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 1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언제부터 교류하며 살았을까?
그 만남의 자취를 기록과 문화 유산을 통해 찾아 떠나보자.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어릴 적 울보였던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과 결혼하여, 그를 훌륭한 장군으로 성장시켜 고구려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설화이다. 이 유명한 이야기는 <삼국사기> 온달전에 기록된 역사에 근거한 이야기로, 온달은 실제로 고구려 평원왕 재위 기간인 6세기 후반에 존재한 장군이다. 안타깝게도 신라와의 전쟁 중에 목숨을 잃지만 그 용맹함에 고구려 사람들은 온달장군을 영웅으로 추앙했다. 이 이야기는 21년에 <달이 뜨는 강>이라는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아름다운 스토리가 숨어있는 우리의 역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온달 장군이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출신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연세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의 지배선 교수는 한 논문에서 온(溫)이라는 성은 서역에서 온 것인데, 중국 역사서를 보면 ‘소그디아는 강국(康國)이라 불리우며, 그 왕족은 온(溫)씨이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들었다. 실제 소그디아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5~8세기에 융성했던 나라이다. 민족은 투르크 또는 이란계로 조로아스터교를 믿었고, 무예에 능하고 재물에 밝아 실크로드 중개무역을 통해 막강한 부를 축척한 고대 국가이다. 이러한 중국 사료를 근거로 온달이 소그디아 출신의 서역인일 가능성을 제기한 것인데, <삼국사기>의 온달전에 "온달은 용모가 못생겨 우스꽝스러웠으나 마음은 순수하였다." 라는 대목을 통해 아시아계가 아닌 서역계통 사람의 낯선 용모를 우습다고 표현하였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아직은 정확한 근거가 없는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지만 당시 실크로드를 지배하며 유럽과 동아시아를 자유롭게 오갔던 소그디아 사람이 고구려 땅에 살았다는 것은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온달이 사마르칸트 출신이라 단정지을 순 없지만, 이 이야기는 우즈벡사람이 한국에서 살았다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알고 지냈다는 추정을 해볼 수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라 승려가 고대 우즈벡의 여러 도시를 방문한 기록도 있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것은 신라 승려 혜초가 인도에 불법을 구하기 위해 실크로드를 지나며 기록한 여행기이다. 여기에는 혜초가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속한 도시들을 방문한 기록이 있다. 혜초는 바다길을 통해 인도로 들어가서 육로를 통해 신라로 돌아왔는데, 그러면서 실크로드에 있는 서역의 국가들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혜초는 강국(康國 : 사마르칸트), 안국(安國 :부하라), 석나국(石騾國 : 타슈켄트) 등을 방문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으며, 나라가 작고 군사도 많지 않다는 등의 기록을 해두었다. 약식기록이라 서역국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와있지는 않지만, 신라 사람이 직접 고대 우즈벡을 방문했다 것을 알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라 하겠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아프로시압 박물관에는 한쪽면이 1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이 벽화는 1965년 사마르칸트 동북쪽에 위치한 아프라시압 도성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7세기 번영했던 소그디아의 왕궁에 설치되었기에 '아프로시압 궁전벽화'라고도 부른다.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던 7세기 소그드 시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 더없이 소중한 자료이다.
특히 이 궁전벽화가 흥미로운 것은 서쪽 벽에 고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서벽에는 7세기 당시 소그디아의 왕인 바르후만을 접견하기 위해 많은 나라에서 온 사절단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 제일 오른쪽 끝자락에 두 사람을 고대 한국인으로 추정한다.
현재 벽화는 세월로 인해 박락과 탈색으로 형체가 많이 희미해졌지만, 초기 모습을 근거로 복원한 벽화를 보면 두 사람이 깃털이 꽂힌 모자를 쓰고 서 있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깃털모양의 모자를 일명 '조우관'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형식의 모자가 바로 고구려인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나 중국에 남아있는 그림에도 조우관을 쓴 고구려인의 모습이 남아있어 이를 통해 7세기 고구려의 사신(외교관)이 사마르칸트에 방문하였고 서로 교류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왕이 머물던 궁전벽화에 고구려인이 표현될 정도였다면 그 관계는 매우 친밀했을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고대 우즈벡인이 왔었다는 증거가 있을까?
경주에는 괘릉이라 불리우는 무덤이 있다. 현재는 원성왕릉으로 추정하는 신라 왕의 무덤이다. 이 릉 앞에는 무인상으로 불리우는 이국적인 두 개의 석상이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이질적이다. 부리부리하고 큰 눈과 풍성한 수염 그리고 입은 옷에서부터 동양적인 이미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흔히 이 석상을 서역인상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7-8세기에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문화유산을 살펴보던 중 중국에서 출토된 소그드인 도용과 용모와 매우 흡사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은 당나라 시대였는데, 실크로드를 통한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이 번성하면서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소그드인들은 중개무역을 통해 큰 번영을 누리게 된다. 소그드인의 춤이나 복식 등 문화가 당나라에서 유행할 정도로 소그드인들은 당시 인플루언서나 다름없었다. 현재 중국에 소그드인 관련된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또한 괘릉의 무인상의 뒷면 허리부분에 주머니가 보이는데, 이것 또한 중개무역에 능했던 소그드인이 차고 다니돈 돈주머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이 상이 왜 신라의 왕릉에 무인상으로서 배치되었을까? 신라장수가 아닌 서역인이 왕릉을 지키게 되었을까? 아직 자료가 미흡하여 그 이유에 대해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소그드인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에서 높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고대 우즈벡의 조상인 소그드인과 신라 사람들이 서로를 아는 것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이렇게 고구려의 온달, 신라의 승려 혜초, 사마르칸트에 방문한 고구려인과 신라 왕릉에 세워진 서역인상 등의 예를 통해 1,300년전에 이미 고대 한국과 우즈벡은 서로를 알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