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민승 그립 마케팅&PR 담당 실장
"55 사이즈가 입어도 되냐고요? 맞을 것 같아요. 제가 평소에 55 입으니까 한번 입어 볼게요."
"***님 또 오셨네요? 반가워요. 저번에 산 거 맛있게 드셨어요?"
"지금부터 선착순 갑니다. 구매 원하는 세 분, 손들어 주세요."
쌍방향 소통을 앞세워 라이브커머스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확산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유통가 대세로 떠올랐다. 네이버, 카카오, 백화점, 이커머스, 심지어 홈쇼핑까지 안 뛰어든 곳을 찾기 더 어렵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라이브커머스 시장 규모가 2020년 3조원 규모에서 2023년 8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라이브커머스 전문 플랫폼 그립(Grip)은 코로나19로 성장 기회를 잡음과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2019년 2월 문을 연 그립은 사업 시작 2년 만인 지난해 거래액 240억을 넘겼다. 하지만 자본과 플랫폼 경쟁력을 가진 경쟁자들이 시장에 대거 진출하면서 무한 경쟁의 링에 오르게 됐다. ‘라이브커머스를 한다’가 아닌 ‘어떤’ 라이브 커머스를 한다, 즉 그립만의 색을 보여주는 게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Everyone can sell
그립은 ‘잼라이브’ 등을 기획했던 네이버 마케터 출신 김한나 대표가 네이버, 카카오 동료들과 함께 2018년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김 대표는 일을 하면서 영상 콘텐츠가 뜨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또 한창 인기 있었던 언박싱, 하울 영상 콘텐츠에서 영상을 통한 정보 습득 니즈가 있음을 느꼈다.
당시 중국에선 라이브커머스가 주목받고 있었지만 한국에선 낯선 개념이었다. 사업 초기엔 라이브커머스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판매자 모집도 쉽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등을 검색해 그립에 어울릴 것 같은 판매자들에게 무수히 많은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거의 오지 않았다. 약 50명의 셀러를 모으는 데 꼬박 반 년이 걸렸다. 지금은 소상공인부터 유명 브랜드까지 입점 문의가 쏟아진다. 지난해 말 기준 입점 업체는 8200여 곳에 이른다.
그립에선 누구나 판매자가 될 수 있다. 카메라를 잘 다루지 못해도, 조명이 없어도, 대본을 써줄 작가가 없어도 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바로 방송을 할 수 있다. 자기가 있는 곳 어디든 스튜디오가 된다. 그립에는 집 거실(처럼 보이는 곳), 정육점, 옷 도매상가 등 다양한 곳에서 진행되는 방송이 올라온다. 기존 홈쇼핑 그리고 다른 라이브방송과 비교하면 영상 화질이 떨어져 보인다. 판매자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립에선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립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전민승 실장은 “홈쇼핑의 문법을 그대로 가져오고자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판매자가 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며 “오히려 판매자들께 카메라 비싼 거 쓰지 마시고 그냥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시라, 대본도 따로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린다”고 설명했다. 다른 경쟁자들에 대해서도 “지향점이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라이브로 놀고 보고 그러다 구매하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하기에 자연스럽게 판매자와 구매자들이 소통하며 놀 수 있는 게 방송의 퀄리티보다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전문 판매자 '그리퍼'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방송이 익숙하지 않은 판매자들은 그립 내 전문 판매자인 ‘그리퍼’를 활용할 수 있다. 개그맨 모델 쇼호스트 인플루언서 등 유명인은 물론, 그립이 선발한 비연예인 그리퍼들도 있다.
셀럽 그리퍼 중에는 개그맨이 많다. 유상무, 문천식, 박성광, 김인석 등이 그립에서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전 실장은 “개그맨들이 입담이 좋다 보니 방송을 재미있게 진행하고, 개인 SNS를 통해 홍보도 해줘 자연스럽게 그립이 알려지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수치로도 효과가 나타난다. 10분 동안만 제품을 판매하는 ‘타임딜’ 행사에선 셀럽 그리퍼가 1억8000만원 판매고를 올려 화제를 모았다.
그립에는 ‘셀러-그리퍼 매칭 시스템’이 있다. 라이브 방송 위탁 요청이 들어오면, 그립이 상품 특성, 그리퍼의 이전 판매 내역, 이미지 등을 분석해 적절한 그리퍼를 연결해준다. 최근까지 진행된 매칭은 3500건. 데이터가 쌓임에 따라 향후 시스템이 더욱 고도화해 나갈 계획이다.
최저가 당연, 재미까지 챙기는 쇼핑
소비자는 가격에 움직인다. 방송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인터넷 최저가가 아니면 바로 나가 다른 곳에서 구매한다. 그립은 방송 후 1시간까지 ‘라이브가’로 제품을 판다. 인터넷 최저가 또는 그 이하 특가로 제공한다. 방송 시간 중에만 제공되는 혜택이기 때문에 구매자들은 방송 시간에 맞춰 그립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가격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이용자들이 자주 들어와 방송을 보고 소통하며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① 소통 강화 통한 팬덤 형성
라이브커머스의 가장 큰 장점은 쌍방향 소통이다. 구매자들은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 궁금한 것들을 판매자에게 다 물어보고 답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이들이 올리는 질문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판매자에게 대리 체험(?)을 요청해 원하는 답을 찾기도 한다. “옷 입어서 핏 보여주세요”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바지 편한지 알려주세요” 등.
그립의 구매 평균 반품율은 1% 미만이다. 홈쇼핑은 평균 20%, 이커머스는 평균 10% 정도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립의 규모가 다른 업계에 비해 작음을 고려해도 놀라운 수치다. 낮은 반품율은 쌍방향 소통을 통해 구매자들이 정보를 충분히 얻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통은 팬덤으로 이어진다. 자주 방송을 하며 구매자들과 친분과 신뢰를 쌓으면 ‘믿고 사는’ 판매자가 될 수 있다. 인플루언서 영향력에서도 알 수 있듯 팬덤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다. 팬덤을 만드는 건 판매자의 노력에 여하에 달려 있지만, 앱 내 서비스도 뒷받침돼야 한다. 그립의 ‘팔로우’ 기능은 팬덤 형성에 도움을 주는 장치다. 마음에 드는 판매자를 팔로우하면 이용자는 다음 라이브 방송 때 알림을 받을 수 있어 지속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브랜드가 팬덤을 늘릴 수 있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② 게임 기능
그립 라이브에는 다른 곳에 없는 게임 기능이 있다. 판매자는 방송 중 ‘선착순’ ‘깜짝 경매’ ‘주사위’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다. 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해 구매자에게 재미를 주고, 판매자에겐 구매를 촉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자사 홈페이지에서 라이브하고 싶다면?
그립 클라우드 이용
라이브커머스 수요가 늘면서 그립은 사업 영역을 B2B로 확장했다. 라이브방송 솔루션인 ‘그립 클라우드’를 기업에 월 구독 형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롯데하이마트, 현대백화점, 쓱닷컴(신세계), 아모레퍼시픽 등이 그립 클라우드를 통해 자사 홈페이지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립 클라우드를 활용하면 자사 결제시스템, 배송시스템, 쿠폰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방송은 그립 앱에서 동시 송출도 가능하다.
그립은 라이브커머스의 가능성을 보고 일찌감치 뛰어 들었다. ‘Everyone can sell’이란 비전 아래 시장 특성을 반영한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내놨다. 셀러-그리퍼 매칭 시스템, 게임 기능, 타임딜(10분간만 특가로 판매) 등은 판매자에겐 매출 확대, 이용자에겐 편익 및 재미를 더한다. 최근엔 이용자들의 앱 이용 형태를 반영해 PIP(Picture in Picture) 기능도 도입했다. 화면 위에 화면을 띄울 수 있어 방송 중 카톡이 오거나 라이브를 시청하며 다른 라이브방송을 탐색할 수 있다.
지난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지만, 3년차 스타트업 그립 앞엔 놓인 과제가 더 많다. 현재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를 고도화하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해야 한다. 방송을 송출하는 것만으로는 차별화를 이루기 어렵다. 해외 진출 등 외연 확장도 필요하다. 시장 확대에 따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규제 이슈도 당면 과제다. 홈쇼핑과 달리 라이브커머스는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과대 과장 방송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CS 책임은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판매자에게 있지만,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립 브랜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무엇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왜 그립이어야 하는가’ 보여줘야 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은 이미 많은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다, 카카오 톡을 하다 우연히 라이브커머스 서비스를 접할 가능성이 있다. 그립은 다르다. ‘앱 설치’부터 걸림돌이다. “다른 서비스와 그립의 지향점은 다르다”고 강조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차이를 알아채긴 쉽지 않다.
전 실장은 “늘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시장을 선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타임딜이나 게임 기능처럼 계속 궁금해 그립에 들어오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그립이 뭔데 다들 난리야’란 한 마디를 남길 수 있도록, 올해는 그립 만의 ‘뾰족함’을 보여줄 수 있는 마케팅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필자 박은애 ㅣ 디자인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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