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를 잃고 규칙만 남은 근본주의는 반드시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피해는 사회적으로 발언권이 가장 적은 약자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선후기,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순조 이후 약 60여 년간 차곡차곡 쌓인 병폐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것이 여성이었다. 여성의 발언권은 임진왜란 이후 차차 낮아지면서 남녀 성비와 상관없이 의례히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생겨났다. 일처다부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일부다처는 허용되는 구조 속에서 더 중요한 것이 남성이라는 편리하고 당연한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진 상식이 됐다.
아틀라스 한국사 고조선의 8조법 서술부분 중
하지만 역사에는 어느 날 갑자기 없던 것이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성을 억압할만한 근거는 조선전기, 아니 그 이전 고려시대에도, 심지어 단군왕검이 세웠다는 고조선 시대에도 있었다. 일례로 고조선의 8조법에도 음란한 여성을 가혹한 형벌을 통해 사형시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간음을 저지르는 것은 분명 상대가 있을 테지만 당시 법은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던 것이다. – 8조법이 실제로 고조선의 법이었는지, 후대에서 개작한 것인지는 논란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 이렇게 남성보다 권력구조상 하위에 있다는 이유로, 심지어 물리력이 약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여성은 사회적 약자 자리에 서기 일쑤였다. 역사 속에서 여성이 약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 달리 해석하자면 남성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를 야만적으로 만든다. 이렇게 사회가 폭압적일수록 여성의 발언권은 줄어든다. 큰 전쟁을 겪은 이후 틀어진 방향은, 조선의 마지막 100여 년에 이르러 고도로 진화했다. 여성이 스스로를 억압하는 규칙을 만들고, 규칙을 어기는 것과 여성의 생명을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절개節槪라는 개념은 원래 성리학을 배운 선비에게 중요한 덕목이었는데, -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들이 고려의 왕을 죽이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도를 무너뜨리며 세워진 것이 조선이라는 것은 함정. - 이것이 이 시기에 이르러 여성에게도 접목되면서 정절이라는 개념을 가져다 붙이게 된 것이다.
이로써 여성의 재혼이 불가해지고, 소박을 맞고 쫓겨 온 여인은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으며,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것이 여성들이 지켜야 할 정절의 끝판왕이 된다. 또 강간을 당해 순결을 잃거나 남편에 대한 도를 지키지 못한 여성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된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조선 건국부터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성의 재혼은 일상적인 것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제약이 심해지면서 – 모든 여성들을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게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에 – 민간에서는 보쌈이라는 형태로 과부의 재혼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많은 경우의 보쌈은 상호 교감이 있은 후에 이루어졌고, 누가, 언제 자신을 보쌈해 갈지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쌈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인신매매와 같이 보일 수 있지만, 수절이 아니면 죽음을 요구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에게 씌워지는 굴레를 벗겨주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했다. 여러모로 현대의 인신매매와는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물론 본인도 모르게 진행되는 폭압적인 보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
UN권고 관련 보도 중 캡처(SBS 8뉴스)
몇 해 전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성폭력을 당하는 피해자에게 너무 강하게 저항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내용이 이슈를 끈 적이 있었다. 관련 키워드를 넣어 검색을 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어서 정확한 보도 시점과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 검색을 제대로 못해서 죄송;;; – 여하튼, 이런 지침의 취지는 너무 강하게 저항할 경우 피해자가 생명을 잃거나 회복하지 못할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 지침은 단계적인 대응요령으로 단호한 거부의사와 적극적 회피 노력을 한 다음의 행동지침이다. 이미 범인이 강간을 하려고 마음먹고 흉기를 휘두르거나 힘으로 여성을 제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와중에서 피해자가 할 행동지침이라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 여성은 강하게 저항하면 할수록 큰 외상을 입을 확률도 커진다. 따라서 당시 필자는 이와 같은 지침은 생존을 위해 취해야 할 당연한 태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지침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됐다.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강간범의 입장으로 발언했다. 여성이 저항하지 않으면 범행을 저지르기 쉬울 것이고, 후에 법정에서도 범인이 여성의 거부 의사가 분명치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이런 문제를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 현행법에서 강간의 기준에 ‘강한 저항’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거부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는 남자를 막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법에서 감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형법 제297조 강간죄 구성 요건’을 수정하라고 권고했지만, 여전히 수정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성은 목숨을 잃을 것인가 정절을 잃을 것인가의 선택에서 당연히 목숨을 지키는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를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여성의 정절이 어째서 생명보다 중요한지 반문하고 싶다. 만약 반대로 남성이 여성에게 강간을 당한다면 목숨을 걸고 반항하라고 조언할 것인가?
강간죄 구성 요건 중 '폭력 또는 협박' 문구를 '피해자 자발적 동의없이'로 수정하라는 권고내용, 이 보도에서는 피해자의 강한 저항에 대해서도 언급했다.(SBS 8시 뉴스)
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와 같은 우리 법을 ‘은장도법’이라며 비아냥대기도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선의 여성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은장도는 여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지니는 것이지 목숨을 끊기 위해 지니는 것이 아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은장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은 조선시대 내내 단 한 명도 확인된 바 없다. 그렇다면 은장도가 왜 정절을 지키는 자살도구로 인식됐을까? 이유는 역시 일본에 있다. 일본에서 자결은 숭고한 행위였다. 주군을 잃고 살아남은 그 수하들은 스스로 배를 갈라 자결했다. 이것이 여성에게도 전이되어 남편을 잃은 부인이 스스로 자결해 정절을 지키는 것이 정숙한 여성의 덕목으로 회자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그런 여성은 단지 남성들의 이상향에 있을 뿐 실제로는 우리나라보다도 성적으로 훨씬 개방된 사회가 당시 일본이었다.
모든 과오를 죽음으로 해결하는 일본의 문화가 조선의 여성들에게 투영된 것이 바로 은장도이고, 실제로 그것은 조선시대 내내 오히려 왜구들의 사타구니를 찌르는데 더 많이 사용됐을 것이다.
오늘도 역시 대문에 조선 왕비의 혼례복을 걸어둔 채, 원래 본론으로 시작하려던 ‘조선의 왕비’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