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조선의 여성⑥
이렇게나 오랫동안 1화를 써도 되는지 스스로 의문이 든다. 과연 이 1화는 언제 끝나게 될 것인가?
우연히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난 후부터 일이 좀 많아졌다. 그래서 반대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부디 1화를 빨리 끝마치고 다른 이야기를 좀 더 하는 시간이 왔으면 한다.
은근히 성격이 급한 탓에 한 가지 분야를 지속해서 파고드는 일을 즐기지는 않는다. 물론 큰 틀에서 그 일을 계속하는 건 곧잘 하지만, 한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꽤 짧은 편이다. 조선의 여성을 주제로 잡고 처음 글을 쓸 때 가졌던 그 열정은 이미 반은 식어 버렸다.

그렇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이고,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은 것 또한 사실이다.
조선의 왕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고는 중간에 시간이 한참 떠 있었다. 그러니 이제 하려던 이야기를 얼른 꺼내 놔야겠다. 그래야 앞으로 있을 더 재밌는 이야기를 더 빨리 꺼낼 수 있을 테니까.
역사는 참 재밌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지겹다, 관심 없다, 딱딱하다 그러는지 참...
어쨌든.
‘태정태세문단세’. 이 말은 한 단어가 아닌데도 한 단어처럼 쓰는 경우가 많고, 역사를 단지 외우는 것이란 말을 할 때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태정태세문단세, 이딴 거 외워서 뭐하냐고.” 이런 식으로.
그러나 이 말은 조선 초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적어도 시간순으로 나열된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이 말처럼 외우고 있는 지식이 있으면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수월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외워보자.
“신, 정, 원, 소, 현, 정, 정”
우리가 ‘태정태세문단세’처럼 조선 초기 왕비들을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짝이 딱 들어맞는다. 이 말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 바로 다음, 다음 왕인 성종의 정실부인이 셋이라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가 ‘태정태세문단세’는 기본으로 외우지만 ‘예성연중인명선’은 좀 더 적게 외우고, ‘광인효현숙경영’은 그보다 적게 알고 있으며, ‘정순헌철고순’은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신정원소헌정정’을 정도는 기본으로 좀 머리에 두자. 그럼 그 다음 얘기가 좀 수월해지기도 하고 이해가 빠를 것이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여성의 평균 수명은 남자보다 높았다. 특히 왕의 평균 수명은 왕비의 수명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왕이 죽은 후에도 왕비들은 살아남아서 왕실의 큰 어른이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래서 왕과 왕비의 시대를 정확히 붙여서 생각하면 혼동이 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초기에는 그런 혼동이 좀 덜하다. 왜냐면 딱딱 맞게 죽어줬으니까.
뭔가 좀 잔인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계속 이어가 보겠다.
조선 초기 왕의 마지막이 세조인 것처럼, 조선 초기 왕비의 마지막은 정희왕후 즉 세조의 정실부인이다. 조선 초기 왕후 중 그녀를 제외한 다른 왕후들은 왕보다 먼저 죽거나 왕과 유사한 시기에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조선 전기는 헷갈릴 일이 거의 없다. 세조가 승하하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왕비들의 삶이 어땠는지 살펴보자.
궁중의 법도가 완전히 정립된 것은 조선 초기를 좀 지나서 저 유명한 인수대비 때라고 할 수 있다. 궁중의 법도는 크게 왕의 법도와 왕비의 법도로 나눌 수 있는데, 왕의 법도는 조선 초기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립됐지만 왕비의 법도는 조선 초가 끝날 때까지 확립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태조는 조선을 건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왕실을 떠나서 왕비와 함께 함흥으로 갔고, 뒤를 이은 정조는 불과 2년 만에 동생 방원에게 왕위를 내주었다. 또 왕위를 이어받은 태종은 재임기간 내내 외척과 공신들을 숙청하느라 바빴고, 세종 대에 들어서서야 왕권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그간 왕비의 법도라는 것을 제대로 신경 쓸 만한 여력이 없었다.
세종 대의 왕비 소헌왕후는 무려 10명의 자식을 나았고, 10명의 공식 후궁들을 관리해야 했으며, 그 아래 다른 배에서 나온 자식들도 관리해야 했다. 이것은 도저히 기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소헌왕후는 자신이 어떻게 내명부와 외명부를 관리했는지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여성은 글을 익히는 경우가 적었고, 그것은 왕비라고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 중 하나도 그런 아내의 고충을 가슴 아파했기 때문이라는 ‘썰’도 있다.
소헌왕후는 후덕하기로 소문난 왕비여서(절대 뚱뚱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덕이 두텁다는 뜻) 그녀의 재임기(왕과 왕비는 나라의 절대지존이었기 때문에 왕과 마찬가지로 왕후의 역할을 하는 동안을 재임기라 표현했다.)에는 큰 문제가 있더라도 어찌어찌 꾸려나갈 수 있었다. 아들 문종이 세자시절 여성에 관심이 없어 세자빈이 자꾸 당시 기준으로 괴이한 행동(?)을 벌이는 바람에 두 번 교체 됐는데 이 일을 주도한 것이 소헌왕후였다. 세자빈을 교체한다는 것 그것도 괴이한 행동 때문에 교체되었다는 것은 궁중이 뒤집어질 대형사고였다. 게다가 그런 일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일어났다니. 심지어 세 번째 세자빈은 단종을 낳자마자 죽는다. 문종은 왕이 된 후에도 왕후를 들이지 않고 단종을 낳고 죽은 세자빈 권씨를 현덕왕후로 칭했다. 그냥 아무 양반가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집안에 풍파가 휘몰아칠 일이지만, 소헌왕후는 이 모든 풍파를 슬기롭게 정리했다.
그렇게 소헌왕후가 만들어 놓은 왕후의 품격이 생기기 전까지 왕비는 사대부 집안의 아내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규율을 지켰다. 그도 그럴 것이 태조의 아내 신덕왕후는 원래 왕의 아내로 시작하지 않았고, 정종의 아내 정안왕후 역시 사가에서 혼인한 사이였으며, 태종의 아내 원경왕후는 태종이 태종일 수 있게 만든 장본인으로 역시 사가에서 혼인했다. 뒤를 이은 소헌왕후 역시 세자빈 생활조차 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왕후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 누구 하나 왕후의 정규코스(?)를 밟은 사람이 없었다. 문종의 아내는 왕후가 되기도 전에 승하했다.
단종의 아내 정순왕후는 너무 어렸고, 이제 남은 것은 정희왕후, 바로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이 된 세조의 아내였다. 정희왕후는 원경왕후처럼 자신의 남편을 왕으로 만든 강인한 여인으로 철의 여인이란 호칭을 얻어도 충분한 사람이었으나 뒤에 인수대비나 문정왕후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그 타이틀은 가지지 못했다. 정희왕후는 우리나라 최초의 왕비 섭정을 감행한 여장부였고, 그녀가 섭정하는 시기에는 나라에 큰 변고가 없이 편안했다.
너무 길어졌다. 갑자기 맥락도 없이 끝내야겠다. 여기까지가 대강의 조선 초 왕비에 대한 이야기다. 다음 시간에는 조선 초의 왕비들의 행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겠다.
왕비의 이야기는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