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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an 12. 2024

작명의 신

101, 갑자기 생각나는대로 적어내린 이상한 글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은근 중요한 것이 이름이다. 얼굴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더라도 이름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독특하거나 예쁠수록 더 인상 깊다.


나의 이름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지어 저버린, 나의 의사가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채로 부모님이 강제적으로 정해줬다 아니 그 이름으로 지금껏 불리어지고 있다. 가끔 내가 다른 이름을 가졌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헛상상을 해본다. 내 이름이 김제니였다면, 내 이름이 김태희였다면 어땠을까.


우리 남매의 이름은 아빠가 지었다. 보통 아기 이름은 철학관에 가 사주를 보고 여러 이름 후보를 받은 다음, 부부끼리 고심하고 또 고심해서 지어주는 줄 알았는데 아빠는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작곡가처럼 뜬금없이 이름을 지었다. 모르긴 몰라도 5분이면 사람이름 100개도 더 작명할 사람이다.


오빠의 이름에 '子자'가 들어간다. 이유 없다. 아들이라서 '아들 자'를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오빠의 이름을 물으면 대부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 여러 번 되물어본다  


차? 좌???? Chua???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 할 때 그 좌?? 좌우로 나란히 할때 그 좌??

아니요 아니요. 자요 자 자 자자자ㅏㅏㅏㅏ ja ja ja ja. 자전거 할 때 자요.


국민학생 때 친구들이 자꾸 별명으로 자우지 장 지지지♬'라 놀려 오빠는 이름 노이로제가 걸렸다고 한다.

아 아부지.


평생 본인 이름에 들어있는 '자'를 원망하면서 살았는데 소름 돋게 '자'가 들어간 올케를 만나 결혼했다. 올케도 어릴 때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름을 더해서 별명이 '자짱'이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본인 이름에 '자'가 들어간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리하여 김자우지 장지지지 와 김자짱 부부가 탄생했다. 둘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를 가졌을 때는 엄마가 아빠를 말렸다. 이번에는 제발 대충 짓지 말고 철학관에 가서 좋은 이름 후보들을 받아오자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단호했다. 본인 자식 이름은 본인이 짓겠다는 이상한 고집을 부리며 첫째 때랑은 달리 심도 깊은 뜻을 품고 있는 순수 한글로 창작했다 그것도 5분 만에. 짜장면보다 빠른 작명 속도다. 오빠 이름에 비해서는 평범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랑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다 남자다. 그것도 하필 북한쪽 백두산 혈통이신 분과 이름이 같다. 북한이 미사일이라도 쏘면 뉴스에 내 이름이 나올까봐 초조하다. 그럴때마다 아빠는 본인 덕에 방송도 타보지 않았냐고 기뻐하셨다. 본인의 큰 그림이었단다. 아 아부지.


아빠의 개똥 작명센스는 반려견 이름을 정할 때 한번 더 빛났다. 우리 가족의 첫 반려견을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우리 모두 너무 기뻤고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쿨한 이름을 지어주자며 오빠와 나는 밤새 고민했다. 검정 요크셔테리어 남아견으로, 난 글로벌에 발맞춰 썬더, 스톰, 허리케인 등으로 강력한 영어 이름을 준비했다. 그에 반해 오빠는 강아지 털색에만 초점을 맞춰 까망이, 블랙이, 요키 등으로 귀여운 이름을 준비했다. 우리끼리 서로가 정한 이름으로 부르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어느새 부모님에게는 아빠가 대충 지은 '콩알'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이유는 없다 그냥 검은콩처럼 작아서 콩알이라 부른단다. 동물병원에 가서 강아지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직원들은 예?? 코? 콩아?응아리???  콩알??!!이라고 되묻곤 했다. 어디에다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반려견.


아 아부지.

그래도 우리 콩알이는  촌스러운 이름 덕분에 14년을  호의호식하며 잘 살다가 갔다.


이번 조카 이름 정할 때, 아빠는 아무런 발언을 할 수 없도록 일체 권한을 주지 않았고 그 덕분에 아주 예쁜 이름으로 지어졌다. 철학관에서 큰 뜻과 좋은 의미가 있는 아주 고귀하고 세련된 이름을 받아왔다 휴.


혹시나 몰라 이름 정하고 주민번호까지 다 발급받은 다음, 아빠가 생각해 뒀던 조카 이름이 뭐였냐고 물어보니 이름에 ''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면서 가인, 나인, 다인, 라인 마인...ㄱㄴㄷㄹㅁㅂㅅ... 순으로 14가지를 생각해뒀다 한다. 세종대왕님의 정신을 받들여 하나뿐인 첫 손녀 이름을 자음순서대로 생각해 놓은 아버지 발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아빠의 작명 센스를 따랐으면 나의 첫 조카 이름이 하인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거기, 김하인은 듣거라

예 ↗이↘



뜻밖의 양반놀이.



브런치에 처음 작가 신청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필명을 생각해두지 않았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조급한 마음에 그 당시 나의 상황을 빗대어 '분주'라고 급하게 대충 지었다. 몇몇 분들은 나의 이름이 김분주라고 알고 계실 것 같긴 한데 이건 나의 대충 지은 필명이다. 뒤늦게 바꾸기도 애매하고 내 필명으로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이 꽤 계셔서 운명이다 싶은 마음에 그대로 두고는 있다.


이제 막 투고를 시작하면서, 잠시나마 책이 출간되어 사람들이 읽고 있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다. 사람들이 책이야기를 하면서 '작가가 60대인가 봐 이름이 김분주래. 어쩐지 글이 올드하드라.'라 말할걸 생각하니, 필명을 근사하게 지을걸 싶은 후회감이 밀려온다. 김태희는 얼굴도 예쁘고 이름도 예쁘다. 송혜교, 이효리, 한소희 등등 이름 예쁜 분들이 얼굴도 예쁘다.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름이 좋으면 다 좋아 보인다. 이름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가 상상이 되니 작가나 연예인이나 이름이 정말 중요한것 같다. 김분주가 뭐여 대체. 과거의 나년에게 죽빵을 한번 날립니다.


혹여나 나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거참 얼굴도 분주하게 생겼네'라 말한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꺼이꺼이. 한국 위상이 한껏 높아진 지금, 글로벌 눈높이에도 맞춰야 하고 뭔가 세련되면서 고귀하고 귀엽지만 도도할 것 같은, 그러면서 특이하고 기억에 남을 가명/필명으로 바꿔야 되지 않을까 싶은 요즘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작명 센스를 이어받아 한 번 작명해봤다.



굉장히 마음에 든다.

빌보드 차트 1위 할 것 같다.

한국팬은 물론이고 미국팬, 중국팬, 일본팬 다 골고루 사로잡을수 있겠다.









+

그 아버지의 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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