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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비즈 Jun 28. 2020

노인 가족을 돌보는 직원을 챙기려면?

고령화사회 속 '기업 내 돌봄문화' 실태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직장인 A씨는 몇 년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A씨의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은 것. 초반엔 A씨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돌보았지만 이마저도 어머니까지 암 진단을 받은 수에는 불가능해졌다. 회사의 눈치를 보며 쌓아둔 연차휴가를 소진하는 방식으로 버텼지만 아버지의 치매와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이마저도 불가능해졌다. A씨는 대안으로 회사에 원격근무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 프리랜서로 근근이 일을 했지만 기존 월급의 1/4 정도밖에 벌 수 없었다.


초고령화 사회가 다가오면서 노인 인구를 봉양하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오는 2025년이 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0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인구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 세대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기업들은 아직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듯하다. 향후 많은 직장인들이 A씨처럼 부모 부양 문제로 직장생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관련 제도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기업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HBR 3-4월호 기사에 나온 미국의 사례를 통해 반추해 보자. ☞HBR 원문보기


향후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거리는 노인 수발 병행?


세대를 막론하고 늙어가는 부모에 대한 병수발은 가족의 몫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부모의 병간호를 위해 소득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아예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의 경우 부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은 직장에 계속 다녔을 때 받을 수 있는 임금, 사회보장연금, 개인연금 등을 포함한 32만 4044달러(약 3억 8000만 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간접적인 노동력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노인 수발이라는 부담은 고용주가 아닌 노동자가 짊어졌다. 사리타 굽타(Saritas Gupta) HBR 케어링 어크로스 제너레이션스 공동소장에 따르면 가족을 돌보는 직장인의 68%가 출근 지연, 조기 퇴근, 휴가, 전직, 승진 거절, 근무시간 단축 등의 불가피한 업무 조정을 겪어야만 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일과 노인 수발의 병행이 향후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주들은 미래의 수많은 피고용자가 이러한 짐을 짊어진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노련하고 재능 있는 직원들의 니즈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가중된 가족 돌봄 부담에 선진적으로 대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한다면 향후에는 다른 기업에 인재를 빼앗길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기업의 역할은 근무 유연성을 높이고 가족 돌봄 복지를 사용하는 데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여 능력 있는 인재의 이탈을 막는 것이다.


돌봄 지원 정책 활성화 기업에 장기적으로 도움


직원들에게 폭넓은 돌봄 지원을 제공하는 정책이 많은 비용이 드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수익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미국은퇴자협회와 리액트의 공동 보고서를 살펴보면 돌봄 지원 정책의 투자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연근무제에 투자한 1달러당 기업이 거둘 수 있는 수익은 1.70~4.34달러고 재택근무에 투자한 1달러당 투자 수익은 2.46~4.45달러다. 회사의 아낌없는 지원에 직원들의 이직 의향은 10% 낮아졌고, 가족 친화적 정책은 직원 생산성을 최대 2.4% 높였다.


돌봄 지원 정책은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유연근무제, 노인 수발 지원, 유급 육아·간호 휴가가 직장 선택에 영향을 준다고 응답한 구직자가 33%에 달했다. 전반적으로 유연근무제는 결근율을 50% 낮추고, 직원 보유율을 30% 높이고, 인재 채용률을 20% 증가시킨다. 연구결과 이런 정책을 마련한 기업은 순수추천고객지수가 상당히 높은 직장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돌봄 지원을 제공하는 기업은 직원들이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추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기업이 직원의 가족 돌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면..


기업 내의 돌봄 문화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업은 피고용자들이 늘어나는 돌봄 노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기업이 새로운 돌봄 문화 정착을 잘 수행하도록 도울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융통성 있는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누구나 가족을 돌보기 위한 휴가를 내도 된다는 인식을 자리 잡게 한다면,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돌봄 노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가장 앞서가나는 모습을 보이는 기업으로 미국 패션 브랜드 '엘엘빈(L.L Bean)'을 들 수 있다. 엘엘빈은 다양한 형태로 직원들에게 근무 유연성을 제공하고 원격근무도 가능하다. 휴가와 관련해서는, 사내 휴가 제도에 미국 법에 따른 휴가까지 합치면 최장 6개월간 가족 돌봄을 위해 무급휴가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가족 돌봄을 하는데 필요한 자원이 있거나,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 서비스도 지원한다.


엘엘빈 로고(좌) 에모리대학교(우)/ 출처 엘엘빈, 에모리대학 공식 SNS


미국 유명 사립대 중 하나인 에모리 대학(Emory University) 또한 돌봄 문화 구축에 앞장선다. 에모리 대학은 가족 병가 정책을 확대하고 고용주가 후원하는 성인 돌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활성화한다. 또한 갑자기 가족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할 때 백업 홈 케어를 제공하고, 상담 및 워크숍을 통해 돌봄 문화 이슈에 대한 인식을 고취한다. 그리고 일-생활 양립 전담 고문을 고용하여 직원들에게 일대일 코칭 및 지원을 제공한다.


둘째, 가족 돌봄의 니즈와 돌봄 책임을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아직까지도 직장에서 병수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문화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사에게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입사원 때부터 직원들이 언제든 돌봄 제공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내 교육, 전문가 초빙 강연 등이 답이 될 수 있다. 특히 남성, 젊은 직원, 고위 관리자처럼 흔히 돌봄 제공자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국내 돌봄 노동은 어떠한가


한국은 정책적으로 가족 돌봄 휴직 제도를 권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가족 돌봄 휴직 제도는 가족(부모, 자녀,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이 질병, 사고, 노령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휴직 제도로 정의된다. 연 90일 사용이 가능하며 1회 사용 시 최소 30일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가족 돌봄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들 중 특히 IT기업들이 돌봄 노동을 장려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온라인 모바일 게임업체인 NHN엔터테인먼트는 '뉴퍼플타임제'를 운영한다. 이 제도는 하루 8시간 근무를 4~10시간으로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해준다. 대신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를 '코어타임'으로 정해 최대한 근무에 집중하도록 한다. 덕분에 수발해야 하는 부모님이 있는 직원들은 시간관리를 유연하게 할 수 있고 긴급한 상황에도 훨씬 용이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 근무 제도에 대한 직원 만족도는 89%에 이른다고 한다.


출처 NHN 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


넥슨은 직원이 아픈 가족을 돌보고자 휴직을 하면 생활 안정자금 450만 원을 지원하는 '가족돌봄휴직'시스템을 운영한다. 휴직이 어려운 경우라면 최저 주 20시간 근무를 조건으로 업무 시간을 융통성 있게 조정할 수 있게 했다. 또한 3년차, 6년차, 9년차 직원에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로 최대 20일의 휴가와 함께 최대 500만원의 휴가비도 지급하고 있다.


출처 넥슨 공식 홈페이지(좌) /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핑크빈 넥슨 공식 SNS(우)


고령화로 인한 돌봄 문제는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정책뿐만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도 사내 제도를 통해 직원들이 가족 돌봄 노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국내 기업들의 관심사는 노년층의 돌봄 문제보다는 출산과 육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에 대비할 수 있는 생산적인 논쟁이 필요할 때다.



출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HBR 2019년 3~4월호

필자 사리타 굽타, 아이-젠 푸


인터비즈 인터비즈 강명지, 장재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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