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역사

1화 : 조선의 여성③

by 노란스머프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았다. 제1화의 도입부까지도 오지 못했지만 벌써 네 번째 글이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길게 잡설을 늘어놓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이쯤에서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다. 본 필자는 단순함을 증오한다. 간단하고 알기 쉽게 전하는 게 출판의 만고불변의 진리인 냥 떠드는 사람들의 말에 반 정도만 수긍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미취학 어린이도 아닌데, 모든 일을 쉽고 알기 쉽게 전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데에서 오해가 생기고 지식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퍼진다. 우리는 자연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보다 해석이 중요한 사회과학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를 간단히 설명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차라리 연표를 가져다 놓고 이때 뭐 했고, 저때 뭐했고... 이렇게 적어 놓는 게 가장 간단하고 명료하게 이해를 돕는 방식일 것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모 학습 만화 위인전 표지

더 가관은 간단하고 명료하면서도 재밌어야 한단다. 차라리 어린이 위인전이나 동화책을 읽으면 좋으련만. 세상이 복잡하고 대부분의 시간동안 재미가 없게 흘러가는데 어떻게 간단하고 재밌게 이해한단 말인가?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 말을 들으면 필자는 화가 솟구친다. 간단히 말해 볼까? 연산군은 왜 그렇게 악행을 했냐고? 엄마가 죽어서. 그럼 나중에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야, 노란스머프가 역사 좀 공부했잖아. 너 걔랑 얘기해 봤다며? 연산군은 왜 그랬데? 물어봤어?”


“응. 엄마가 죽어서래.”


으... 글을 쓰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 - 물론 길게 말한다고 해서 그 대답이 크게 달라질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 역사는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간단히 말해선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타고난 ‘설명충’인 필자가 역사를 설명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언가 간단한 사실만을 정리해 놓으려면 아예 역사에 관심을 끊었으면 좋겠다. 아니 꼭 역사가 아니더라도 인간사에 적용되는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제발 간단히 이해하지는 말아 달라고 모든 이에게 부탁하고 싶다. 간단한 이야기가 좋다면 동화책이나 시를 좀 읽길 추천한다. 물론 필자가 간단하게 글을 쓰지 못하는 절름발이 작가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해 볼까? - 괜히 흥분... - 조선 전기는 세조를 도와 재창업의 발판을 마련한 공신들로 구성된 훈구파勳舊派와 조광조의 개혁 때 대거 정계로 진출하는 ‘숲속의 선비’, 즉 사림파士林派가 대립을 하는 형태로 권력의 대립이 있었다면 조선 후기에는 결국 사림파가 득세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벌였다. 이렇게 붕당정치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도 파벌싸움은 있었지만 용어가 없었을 뿐이다. 이러한 파벌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 어느 지역, 어느 집단을 막론하고 모두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받았던 역사교육을 바탕으로 “우리는 파벌을 짓기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경우도 많다.


파벌싸움은 시대에 따라 ‘온건’과 ‘급진’으로 불리기도 하고, ‘보수’와 ‘진보’로 불리기도 한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는 파벌싸움이지만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현대 민주주의와 흡사한 붕당정치가 200여 년간 지속됐다. 탕평인사를 지향했던 영・정조시대를 지나 붕당정치가 흐려지고 노론의 일당 독재체제로 굳어진 것이 세도정치다. 우리 역사에서 붕당정치는 많은 경우 민중들에게 해악을 끼친 것처럼 여겨지는데, 그 다음 붕당정치를 타파하고 생긴 세도정치는 더 나쁘다고 배운다. 이 말의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은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만, 배운 대로 답을 쓰지 않으면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터득한 우리들은 그저 배운 대로 외워왔다.


대한민국 국회 로고

- 붕당정치 이야기도 나중에 더 해보자. - 그런데 갑자기 여성을 이야기하다가 왜 붕당정치 얘기를 꺼냈냐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 이유는 붕당정치의 종말이 곧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민심을 얻어야 정치를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관료들이 견제에서 자유롭게 됐다. 모두가 한통속이고 한통속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을 쳤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눈치싸움은 있을 수 있었지만 민심이 그들을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한마디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또 성리학을 깊게 파고들어 진리를 탐구하기보다는 현실세계의 자리와 권세를 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우리 속된 말 중에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라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탐관오리가 되려고 관리가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잘해보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먹고 잘사는데, 그리고 나도 얼마든지 그리 살 수 있는데, 양심이라는 족쇄 때문에 그 좋은 일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냐는 유혹을 뿌리치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이지. 권력자들의 비리나 비행을 욕하지만 사실 권력이 없어서 문제지, 있기만 하다면 쓰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는 말이다. 게다가 법도에 크게 어긋남이 없으면서도, 스스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합리화까지 가능하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현대에도 ‘탈세’가 아니고 ‘절세’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가?


조선 여성들의 삶은 세도정치가 정착(?)됨과 함께 기구해진다. 어리고 예쁜 처첩들이 가득한 집안이며, 어느 가문 출신의 인사라면 자질과 상관없이 중책을 맡게 되는 사회구조 등은 남자들을 못난 가부장으로 만들기에 너무나 적합한 환경이었다. 부인에 대한 존중은 옅어지고, 집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축소되거나 분할됐다. 궁중의 내명부에서 지키도록 한 규율이 사대부 권세가의 집안에서 규율이 되고 결국 여성은 여성끼리만 견제하게 되는 비극에 빠진다. 어설프게 퍼진 성리학의 윤리는 여성을 옥죄는데 특효약으로 쓰였으며, 그것을 감시하는 일은 여성 자신이었다. 두 번의 대란을 겪고 나서 조금씩 비틀어지던 인식이 붕당정치의 종말과 함께 터져버리게 됐다.

음... 오늘은 꽤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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