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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Jun 19. 2020

파산위기서 톰 브라운과 협업 덕에 되살아난 '브랜드'


100만원대 중반에서 300만 원에 이르는 '프리미엄 패딩'.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는 단연 '몽클레르(Moncler)'다. '패딩계의 명품', '패딩계의 샤넬'로도 불리는 몽클레르는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 유명 연예인들과 상류층의 사랑을 받으며 인지도를 쌓아왔다. 신세계 인터내셔날과 몽클레르 합작법인 몽클레르 신세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5년 매출은 476억 원에서 지난해 매출은 1009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3분기에는 분기 매출만 712억 원을 달성하며 전년 동기대비 38%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출처 몽클레르 공식 인스타그램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프리미엄 패딩 브랜드, 몽클레르의 시작이 등산가들을 위한 용품을 팔던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게다가 패딩은 주력 제품도 아니었다. 등산용 캠핑 브랜드는 어떤 과정을 거쳐 백화점 명품 코너에 위치하게 됐을까.


몽클레르의 시작은 등산가들 위한 캠핑 브랜드


몽클레르는 1952년 프랑스의 산악가이자 발명가인 르네 라미용과 스포츠 용품 유통업자이자 스키 강사였던 앙드레 뱅상이 설립한 브랜드다.


르네 라미용과 앙드레 뱅상은 1950년대 프랑스에서 여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함께 협력하여 산악용 텐트와 침낭류 등 캠핑 관련 제품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프랑스의 모네스티에르 드 클레르몽(Monastier de Clermont)에 공장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지역명의 첫 세 글자와 뒷 네 글자를 붙여 몽클레르를 사명으로 정했다.

출처 몽클레르 공식 홈페이지


사업 초창기 몽클레르는 퀄팅(누빔) 소재의 침낭이나 덮개 안에 넣을 수 있도록 제작한 텐트를 출시하며 기능성 측면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또 당시 프랑스에서 휴가라는 사회적 현상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의 사회변화를 상징하는 제품이 됐다.


몽클레르가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하게 된 건 퀄팅 다운 재킷을 출시한 후부터다. 퀄팅 다운 재킷은 몽클레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제품이었다. 몽클레르의 공장은 고도가 높은 산지에 위치해있어 매우 추웠다. 이런 추위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몽클레르는 작업복 위에 걸쳐 입을 수 있는 퀄팅 다운 재킷을 제작해 제공했다.


프랑스 산악가 리오넬 테레이(좌)와 몽클레르가 출시한 '리오넬 테레이를 위한 몽클레르' 다운 재킷(우) / 출처 pinterest


그러나 몽클레르의 창업자 르네 라미용과 앙드레 뱅상과 친분이 있던 산악가 리오넬 테레이는 노동자들을 위한 퀄팅 다운 재킷의 상업성을 먼저 알아봤다. 그는 그들에게 극한의 기후를 견딜 수 있도록 보호 기능을 강화한 퀄팅 다운 재킷을 개발해 줄 것을 요구했다. 몽클레르는 '리오넬 테레이를 위한 몽클레르(Moncler pour Lionel Terray)'라는 이름으로 퀄팅 다운 재킷을 포함해 장갑, 침낭 등의 산악용 방한 제품들을 출시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다운 재킷이었다.


거위털을 넣어 만든 퀄팅 다운 재킷은 뛰어난 보온성 덕에 세계 각국의 스키 애호가들과 산악 등반대에게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54년 이탈리아 탐험가 아칠레 꼼파노니와 리노 라치델리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카라코람(Karakorum) 정상을 정복하는 원정을 떠날 때 몽클레르의 다운 재킷을 착용했다. 1964년엔 리오넬 테레이가 이끄는 알래스카 원정대의 공식 후원사로 몽클레르가 지정되기도 했다.


알래스카 원정을 떠난 리오넬 테레이가 몽클레르 다운 재킷을 입은 모습, 텐트 역시 몽클레르 제품이다.(좌) 몽클레르를 입은 프랑스 스키 국가 대표 팀(우)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968년 몽클레르가 그레노블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프랑스 스키 국가대표팀의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면서 두 가지 변화를 맞는다. 우선 로고의 모양이 바뀌었다. 이전까지 몽클레르의 로고는 에귓(Equit)산 모양이었다. 그러나 국가대표팀의 공식 후원사가 되고 나서 프랑스의 국조인 수탉을 로고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또, 움직임이 많은 스키 국가대표팀을 위해 기존의 2중 재킷보다 가볍고 활동성이 높은 싱글 재킷을 출시하며 더욱 실용적인 스포츠웨어 브랜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몽클레르 브랜드 로고 / 출처 몽클레르 공식 홈페이지


'한물 간 브랜드'로 전락한 몽클레르...1999년엔 파산 위기 겪어


스포츠웨어에 머물러있던 몽클레르가 시티웨어로 영역을 확장하게 된 건 1980년 몽클레르에 합류한 디자이너 샹탈 토마스 덕분이다. 그녀는 몽클레르에서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패딩 점퍼는 강렬한 컬러감과 광택감, 스티치 자수의 디자인을 자랑했고 모피로 장식되거나 새틴 소재가 사용되기도 했다. 또 패딩 점퍼의 일반적인 여밈 방식인 지퍼에서 벗어나 버튼으로 교체했다.

디자이너 샹탈 토마스의 모습 / 출처 위키피디아


참신한 디자인의 패딩 점퍼는 상류층과 이들을 선망하는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아웃도어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착용할 수 있는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중반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선 젊은 층 사이에서 '파니나리(Paninari, 1980년대에 햄버거 숍에 많이 모이는 멋쟁이 젊은이들에게 붙여진 명칭)'붐이 일며 몽클레르 제품이 유행을 타기도 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몽클레르에게도 1980년대 후반부터 시련이 찾아왔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스포츠 브랜드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몽클레르는 '한물 간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1992년엔 이탈리아 기업 페퍼 컴퍼니(Pepper Company)에 인수됐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몽클레르가 이탈리아 브랜드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페퍼 컴퍼니의 인수 후 이탈리아 럭셔리 시장을 공략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한물 간 브랜드 이미지는 되돌리기 어려웠다. 인기가 떨어지니 자연스레 매출도 감소했고 지속되는 판매량 감소에 생산라인까지 멈추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락세가 이어져 1999년엔 파산 위기까지 맞았다.


명품 전략으로 망해가던 몽클레르 부활시킨 레모 루피니


그러나 경영난에 허덕이던 몽클레르 앞에 영웅처럼 레모 루피니가 나타났다. 루피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사업가로서 1999년 몽클레르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던 핀파트(Fin.Part S.p.A., 페퍼 컴퍼니의 바뀐 사명)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다. 몽클레르가 파산을 코 앞에 뒀을 때다.

레모 루피니 몽클레르 CEO의 모습 / 출처 pinterest


'몽클레르 되살리기'라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은 루피니는 몽클레르 합류 후 본격적인 리포지셔닝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2000년 몽클레르의 첫 봄/여름 컬렉션을 출시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컬렉션을 출시하는 것, 특히 따뜻한 시기인 봄/여름 컬렉션을 출시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다. 2001년엔 유명 스키 리조트가 위치한 스위스의 생 모리츠(Saint Moritz)를 시작으로 샤모니(Chamonix), 그슈타드(Gstaad) 등 세계 유명 스키 리조트에 직영점을 오픈했다.


루피니의 사업 수완을 신뢰한 경영진들은 그에게 몽클레르 인수를 제안한다. 평소 몽클레르의 역사와 기술력에 매력을 느끼던 그는 결국 2003년 몽클레르를 인수해 CEO 자리에 올랐다. 그는 몽클레르를 인수하며 "10대 시절 몽클레르 재킷을 처음 입었을 때부터 몽클레르의 역사와 기술력에 매료됐다. 브랜드의 잠재력을 보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출처 몽클레르 공식 인스타그램


그는 인수 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제품군을 늘리는 대신 '구스다운 재킷'에 집중했다. 세계 최초로 구스다운 재킷을 출시한만큼 그것이 '몽클레르의 DNA'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수기인 여름철 실적을 올리고자 티셔츠와 반바지 위주의 제품을 출시한다면 몽클레르의 DNA가 망가져 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또 그는 '모든 제품이 뛰어나다'라는 인식보다는 '딴 건 몰라도 재킷 하나는 확실하다'는 인식이 나을 것이라 봤다.


대신 다운 재킷의 확장성을 높이고자 노력했다. 루피니 회장은 겨울철 다운 재킷의 높은 활용도에 비해 확장성이 거의 없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한 예로, 모직코트는 정장과 캐주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착용할 수 있는 반면 다운 재킷은 주로 등산할 때 아니면 입지 않았다. 이런 점에 주목한 그는 등산가, 스키 선수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다운 재킷을 일반인들이 코트 대신 입을 수 있는 고급 재킷으로 만들겠다고 마음 먹었다.


마침 당시 몽클레르에 합류한 꼼 데 가르송의 수석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와 발렌시아가의 수석 디자이너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루피니에게 '명품 다운 재킷'을 만들자고 제안해왔다. 그는 디자인과 품질만 받쳐준다면 다운 재킷이 명품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재킷의 무게를 줄이고 디자인을 차별화하는 데 힘썼다. 고급 모피로 모자와 재킷의 앞섶을 장식했고 양면으로 입을 수 있는 리버서블(reversible) 재킷을 고안했다.


몽클레르가 펜디와 협업해 출시한 가방(좌)과 꼼데가르송과 협업해 출시한 다운 재킷(우) / 출처 pinterest


여타 아웃도어 브랜드들과는 다르게 재킷의 핏과 소재에 중점을 둔 몽클레르는 보온성이 뛰어나면서도 날씬해 보일 수 있는 여성용 재킷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또 펜디, 꼼 데 가르송, 리모와를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색다른 신제품들을 선보였다.


몽클레르가 이렇게 명품 이미지를 쌓아가던 와중 '진짜 명품'으로 거듭나게 된 건 디자이너 톰 브라운과의 협업을 통해 2009년 런칭한 남성복 컬렉션 몽클레어 감므 블루(Moncler Gamme Blue)덕이 크다.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톰 브라운의 영입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고 몽클레르 감므 블루의 캔버스 소재 다운 재킷은 상징적인 제품이 됐다.


몽클레르 감므 블루 컬렉션(좌)과 디자이너 톰 브라운의 모습(우) / 출처 pinterest


이러한 루피니의 '명품 전략'을 통해 몽클레르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루피니가 3500만 유로(한화 약 452억 원)에 인수했던 몽클레르의 현재 기업 가치는 94억 유로(한화 약 12조 1300억 원)에 달한다. 약 15년만에 가치가 25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엔 전 세계 약 190여 개 매장에서 16억 2000만 달러(한화 약 1조 9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몽클레르는 리더가 브랜드의 DNA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를 뚝심있게 밀고 나간 덕분에 부활에 성공한 사례다. 이는 명품 전략을 떠나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의 공통적인 비결일지도 모른다. 장수 브랜드가 드문 국내 패션업계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인터비즈 임현석 신혜원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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