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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an 18. 2024

이름이 뭐예요?

102 슬픔을 잊기 위해 적어 내린 짧은 글

엄마가 갑자기 아프셨다. 취업 준비도, 글쓰기도 잠시 미뤄두어야 했다. 엄마의 보호자로 큰 병원에 처음 가는 것이라 무섭고 두렵고 복잡하고 슬펐다. 엄마를 MRI실로 데려다주고, 멍한 상태로 엄마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가 아프다고 말씀하실 때 너무 무심했다. 엄마는 아파도 괜찮은 줄 알았다. 엄마는 영원히 강한 줄 알았는데, 검사실로 들어가시는 뒷모습이 어찌나 작아 보이던지.


너울이 큰 파도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돛단배에 탄 것처럼 울렁거리는 기분으로, 부산스러운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영상의학과 간호사 선생님이 다음 대기 환자 이름을 외치셨다.


“이진상 님!”


간호사의 이진상 님을 부르는 외침이 나의 고막을 미친 듯 두드렸다.


“이진상 님 여기 안 계세요??

“이진상 님!”


이, 진상님. 간호사 선생님이 부르시잖아요. 진상님.

얼굴을 뵌 적이 없는 그분의 존함이 자꾸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하게 만들어 살짝 툭 치면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았던 슬픔의 상징인 나의 맑은 콧물이, 닌자처럼 잽싸게 쏙 코로 들어가 버렸다. 아 이름 때문에 웃으면 안 되는데.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다.


그러다 문득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궁금했다. 엄마의 걱정은 잠시 단기예금하듯 가슴에 묵혀두고 본격적으로 간호사 선생님들의 목청에만 집중하여 어떤 존함을 가진 어르신들이 오셨을까 토익 리스닝 시험 치듯 집중했다.


비장하게 검사실의 문이 열리고, 흰 가운을 입은 선생님이 나오시더니 근엄하게 다음 환자분의 성함을 부르셨다.


“김외숙 님!”

“김외숙 님!”


보라색 털모자를 곱게 쓴 어르신이 수줍게 손을 들며 검사실로 들어가셨다. 저분의 조카는 저분을 어떻게 부를까 싶은 찰나의 궁금증이 생겼다. 김외숙 외숙모라 부를까. 아님 김외숙 숙모? 아님 외숙숙숙숙모. 혼란스럽다.


검사가 끝나 엄마를 모시고 다시 신경외과 쪽으로 이동해 순서를 기다렸다. 종합병원이라 대기 환자가 많았다. 저 곱게 주름진 얼굴 뒤에, 고된 세월을 어떤 이름으로 살아오셨을까.


5분 뒤, 간호사 선생님이 다른 환자를 호명하셨다.


“김말임 님!”

“김말임 님!”



   

빅뱅 '몬스터' 뮤직비디오 속 태양 머리스타일

예 김말이

여기 있습니다.


 

병원만이 가진 무거운 공기 속에서 자꾸만 터져 나오는 실소를 숨기기 위해 나는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자꾸만 상상이 되는 김말임 님.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푹 숙인 나를 보며 엄마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엄마도 오늘 이 상황이 무서울 테니, 이왕이면 잠시 무섭고 아픈 생각을 잊기 위해 이제껏 들은 이름을 말해줬더니 병원에까지 와서도 또 그러고 싶냐고 혼냈다. 아, 이런 적 처음인데.


어르신들 이름 가지고 웃으면 안 된다고 엄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그러겠다고 말한 뒤 엄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 앞 앞 앞 순서가 다가왔고 간호사 선생님이 차트를 보면서 외치셨다.



"노숙자 님!, "

"노숙자님 다음 차례입니다."



.... 아



엄마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술을 깨물고 속으로 울었다.










+

옛날 어르신들의 이름들은 유독 촌스럽다. 과거에는 어린 시기에 일찍 죽는 아이들이 많아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일부러 천박하고 촌스러운 이름을 지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의 이름을 들으며, 나는 문득 그분들의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자식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에까지 그 간절함을 담아냈을 것이다. 옛 조상님의 바람처럼, 병원에 계신 모든 어르신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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