 따뜻한 감독도 있구나 싶었다.

 

김혜자뿐이 아니라 ‘마더’의 출연 배우들은 하나 같이 봉 감독의 따뜻한 마음에 대해 말했다. 봉 감독이 무슨 말만 하면 모두 충성을 바칠 태세였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 같은 배우 변희봉은 “봉 감독은 (영화 ‘괴물’을 찍을 때) 같은 장면을 스무 번 찍고 또 찍을 때도 배우들에게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봉 감독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각본상을 받은 뒤에는 대사를 멋지게 화면에 옮겨준 멋진 배우들에게 감사한다고 했고, 국제영화상을 받은 뒤에는 출연 배우와 스태프들을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게 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사실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자기 자신만 제외하고는 모두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는 그렇게 천재성과 리더십을 동시에 갖춘 진정한 하이브리드적인 인물인 셈이다.

 

출처_나무위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이후 한 페이스북 친구가 “이제 ‘우리 아이 봉준호처럼’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는 포스팅을 했다.

 

이 농담조의 포스팅처럼 이제 당분간 한국 사회는 봉준호라는 인물을 연구해 하나의 성공 공식을 만들어 내려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봉 감독의 말을 잘 들여다보면 그런 성공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봉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뒤 한 말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이전 인터뷰 기사를 보면 봉 감독이 이 말에 대한 해설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독창적인 것은 개인적으로부터 나온다.

 

뭔가를 분석한다고 해서 나오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면 된다. 개인적이니까 독창적이다.

 

남들에겐 없고, 나에게만 있는 건 뭘까. 진정 개인적인 것이 뭔가 계속 탐구하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기사).

 

그는 한국인들에게 이제 남들처럼 살지 말고 이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사를 찾고 이를 열심히 추구해 보라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닐까.

 

그의 관심사는 영화와 인간이었고 그는 영화를 통해 인간을 제대로 표현해 냈으니 말이다.

 

“저의 관심사는 늘 ‘영화’와 ‘인간’이었어요. 영화란 무엇인가. 어떠한 것이 진정 영화다운 것인가. 나는 누구 인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나. 앞으로도 이 같은 물음은 계속해서 하게 될 것 같아요.”(기사)



※ 참고 글

- 아웃스탠딩: 방황하는 창작자들이 참고하면 좋은, 봉준호 어록 5가지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인터비즈 박소영 김재형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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