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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Jun 09. 2020

브랜드 없애고 질적혁신 이룬 미국의 '브랜드리스'

브랜드리스(Brandless)가 브랜드에게 던지는 메시지


야, 이거 메이커야


*메이커 : 유명한 브랜드를 가리키는 말


과거 소비자들은 물건을 살 때 제조사와 그 제조사가 내세운 브랜드를 ‘신뢰 여부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 브랜드 이미지를 앞세운 제품을 내놓으면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제품의 품질을 꼼꼼히 따지기보다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갑부터 열었다. ‘이름값하는 제품이겠지’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영화 <건축학개론> 스틸컷 편집


그런데 세계적으로 장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브랜드가 아닌 제품이나 서비스의 절대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실제 신세계그룹의 '노브랜드'와 같은 PB 브랜드들이 인기를 끌고 일본의 무인양품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노브랜딩(No Branding)’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이 브랜드가 가져다주는 환상이 아닌 실질적인 효용과 가치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도 했다.



브랜드 없앤 美 브랜드리스 가성비 넘어 질적 혁신 이뤘다


최근 노브랜딩 전략을 앞세우는 기업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업체는 미국의 스타트업 ‘브랜드리스(BrandLess)’다. 2017년 7월 탄생한 브랜드리스는 가정 용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슈퍼마켓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브랜드리스는 브랜드(Brand)를 없애고자(Less) 했다.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브랜드리스는 무엇보다도 브랜드세(BrandTax)를 줄이고자 했다. 브랜드세는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할 때 자동으로 지불하게 되는 비용을 의미한다. 물류∙유통∙마케팅 등 특정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이 불필요한 가격 인상을 초래하고 이 몫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브랜드리스의 설명이다.


브랜드리스에서 판매하고 있는 면봉(좌)과 감자칩(우) 사진. / 출처 브랜드리스 공식 사이트


브랜드세를 '낭비'라고 여긴 브랜드리스는 이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우선 제품 패키징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실제 브랜드리스의 모든 제품은 외관이 단조롭다. 화려한 포장 대신 단순한 디자인을 택했다. 모든 제품에 단색의 디자인을 입히고 제품 중앙의 흰색 라벨에는 제품명과 제품 성분, 인증 마크만을 강조했다. 면봉 케이스에는 “면봉, 100% 유기농 면, 클로린 프리(chlorine-free)”가 적힌 라벨이 부착되어 있고, 감자칩에는 단색 포장지 위에 “스위트 비비큐칩, 글루텐 프리, 인공향료, 인공색소 무첨가”만이 적혀있다.


브랜드리스는 자사의 공식 블로그를 통해 독특한 간식 레시피를 주기적으로 업로드한다. 사진은 '유기농 모링가 파우더'를 활용해 만든 아보카도 초콜릿볼이다. / 출처 브랜드리스 공식 


광고∙마케팅 비용도 대폭 줄였다. 광고대행사 없이 SNS 홍보와 입소문에 주력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주요 SNS 채널에 브랜드리스를 적극적으로 노출했다. 또 라이프스타일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사 제품을 활용한 독특한 간식 레시피를 소개하거나, 비정기적으로 고객 체험형 팝업 스토어를 열어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디자인, 마케팅 등 브랜딩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인 덕분에 브랜드리스는 유아용품, 건강보조식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품을 균일가 3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품질이 낮은 것도 아니다.브랜드리스는 모든 제품을 자체 제작(PB) 하는데 협력 업체를 까다롭게 선정해 품질 수준을 높이고 있다. 국제삼림관리협의회(FSC)의 인증을 받은 종이제품이나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검증을 거친 위생용품만을 거래하는 식이다.


식품은 대부분이 유기농, 무당, 글루텐 프리(Gluten-free), 비건(Vegan), GMO 무첨가 제품이다. 화장품도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는 파라벤 프리(Parabens-free) 제품만을 판매한다. 가령 소비자가 크루얼티 프리 립밤을 구매한다고 했을 때 브랜드리스에서는 3달러에 구입할 수 있지만,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Amazon)에서 동일 제품을 구입할 때에 9달러(한화 약 1만 원)를 지불해야 한다. 일반 브랜드와 품질은 같으면서도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브랜드리스 공식 블로그


브랜드리스는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2017년 상품 110개만을 가지고 시장에 뛰어든 브랜드리스는 창업 2년만에 현재 409개로 상품군을 4배가량 확대했다. 웹 사이트 트래픽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로 2017년 12월 50만 회에서 2019년 1월 130만 회로 2.6배가량 상승했다. 여기에 단 세 번의 펀딩으로 구글 벤처스, 소프트뱅크와 같은 대형 투자자들로부터 3억 달러(한화 약 3520억)에 달하는 투자를 받는데 성공했다.



브랜드리스가 '브랜드'에게 던지는 메세지


브랜드리스가 브랜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브랜드리스 또한 잘 포장된 하나의 브랜드다. 단지 브랜드리스는 제품 본연의 가치보다는 유명 모델을 앞세운 광고, 화려한 제품 포장 등의 과도한 브랜딩 활동에 의존하는 기업들에게 ‘브랜드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하이테크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레지스 메케나(Regis McKenna)는 2000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브랜드의 죽음을 선언했다. 당시에는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무인양품, 노브랜드, 브랜드리스와 같은 저가형 실속 브랜드가 약진하고 있는 현재,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브랜드의 이름 석 자 보다는 제품 본연의 효용과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동적 정보 수용의 상징인 광고를 맹신하는 소비자는 이제 거의 없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광고의 홍수를 피해가는 노하우를 익혔다. 소비자들은 이제 기업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 만든 광고보다 내 주변 사람 혹은 SNS 내 인플루언서가 전하는 사용 후기를 더 믿을만하고 강력한 정보라고 인식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입소문이 광고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거품을 걷어내는 힘을 길러가고 있는 것이다.


『2달러의 기적』을 쓴 래리 라이트 맥도날드 마케팅 담당 임원은 브랜드를 "가치에 대한 약속"이라고 정의했다. 가치는 브랜드의 이름을 여러 차례 알린다고 자동적으로 쌓이지 않는다. 이른바 '이름값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효용과 가치를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가 무인양품을 떠올리며 '미니멀리즘'과 '친환경', '심플함' 등을 떠올리는 것은 무인양품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자신들이 그런 브랜드임을 떠들어서가 아니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본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품을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없는 게 브랜드가 되는 시대에 알맞는 브랜딩은 제품에 '진정성'을 담는 것 아닐까.



인터비즈 이슬지, 장재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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