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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Aug 08. 2023

큰일 났다. 휴대폰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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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망가졌다.

급하게 구입한 엄마 효도폰이 화면이 나가더니 놓아줄 때가 되었다. 처음에 엄마는 효도폰 디자인이 마음에 안드니마니 불편하니 마니 하다가 결국 4년을 사용했다.


4년 전 초가을이었다.

이모집에서 부탁한 물건을 받고 오는 길에 과일을 사러 갔다 오겠다는 엄마가 집으로 부랴부랴 뛰어왔다.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머리가 멍했다. 할부금도 남아있을뿐더러 엄마는 중요한 정보를 종이에 적어 지갑형 케이스에 넣고 다닌다 그래서 더욱 비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언제 마지막으로 폰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했다.


분실일까 도난일까. 대한민국은 꽁꽁 잠가둔 자전거는 어떻게든 훔쳐가도 아무렇게 널브러진 소지품은 절대 훔쳐가지 않는 엄복동의 나라 아닌가. 엄마 휴대폰은 효도폰으로 그다지 탐나는 좋은 물건은 아니기에 분명 누군가가 주워서 보관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작정 엄마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20번 30번 40번 통화를 계속 시도했다.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은 셰퍼드 개처럼 통화를 물고 늘어졌다. 받을 때까지 백번이고 천 번이고 할 테야. 지켜보던 아빠가 너무 전화하면 배터리가 닳아 꺼질 수 있으니 일단 전화를 잠시 멈추라 했다.


그래, 여긴 대한민국이야.

양심 있는 누군가가 주워서 보관을 하고 있을지 몰라. 폰을 주우신 선생님도 가족이 연락하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부끄럼이 많아서 전화를 받지 않는 거겠지. 전화대신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휴대폰 잠금을 하지 않아 누구든 휴대폰 알림이 울리면 볼 수가 있다.



'안녕하세요. 휴대폰 주인입니다. 휴대폰을 습득하셨으면 연락부탁드립니다.'

'휴대폰 주인입니다. 연락부탁드립니다.'

'제발 연락 주세요. 사례하겠습니다'

'제발 부탁.'

'힝'


기다렸다.

도둑이 훔쳐갔다면 나의 간절한 문자를 보고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는 문득, 이모네 집 근처에는 외국인이 많은 지역임을 깨닫고 혹시 외국인이 주웠는데 한국말을 몰라서 어쩔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영어로도 문자를 보냈다.


'Hi there, Please dial this number below if you picked up this phone.'

'Please call me back.'


제..ㅔㅔㅔㅔ발여.

헬프미. 아이엠 베리 새드.

하우아유. 땡큐 앤 유?




2-3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일단 통신사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했다. 상담원분이 휴대폰 추적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컴퓨터로 찾아보니 이모집 근처  병원에 휴대폰이 있는 걸로 추적되었다. 잡았다 요놈. 뛰어봤자 이 동네지. 콩밥 먹을 준비하셔.


차 타고 병원으로 갔다. 늦은 주말오후라 병원 카운터는 문이 닫혔고 경비아저씨만 계셨다. 휴대폰을 분실했는데 위치를 추적해 보니 여기로 나와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했다. 혹시 분실된 휴대폰 없냐고 물으니 본인은 야간 경비원이라 오전 사람한테 물어보겠다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환자분이 주워서 병원에 보관하고 있나 싶어 1층 로비를 경비아저씨 허락하에 같이 이곳저곳 살펴봐도 없었다. 찝찝해. 분명 이곳에 있다.


병실에는 올라가지 못해 병원로비에서 전화를 수십 차례 했다. 역시 받지 않았다.

문자를 다시 보냈다. 이번에는 친절하게 굴지 않고 내가 만만하지 않은 강한 상대인지 강하게 보여줘야겠다.


'폰 주우셨으면 연락 주세요. 경찰에 신고합니다. 절도죄입니다.'

'휴대폰 주인입니다. 위치추적하고 있습니다. 돌려주세요.'

'범죄입니다.'

'감방 가실게요.'


착신전화 50통, 친절한 문자 5건, 협박문자 4건.

휴대폰 절대 못 잃어.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혹시 몰라 영어버전 협박문자도 발송했다.


'Give me back my phone or I'll call the police.'

아이 킬유 유다이.(나는 당신을 처단할 것이고 당신은 돌아가실 것이다)

고투 헬 (지옥에나 가십시오)

주님. 곧 한 명 올려 보냅니다.


설상가상으로 휴대폰이 꺼져버렸다. 배터리 때문인지 누군가가 일부러 껐는지 알 수 없다.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우리 가족은 2시간 만에 집에 돌아와야 했다.

부모님은 못 찾을 것 같다고 일찍이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난 아냐.

이 도둑ㅅㄲ를 내 손으로 처단해 버리겠어.




다음날, 엄마한테 경찰 도움을 받아 도둑놈새끼 잡아서 콩밥 먹이자 했다.

엄마는 괜히 경찰아저씨들도 바쁜데 일 크게 만들지 말자고 했다. 휴대폰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액땜했다고 잊자고 했다.


응 아니야 난 그렇게 못해.

휴대폰 찾을 때까지 먹고 자고 싸고를 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내 두 손 두 발로 직접 찾아내서 응징하리라 나쁜 놈 새끼. 과도한 몰입. 지금생각해 보면 나도 참 심심했나 보다.


수첩을 가지고 와서 엄마의 동선을 하나하나 시간별로 정리했다. 참고로 이때 나는 잠시 휴직을 하고 백수였다 즉 시간이 남아돌아단말이다. 엄마랑 전화를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시간을 보니 이모집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오후 2시쯤이었다. 그 이후로 연락이 끊긴 거니 거기서부터 추적을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수사반장놀이 짜릿해.


다행히 이모네 아파트에는 cctv가 있었다. 그 뻔뻔스러운 낯짝을 어디 한번 보자꾸나.

경비아저씨께 사정을 말하고 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차에 타고 시동을 켜는 시간까지 2분가량을 돌려봤다. 엄마가 나랑 통화하는 시점에 휴대폰을 얼굴에 대고 이모네 아파트통로에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코리안 마더 휴대폰 케이스 국룰.


cctv가 입구 쪽에서 주차장을 비추고 있어 흐리게 보이긴 했지만 큼직큼직한 엄마의 행동은 식별이 가능했다. 

엄마가 이모한테서 받은 물건을 렁크에 싦 운전석 문을 연다음 반쯤 몸을 걸쳐 이모와 이야기를 잠시하고 시동 걸고 그냥 출발했다. 엄마가 떠난 자리 바닥 어디에도 휴대폰이 떨어진 흔적도 없었고 수상한 사람도 없었다.


엄마가 차에 타는 그 짧은 1분 몇십 초가량의 장면을 몇십 차례 돌려봤다. 경비아저씨도 이 아파트는 아닌 것 같다고 포기하라고 했다.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볼게요.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나를 엄마는 질린다고 했다. 아빠는 나보고 과하다고 했다.

저 딸그것이 알고 싶다를 너무 많이 봤네 봤어.


10분 정도 계속 돌려보다가 포기하려는 찰나에, 드디어 찾아냈다.

엄마의 빨간 휴대폰 케이스를.

디서 분실이 되었는지 마침내 찾아냈다.




운전석 문을 열고 이모랑 잠시 이야기하는 그 틈에 휴대폰을 자동차 지붕에 놓았고 그걸 깜빡하고 본인 몸만 쏙 차에 올라탔다. 다른 각도를 볼 수 있는 뒷문 CCTV를 통해 엄마차가 나가는 걸 보니 엄마 휴대폰이 지붕 위에서,

안녕히 계세요.





상황을 추론해 본 결과, 휴대폰이 차 지붕에 있다가 병원 앞 급 커버 길을 돌면서 도로에 떨어졌고, 근처 기지국이 큰 건물인 병원으로 위치를 잡아 그곳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론은 병원 앞 도로에 밤새 휴대폰이 있었다는 것. 어이구 어이구.


병원 앞 도로로 뒤늦게 가봤으나 없었다.

론적으로는 누군가가 주워간 것이지만 애초에 도난당한 게 아니라 엄마의 잘못이었음을 알아내니 마음은 가벼워졌다. 없던 도둑 괜히 욕했네 쳇. 범인을 색출해 내서 지옥불에 떨어뜨리려는 나의 강한 집념이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마음이 편해졌다. 털린 것보다 내가 털어낸 게 덜 억울하니까 사건을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어디선가, 도난당하거나 분실된 휴대폰을 싹- 리셋해서 외국에 판다고 들었다. 이왕이면 형제의 나라 터키 시민이 사용한다면 좋겠다. 쌩판 모르는 사람보다 형제가 쓴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화가 덜 치밀어 오른다.


원과 이모네 아파트 경비아저씨께 음료를 사다 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웃음으로 끝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 효도폰을 구입했다. 엄마는 시종일관 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했지만 아빠가 혹시나 분실된 폰을 찾을지도 모르니 당분간만 참고 저렴한 폰으로 쓰고 있으라 했다.


그것이 4년이 지났다.

그동안 분실된 휴대폰은 돌아오지 않았고 저가폰도 고장 한번 안 났다 그래서 계속 썼다.




앞전 휴대폰은 엄마가 아무렇게 사용해도 고장이 나질 않아서 비슷한 종류로 사야겠다 생각했다. 엄마는 카톡과 전화 수신발신 되는 폰으로 아무것이나 사달라고 했다. 효도돈을 열심히 알아봤다. 엄마와 휴대폰 매장에 방문했고 나는 미리 알아온 폰 모델을 말하려는 찰나에 엄마가 선수 쳤다.


"직원양반, 그그그- 갤럭시 Z플립 최신형으로 좀 보여주이소."



사전예약 중인 최최최최신폰이다.

도대체 언제 알아본 거지.

엄마가 접는 폰이 갖고 싶다고 했다. 십여 년 전에 썼던 매직 폴더폰을 다시 꺼내봐야겠다.

엄마 여기서 골라.

유심칩만 넣으면 될지도 몰라. 대신 흑백폰이야.





끗.




+

결국은 갤럭시 S시리즈로 합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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