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서 지시만 하면서 뭘 알아'?
각 정부는 근로자들을 위해 다양한 일자리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전국민 기본 소득, 인적 자본 투자에 대한 세금혜택 지원, 긱 이코노미 임시직 근로자 혜택 등의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좋은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의 인식이 근본적인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임금이 낮은 근로자는 능력치가 낮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근로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테일러의 산업관료주의모델이 만든 카스트제도(생각하는 직원 - 노동하는 직원)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사 미쉐린은 ‘레스폰사빌리자시옹(responsabilisation) 프로그램’을 통해 관료주의 함정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그 결과 제조공정 개선을 이뤄낼 수 있었다. HBR 2020. 7-8월 호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노동자에 대한 편견은 초기 산업혁명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대에는 실제로 근로자 대부분이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관리자들은 근로자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기계'로 봤다.
1911년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Taylor)의 <과학적 관리법>이 대표적이다. 그는 일선 업무에서 노동자의 판단력을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방법의 표준화, 최상의 도구와 근로조건의 도입, 협력 강화를 통해서만 신속한 작업이 보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관리자와 노동자의 역할을 수직적으로 분류한 것이다.
테일러의 산업관료주의 모델은 근로자를 '생각하는 직원'과 '노동하는 직원'으로 나누는 일종의 카스트제도 였다. 이 카스트제도는 노동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만들어 오늘날까지도 기업의 관료주의적 문화와 격차는 조직 내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현대의 근로자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우수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말이다.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의 공동 CEO인 짐 하게만 스나베(Jim Hagemann Snabe)는 임기 말미에 회사 전체 직무에 대한 KPI(핵심 성과 지표, key perfomance indicators)가 5만 개 이상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우리는 회사를 원격으로 통제하고 운영하려고 했다. 우리 직원들은 놀라운 재능을 가졌지만, 우리는 그들의 두뇌를 죽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직원들은 기계적, 수직적으로 통제할수록 직원들의 열정과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최근 몇몇 기업들은 이 관료주의적 통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직원들의 역량 강화와 뛰어난 가치 창출을 추구며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한다. 직원들의 '학습'과 '성장'에 집중한 것이다.
프랑스는 공장의 근로자들이 경영진과 협력하기 보다는 공격적으로 파업에 나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쉐린(Michelin)은 대기업의 악명 높은 계층적 기업 구조에 도전해왔다. 자동차 산업의 특징인 '중앙집중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어로 '권한 부여'라는 뜻인 '레스폰사빌리자시옹(responsabilisation)'을 모토로 삼기도 했다.
일선 직원들의 권한과 책임을 강조한 레스폰사빌리자시옹 프로그램을 통해 5억 달러(약 6000억 원)에 달하는 제조공정 개선이 이뤄졌다.
미쉐린이 처음부터 이렇게 노동자 권한 부여를 고려해 성공적인 인사 시스템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이 레스폰사빌리자시옹 프로그램 아이디어는 직원의 '불만'으로부터 나왔다.'2000년대 중반 미쉐린은 'MMW(미쉐린 제조 방식, Michelin Manufacturing Way)'라는 전사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표준화된 프로세스와 툴, 대시보드, 성과 감사를 통해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MMW를 통해 프로세스 표준화가 이루어지자 공장 노동자들의 주도성과 창의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심지어 MMW 표준화 프로그램은 2010년까지 미쉐린의 이익 감소까지 초래했다. 하지만, 제품주기 단축과 새로운 경쟁사, 서비스 성장 등으로 미쉐린은 오히려 유연성과 창의성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2012년,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워크숍을 열었고, 참가자들은 일선 팀들이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고, 현지 운영을 개선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더 많이 부여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 워크숍 참가자 중 한 명인 상하이 공장 관리자 베르트랑 발라랭은 실적이 저조한 여러 공장을 회생시켜 명성을 얻었던 경험이 있다.
그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높은 자율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역량 개발에 힘쓰고 공유 목표 의식을 제고할 수 있도록 힘썼다. 비록 동료들이 당시 그의 노력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시 인사 부서장이었던 장미셸 기용은 발라랭에게 노사관계 책임자로 인사부서로 들어올 생각이 없냐고 제의를 했다. 미쉐린의 협소한 직무 조직 방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발라랭은 이 제안을 즉시 수락했다. 그는 상부의 관리감독과 임금 만으로는 노동자들의 동기부여가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레스폰사빌리자시옹'이 진정한 직원 역량 강화와 성과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며, 상향식(bottom-up) 이니셔티브를 계획했다. '자율적 성과 및 개선 관리'라는 의미의 프랑스 단어 앞 글자를 따서 MAPP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이 새로운 방법을 작게 테스트해보기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프랑스 남부 르퓌 지역에 있는 트랙터 타이어 공장의 조립라인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파일럿팀으로 동참했다.
여러분(리더)들로부터 필요한 유일한 도움은 팀이 더 대담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도록 격려하는 것뿐
-베르트랑 발라랭
발라랭은 테스트에 참여한 17개 공장 리더들에게 팀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하는 게 프로젝트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팀 리더들의 역할을 '결정'에서 '권한 부여'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직원들의 교대근무 일정수립부터 생산계획 까지, 제조 프로세스 영역을 하나하나 확대해 나가며 생산성 향상에 힘썼다.
처음에는 조금 더뎠지만 점차 성과가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발라랭은 팀에서 어느 누구도 직원들의 의견을 막고 통제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 '티핑 포인트'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2013년 상반기, 독립적으로 일을 했던 파일럿 팀은 여름이 되고 미쉐린 제조부문 엔터프라이징 매니저인 올리비에 마셜의 지원을 받아 다른 팀과 함께 일하게 됐다. 팀들이 서로 의견과 결과를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인 '맵피디아(MAPPEDIA)'를 마련하기도 했다.
발라랭은 3일 간의 워크숍에서 자율적인 팀의 특징이 무엇인지 정의하도록 했다. 인사 직원이나 컨설턴트가 만든 교과서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참여한 경험에 의해 의견을 수렴했다. (1) 공유 미션과 목표 수립 (2) 업무 조직 (3) 역량 개발 (4) 혁신 촉진 (5) 다른 이들과의 협력 (6) 성과 관리 등 6개 그룹으로 분류됐다.
그 결과 연말까지 생산성과 참여도에 매우 큰 영향이 나타났다. 홈부르크 공장에서는 인기 타이어의 제품 불량률이 생산단위당 7%에서 1.5%로까지 감소했으며 생산성은 10%개선됐다. 결근률은 5%에서 거의 0에 수렴할 정도로 낮아졌다. 타 공장에서도 비슷하게 긍정적인 성과를 볼 수 있었다.
파일럿 팀의 테스트 결과가 성공적이자, 발라랭과 마셜은 이 레스폰사빌리자시옹 프로그램을 고위 리더십회의 안건에 포함했다. 발라랭은 개선 성과와 참여 점수 증가 부분을 설명하며, 이 프로그램을 공장 전체로 확대해 테스트해 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경영진은 이에 크게 환영했다. 공장 리더와 지원 부서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본사 지원 부서의 결정 권한도 어느 정도 포기해야하는 문제였음에도 말이다. 회의 후, 6개 공장으로 확대해 테스트를 해보기로 결정이 났다.
3일 간의 오리엔테이에는 공장 관리자와 부서 책임자를 포함한 공장 대표단이 참석했다. 각 공장의 상황에 맞는다면 어떠한 솔루션을 결정해도 상관없다는 내용과 어떤 톱다운(top-down) 가이드라인이나 월별 검토도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작업자들을 그냥 신뢰할 수는 없으며, 신뢰는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암묵적 가정 하에 공장을 운영해왔다.
- 폴란드 올슈틴 공장 관리자 야로스와프 미셸락
폴란드 올슈틴에 위치한 공장은 레스폰사빌리자시옹 목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실험하기 위해 '다기능팀(cross-functional team)'을 구성했다. 이 팀은 '신뢰'를 핵심 키워드로 삼으며 모든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했다. 이러한 사소한 시각 차이가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테스트가 이뤄지는 공장의 일선 직원들은 기존에 관리자들이 주로 담당하던 생산계획 회의에도 처음으로 참석할 수 있게 됐다. 공장 설계와 자본 프로그램, 인력 구성, 연간 목표 등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장은 직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원의 역량 개발에도 투자했다. 가령, 유지보수 부서는 장비와 스페어 부품을 구비해 작업자가 수리 기계를 연습해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다. 현장 작업자 뿐만 아니라 관리자에 대한 교육도 필요했다. 직원들의 자율권이 커지면서 업무 경계와 역할을 재정의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은 '정서적 지능(emotional intelligence)'과 '뒤에서 리드하기(leading from behind)' 등 관리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관리자들은 만나 학습 내용을 공유하며 어떤 것이 효과적이고 그렇지 못했는지 학습해 나갔다. 관리자의 역할은 이제 '상사'가 아닌 '멘토'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 결과 관리자들은 오히려 일상적인 일에서 벗어나 보다 더 핵심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미쉐린 공장은 전통적으로 중앙 본사의 힘에 의존해 왔다. 생산량 할당부터 공정 프로세스 정의까지 다 본사의 지시와 표준화에 따른 것이다. 발라랭은 공장에서 일하는 현지 근로자들이 공장을 스스로 관리할 수 없으면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본사 직원들은 한 달 동안 테스트 해보는 데에 동의했고, 결과는 성공이었기 때문에, 본사는 목표설정 권한을 공장에 위임했다. 가장 큰 진전을 이뤘던 올슈틴 공장은 타이어 금형 등 자본 구매에 대한 의사결정과 품질 감사 등에 대한 권한도 얻어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기업의 중앙 통제권이 축소된 것이다.
이 레스폰사빌리자시옹 프로그램의 성과는 어땠을까. 홈부르크 공장에서는 생산성이 10% 향상됐고 관리자나 전문가 추가 채용 없이도 업무량이 3분의 1 정도 증가했다.
MAPP은 제조부문을 넘어 그 파급효과를 펼치고 있다. 2018년에는 임원들의 입김 없이도 70개의 다부문 팀에 의해 대대적 조직 개편이 이뤄졌다. 미쉐린은 '역량 강화'가 회사의 새로운 상징임을 선언하며 모든 사람들의 역량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일이 재밌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사람은 '학습'과 '성장'의 경험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때 일이 재밌다고 느끼게 된다. 상부의 지시만 따르며 기계처럼 일을 수행하는 것은 업무를 지루하게 만든다.
미쉐린의 사례는 직원의 잠재력을 믿고 그들의 역량에 투자할 때 어떤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수십 조 원의 정부 지출과 새로운 일자리 정책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들의 적극성을 끌어내도록 동기부여 하는 것, 직원들의 역량을 길러주고 동시에 인정해주는 것이다.
필자 게리 하멜(Gary Hamel), 미셸 자니니(Michele Zanini)
인터비즈 정예지 박은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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