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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Aug 20. 2020

애플의 팀 쿡으로 사는 법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나는 사람 되기


2012년 말이었다. 애플의 고위 경영진이 샌프란시스코의 고급 호텔에 모였다. 애플 와치의 첫 프로토타입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행사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1년여 전에 암으로 사망한 이후 애플이 내놓는 첫 번째 신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사장에서 애플의 새 CEO 팀 쿡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애플의 CEO가 새로운 제품 관련 행사에 참석을 하지 않는 건 전임 잡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잡스는 제품이 애플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쿡은 아니었다.


2011년 잡스가 암으로 사망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애플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누가 애플의 CEO자리를 물려받던 상관 없이 잡스가 이룬 성과를 이어가는 건 불가능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9년이 지난 현재 애플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애플의 주가는 계속 올라 2조 달러에 가까운 시가총액을 자랑한다. 이는 캐나다나 스페인의 GDP보다는 많은 액수다. 쿡이 잡스로부터 CEO자리를 넘겨 받은 이후 애플의 매출과 이익은 2배가 넘게 늘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ㅣ출처 AP 뉴시스


쿡은 제품에 전념하는 잡스와는 결이 다른 경영자다.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제품을 내놓으며 업계를 선도해온 천재적인 잡스와 달리 쿡은 애플을 자신의 성격과 비슷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쿡의 애플은 더 조심스럽고 협력적이며 전술적이 됐다는 얘기다.


많은 애플 직원들은 쿡이 잡스에 비해 조금 더 편한 회사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디자인 부서가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또 쿡은 투자자를 만나고 주주들에게 신경을 쓰며 애플이 처한 정치적인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역시나 잡스 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쿡은 2013년 국내에도 잘 알려진 공격적인 투자자 칼 아이칸을 뉴욕의 집으로 찾아가서 직접 만났다. 3시간에 걸친 식사를 겸한 미팅에서 아이칸은 애플이 남아도는 현금을 주주들을 위해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 해 쿡은 300억 달러를 들여 애플이 자사주를 사들이게 만들었다. 이후 8년 동안 애플이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은 3600억 달러가 넘는다.


이러한 주주 관리는 애플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잡스는 주주나 투자자에게 신경을 쓸 바에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투자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쿡의 이런 행보 덕분에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도 애플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중국에 제품 생산을 의존하는 애플로서는 지금의 미중 무역전쟁이 달가울 리가 없다. 하지만 쿡은 박쥐 같은 전략으로 정치적인 이슈를 헤쳐 나간다. 중간에서 중국이 원하는 것과 미국이 원하는 걸 적절하게 주는 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올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2018년 중국에서 열린 경제 포럼에서 쿡은 자유 무역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반면 미국에 돌아와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사위 제러드 쿠슈너는 물론 백악관 경제 보좌관과 만나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애플 와치에 대한 관세를 높이는 걸 막았다.


텍사스주 오스틴 애플 공장에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ㅣ 출처 AP 뉴시스

2019년 애플이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제품인 데스크톱 컴퓨터 맥 프로의 생산을 중국으로 이전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쿡은 생산을 옮기는 대신 공장이 있는 텍사스 주 오스틴에 트럼프 대통령을 모셔다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자기 덕에 애플이 미국에 공장을 지었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애플은 2013년부터 맥 프로를 그 곳에서 생산해왔다. 


환경 문제와 이민 이슈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쿡이지만 이 번에는 대통령의 거짓 공치사에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그를 팀 쿡이 아니라 친근하게 ‘팀 애플’이라고 부른다.


물론 쿡이 모든 걸 잘 하고 있는 건 아니다. 2015년 애플의 하드웨어 담당 임원이 스마트 스피커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온갖 질문을 해대며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 


CEO가 관심이 별로 없다고 느낀 하드웨어 부분은 스마트 스피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쿡이 아마존의 스마트 스피커 ‘에코’를 거론하며 어떻게 되가냐고 묻자 그제서야 전력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애플은 경쟁사보다 2년 정도 늦게 ‘홈포드’를 내놓으며 이 부문에서 고전하고 있다. 쿡은 너무 조심스러웠고, 하드웨어 부문은 잡스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시와 명령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렇듯 쿡의 애플은 새로운 제품 쪽은 미흡하지만 잡스의 작품인 아이폰의 주변 기기 쪽에서는 선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스위스 시계 산업 규모를 넘어서 버린 애플 워치와 2019년 기준 전세계 헤드폰/이어폰 판매량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에어포드다. 이밖에 쿡은 애플TV 플러스와 같은 동영상 콘텐츠 구독 서비스 시장에도 진출했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잘 하는 사람 뒤에는 아무도 노래를 하지 않으려 하는 법이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너무 잘한 전임자의 뒤를 잇는 후임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임은 있어야 한다. 이런 후임들이 잘 저지르는 실수가 전임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는 거다.


팀 쿡과 스티브잡스ㅣ출처 동아일보 DB

쿡은 잡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에 접근 했고 결과적으로 기업 경영 역사상 창업자를 잇는 가장 성공적인 후임이 됐다. 잡스는 대체할 수 없는 경영자였다. 애플은 잡스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엔진에 기름칠을 해서 잘 굴러가게 만들 인물이 필요했다. 


잡스가 쿡을 애플의 후임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가 이끌던 애플의 운영 부서가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없도록 협력에 집중하는 부서였기 때문이었다.


쿡은 이런 자신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플을 이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묻는 대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경영했다. 산업공학과 출신의 서플라이 체인 전문가인 그는 요즘에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로벌 판매 수치를 훑어 본다. 금요일 저녁에는 운영 및 재무 직원들과 만나 회의를 한다.


회의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많아 직원들은 이 회의를 ‘팀과의 불금 데이트’라고 부른다. 거의 매일 디자인 스튜디오에 들렀던 잡스와 달리 쿡은 디자인 스튜디오에는 발을 거의 들이지 않는다. 쿡은 제품과 마케팅 중심이었던 애플 이사회를 재무 전문가들로 바꿨다.


쿡은 2017년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잡스를 따라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비참하게 실패했을 거에요. 훌륭한 사람들의 뒤를 잇는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죠.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해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방식을 너무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성과가 좋은 전임자를 그대로 따라 하기 위해 과하게 노력하는 건 아닐까. 남들이 정해 놓은 방식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걸까.




※ 참고

How Tim Cook Made Apple His Own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40세에 은퇴하다> 작가



인터비즈 정서우 김재형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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