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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Aug 10. 2023

말 같지도 않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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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모님은 나이가 들면서 파딱 파딱 단어와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 이상한 추임새를 넣어 말한다. 쉽게 말하면 멀리뛰기를 위한 도움닫기라고 해야 하나. 발전기 모터를 단것처럼 우선 혓바닥에 시동을 건다음 말할 단어를 어렵게 끄집어내서 수다를 이끌어간다.


신기하게 두 분 다 65세가 넘어가면서 '여보 당신 우리말하기 전에 혀를 같이 한번 떨어봅시다 요이-땅' 하는 것처럼 약속이나 한 듯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두 분 다 사용하는 추임새가 다르다 그래서 듣는 게 지겹진 않다.


아빠는 '저저저 그그그'

엄마는 '저기 뭐꼬'


아빠는 말을 할 때,

"저저저.. 그... 옆동에 그 그 - 중국집이 하나 개업했는데. 그 깐-풍기가 그리 맛있다네."

1 들숨에 5 저 저 그 그 날숨 화법.

숨넘어가겠소 김 씨 아저씨.


엄마는 대화를 할 때,

"저기 뭐꼬-. 내 아는 사람 중에 그 -뭐꼬. 대기업에 다니는데 거기서 저기 뭐꼬 대리인가 부장인가 그런 높은 사람인갑더라.

저기 뭐꼬 개미지옥 화법.


둘 다 사실상 자세히 들어보면 몇 단어면 끝날 것 같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저저그그'와 '저기뭐꼬'를 붙이고 붙여 뭐 대단한 동의보감 말하는 것처럼 사람을 집중하게 만든다 기운 빠지게. 하지만 소름 돋게 둘은 서로의 말버릇에 대해 전혀 알아차리지 않고 여보 한마디 달링 한마디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대화한다. 동지애인가 무관심인가. 예민한 성격인 나는 엄마아빠랑 대화할 때 굳이 문제점을 꼬집고 손가락을 코브라처럼 입 앞에 왔다 갔다 하면서 말실수를 카운트한다.


아빠 한번.

엄마 두 번.

앗 아빠 또 한 번.




보통의 우리 집 대화


나: 오늘 저녁 뭐 먹을 거야?

엄마: 저기뭐꼬. 저번에 시켜 먹은. 그 뭐꼬 자담? 그거 맛있더라.

아빠: 아 그그그 매운 거? - 뭐더라 맵슐랭!

나: 그럼 그걸로 시킬까?

아빠: - 포장해 오면 그그 포장비 할인되니까 가지고 오자. - 매장이 어딨 지?

엄마: 저기뭐꼬. 저저저 육거리 모퉁이에.

빠: GS주유소? 그-그 저번에 기름 넣은데?



나는 가족이라 괜찮은데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엄마 아빠의 고구마 백개 먹은 답답한 화법에 대해 짜증이 나거나 흉볼 것 같아 한동안 말할 때 단어를 먼저 생각하고 말하라 다그쳤다. 엄마 아빠는 너도 늙으면 바로바로 단어 생각이 안 난다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말 더듬이버릇 심은 데 말더듬이 버릇 난다고 악담을 했다.


 이대로 두면 아예 버릇이 될 것 같아서 극단의 조치로 아빠의 '저저그그'와 엄마의 '저기뭐꼬' 금지령과 동시에 만원 벌금형을 내렸다.



그리고 그날.

우리 집은 오랜만에 고요했다.




우린 이제 각자 따로 시간 보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엄마는 요즘, 육두문자가 낭자한 정치 비판 개인 유튜브쇼를 ASMR 삼아 이어폰을 끼고 잠이 든다. 귀가 어두워 볼륨을 최대치로 해두는데 옆에만 있어도 소리가 새여나와 다 들린다. '이런 개ㅅㄲ들은 어쩌고, 이래서 국회의원들은 목을 어쩌고.' 상당히 거친 내용에 비해 고요히 편안히 잠들어 있는 엄마의 표정을 보니,

숙-면

참 아이러니 하다. 역시 자장가는 육두문자가 최고.


이와는 반대로, 아빠는 몇 년 전부터 드라마에 빠졌다. 에전에는 사극이나 자연인 프로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치정 멜로드라마, 막장드라마를 좋아한다. 드라마만 전문으로 하루종일 반영해 주는 TV채널이 24시간 꺼지지 않고 돌아간다. 특히나 요즘 '오자룡이 간다'와 '조강지처클럽'을 상당히 즐겨본다. 별로 슬프지 않은 장면에 혼자,

자룡아 잘살아야 해.... 또르르.

눈물 훔치고 화도 냈다가 중간에 광고가 나오면 나라 뺏긴 사람처럼 분노를 한다. 늦은 남성갱년기가 오나보다.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이 나온다더니 아빠를 보면 조만간 부라자를 찰 것 같아서 두렵다.


요즘 나는 방 안에서 여행 계획만 짜고 있다. 마지막 남은 퇴직금을 여행에 쏟아부었다. 친구 H와 40살 때 노처녀 기념으로 스위스를 가자고 약속했는데 기후변화도 걱정되고 무릎관절도 걱정돼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행 가자 싶어 동유럽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떠난다 내일 당장. 다녀올게요.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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