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한국남자들이 국제결혼을 위해 신부를 찾아 떠난다는 장모님의 나라? 가끔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과 맞붙는 중앙아시아의 축구강국?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 예전에 소비에트 연방이었다가 독립한 스탄국가들 중 하나?
우즈베키스탄을 아느냐는 질문에 보통 이런 정도의 대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정도의 대답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한국사람들은 우즈벡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한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막상 나라의 정확한 위치나 수도의 이름,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우즈벡의 수도가 '타슈켄트'라 말하면 그 생소함에 손사레를 치고,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인 사마르칸트가 우즈벡에 있다고 말하면 다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실크로드는 익숙하지만 그게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것이었냐며 놀라움에 입이 다물지 못한다. 그만큼 우즈베키스탄은 우리에게 낯선 국가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미술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특히 고대 실크로드의 교류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 본적이 있는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과 우크라이나를 잘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다. 아내가 우즈베키스탄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을 때, 검색을 해보다가 내가 알고 있던 실크로드의 사마르칸트가 우즈벡에 위치한 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너무 놀라 소름까지 돋았더랬다.
이처럼 우리는 우즈베키스탄을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랍권 문화가 혼재된 도시 풍경,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 그리고 깨끗한 도시와 맑고 푸른 하늘...내 눈에 들어온 우즈벡의 첫인상이다. 그 중에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그들은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심지어 어설픈 한국말로 말을 거는 젊은이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처음엔 우리가 다른 외모를 지녔기에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이라 여겼고, 때때로 말을 걸때면 관광객을 이용하기 위한 불손한 접근으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경험한 기분나쁜 시선들과 접근 방식들에 익숙한 나는 우즈벡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외출을 할때면 긴장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러나 나의 섣부른 판단과 의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으로 바뀌었다.
어느 날, 공원에서 한 우즈벡 부부가 우리에게 사진을 함께 찍을 수 있냐며 물어봤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딸아이를 무척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우리 딸아이의 볼을 만지며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아닌가? 그 부부의 표정에서 난 이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뭔가 다른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마트에 갔는데, 점원이 나에게 한국사람이냐 물어보더니, 반갑게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짧은 대화를 이어갔는데, 점원은 자기가 한국을 좋아하고 그래서 한국어를 공부 중이며, 언젠가는 한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는데 뭔가 뿌듯하면서도 신기하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또 한 날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아주 유창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한국사람이세요?" 하며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한국에서 8년 정도 일하고 돌아와 타슈켄트에서 생활한다는 인상 좋은 우즈벡 아저씨였다.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우즈벡에서 집도 사고 자동차도 2대나 샀다며 자랑을 하신다. 나 역시 괜히 반가워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니, 아저씨가 택시비를 안받겠다는 것이다. 한국 덕분에 잘 살게 되어서 한국사람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며, 한사코 택시비를 받지 않고 사라진 아저씨. 어안이 벙벙한 채로 떠나는 택시를 바라보며 난 '우즈벡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구나.' 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 그것도 정착한 지 한달도 채 안되어 몇 번을 만나다보니, 뭔가 홀린 듯 신기했다. 많은 나라를 경험하였지만, 이런 대우는 처음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즈벡 사람들이 그저 친절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특별히 우리를 좋아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표가 머리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막연한 의심이 기분 좋은 의문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6개월쯤 살았을까 많은 우즈벡 사람들을 만나고, 우즈벡에 사는 한국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 의문이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우즈벡 사람들은 한국을 특별히 좋아하고, 한국에서 일하거나 공부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어를 공부해서 한국에서 몇년씩 일하고 돌아오면, 자기 나라에서 집도 사고 차도 사서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기에, 우즈벡 사람들은 온 가족이 힘을 합쳐 가족 중에 한 사람을 한국으로 보내 일하게 하는 것이 바람이자 목표라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한 집안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인 셈이다. 한국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소위 그들에게는 코리안 드림이라는게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가 히트를 치고, 케이팝이 전 세계를 강타한 문화 한류 그 이전부터 그들은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동경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 때문일까? 비행기로 날아가도 7시간 이상 걸리고 직선거리도 6,000km나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우즈벡이 왜 하필 한국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우즈벡 사람들을 자꾸 만날수록 왜 한국이지? 라는 질문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우즈벡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책과 자료들도 살펴보고 기사도 검색해보면서 그때그때 생기는 의문점들을 풀어나갔다. 그렇게 하다보니 우즈벡과 한국의 연결고리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 역시 이유가 있었어!" 의심이 의문으로 바뀌고, 그 의문이 해소되는 순간, 문득 미안한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서 올라왔다.
'아! 그들은 우리를 이렇게 잘 아는데, 우리는 그들을 너무 모르는구나.'
우즈베키스탄을 한국에 제대로 소개해보고 싶은 열정이 불타올랐다.
"그래! 우리를 좋아하는 우즈베키스탄을 한국에게 소개해보자."
"매력이 넘치는 나라로 한국사람들을 안내하자!!"
미안함 마음이 열정과 책임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나도 우즈베키스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나의 우즈벡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즈벡으로 여행가는 사람들과 우즈벡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우즈벡을 좀 더 깊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를, 그래서 그들과 어울려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펜을 든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우리를 사랑하는 우즈베키스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